젊은 날의 고통 담은 자전적 음악 일기음반사 일방 수정에 스스로 판금 조치양희은·김광석등 리메이크 80년대 운동권 애창곡 인기

포크가수라면 한 번 쯤 불렀을 노래가 있다.

고 김광석이 [다시부르기2]음반을 통해 존경심을 표했던 포크의 명곡 <저하늘의 구름따라>다.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과 짐을 짊어진 듯 인생의 슬픔을 그려낸 이 노래는 놀랍게도 고등학교 신입생이 만든 노래다. 지금은 한국포크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김의철은 답답하고 암울했던 자신의 청소년기 정서를 통해 유신시대의 암울함을 은유적으로 대변했다.

김의철은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경계를 허무는 아트 포크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대중가요를 넘어선 고급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시대적 불운에다 음악적 성취만을 지향한 그의 진지한 삶의 방식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격리시켰다.

그는 정상적인 연주가 힘든 신체조건이다. 5살 때 다친 다리는 2번의 대수술로 절단의 위기를 넘겼다. 기타코드를 잡아야 하는 왼 손 또한 갖가지 사고로 마비상태다. 신체적 핸디캡을 이겨낸 그의 첫 독집은 젊은 날의 고통을 담은 자신의 음악일기일지도 모른다.

1973년 3월. 고교 졸업을 앞둔 그에게 데뷔음반 취입기회가 왔다. 녹음은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이틀 간 진행되었다. 많은 음악선배들이 힘을 보탰다. 포크의 전설 김민기, 이정선은 물론이고 <세노야>를 작곡한 서울대 음대의 김광희, 그리고 윤형주를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연주와 코러스를 차정해 훈훈한 분위기에서 녹음을 마쳤다.

하지만 유신정권의 색안경에 비친 명동 해바라기 노래운동의 주인공 김의철의 노래들은 어둡고 저항기운이 감지되었다. 타이틀곡으로 염두에 둔 <불행아!> 때문에 검열통과가 불가능했다. 이에 조바심이 난 음반사는 심의통과를 위해 제목과 가사도 일방적으로 일부 수정했다.

1974년 3월. 우여곡절을 겪고 녹음 1년 뒤에 포크의 명반 ‘김의철 노래모음’은 발표되었다. 수록곡은 연주곡을 포함 총 10곡. 하지만 첫 음반이 곧 대중과 격리되는 사망 신고가 될 운명을 타고났을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음반을 받아든 기쁨도 잠시. 음악은 원형질이 아닌 변질된 상태였다. 타이틀곡으로 염두에 둔 <불행아>가 ‘곡 분위기가 너무 어둡고 가사가 많다’는 이유로 2면으로 밀려났고 가사내용도 ‘갈 수 없는 신세’가 ‘갈 수 없는 이 몸’으로 ‘흙 속으로 묻혀갈’이 ‘흙 속으로 헤어갈’로 수정되어 있었다. 이에 본인 스스로 음반사에 판금조치를 통고했다. 30년 동안 구경할 수 없는 전설적인 희귀음반이 된 사연이다.

타이틀 곡 '마지막 교정'은 졸업시즌을 대표하는 곡으로 한동안 전파를 탔다. 당시 ‘가사가 유치하다’는 평을 듣긴 했지만 윤형주 등 많은 가수들의 호평에 자극받은 음반사가 타이틀곡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을 연상해보라. 이 노래는 김의철이 고등학교 졸업식 날 학창시절의 추억을 담아 제목도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 교내 방송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던 노래다. 미국 포크가수 알로 거스리의 노래에 감명을 받아 취입한 유일한 번안곡 ‘연인들의 자장가’도 감상의 즐거움을 주는 노래다.

2면 첫 곡 '저 하늘에 구름 따라'는 양희은, 윤연선, 양병집, 이광조, 김광석 등 수많은 포크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고 80년대에는 운동권에서도 사랑받았던 그의 대표곡이다. '우리의 꽃'은 무궁화 꽃의 사시사철에 대한 느낌을 전한 김의철식 애국가다.

이 음반에는 주목해야 될 여가수의 노래가 2곡 더 있다. 소름끼치도록 섬뜩한 목소리로 들려준 <섬아이>와 <평화로운 강물>이다. 현재 미국 오하이오대학 한국학 교수인 박찬응의 주인공이다.

인생의 애환이 서린 듯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는 거칠고 처연한 그의 노래는 '창법 미숙'이란 미명아래 금지명찰을 달았다. ‘한국 포크의 컬트’로 추앙받고 있는 이 2곡은 김의철의 데뷔음반을 한국포크의 명반으로 평가받게 한 숨겨진 원동력이다. 한국대중가요에 이 보다 처절한 느낌의 노래는 없을 것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