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등 고객 취향 바로 제품화 세계적 돌풍… 환경오염 주범 비난도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털어놓는 고충 중 하나는 유행의 주기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이다.

통상 일년에 두번, 봄/여름 그리고 가을/겨울 시즌 컬력션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브랜드에 소비성향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소비자들은 식상해한다.

유행의 주기는 얼마나 빨라졌을까. 패션MD나 디자이너들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매달 혹은 매주 다른 상품을 기대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생산자 입장에서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유리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전세계적으로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패스트패션은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처럼 신속히 만들어 신속히 소비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격은 티셔츠 한 벌에 2~3만원 등 소비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합리적이다. 자라, 갭, 바나나리퍼블릭, H&M, 포에버21, 망고 등이 대표적인 패스트패션이다.

이 중에서도 최근 자라(Zara)가 일으키는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스페인 브랜드인 자라는 스웨덴 브랜드 H&M과 함께 전통적인 패스트패션 강세 지역인 유럽에서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자라의 모회사인 인디텍스 그룹이 지난해 12억5천만 유로의 순이익을 달성해 순이익이 2006년도 대비 25%의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세계 패스트패션 1위를 고수해 오던 갭을 제쳤다. 인디덱스 그룹에서 가장 큰 매출을 차지하는 브랜드는 자라다.

자라는 올해 1/4분기에도 9%의 매출 상승을 기록해 화제다. 지난 4월 국내에 매장을 오픈한 자라는 갭과 바나나리퍼블릭보다 매출이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과 중국, 미국 그리고 유럽 등 70여개 여러 나라에 진출한 자라 매장 중 판매 실적이 부진한 곳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세계 패션재벌 랭킹에서 인디텍스의 아만씨오 오르떼가 가오나 회장이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그룹의 버나드 아르노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도 세계 패션시장에서 자라가 차지하는 위상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전체적으로 패스트패션이 승승장구 하는 가운데 자라가 경쟁업체 갭을 제치고 맹위를 떨치는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라는 신제품 출시가 가장 빠른 브랜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라는 2주마다 신상품을 출시해 전세계 매장에 즉시 제공하고, 재고는 가차 없이 폐기처분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국내 매장에는 일주일에 두번 씩 신상품이 들어온다.

자라에는 200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이들은 자라 매장과 길거리로 나가 고객의 취향과 요구사항을 직접 보고 듣는다. 그리고 이를 즉각 상품화시킨다. 디자이너뿐이 아니다.

매장 직원들도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해 수시로 본사 디자이너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상품의 디자인에서부터 생산, 배송 그리고 직영매장에서의 판매까지 본사의 통합적인 시스템 하에서 일사천리로 이뤄지는 자라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은 상품이 출시됨과 동시에 전세계 매장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소비자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바로 그 다음날 매장에서 사 입을 수 있게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몇 년 전 스페인 왕자가 결혼식날 입었던 독특한 의상이 전세계에 화제가 됐는데, 다음날 자라 매장에 똑같은 옷이 입고된 적도 있었다.

자라는 디자인도 가장 다양한 편이다. 매장 당 보통 15,000개~20,000개의 다른 디자인 모델을 갖춰놓고 있다.

그러니 소비자는 식상할 새가 없다. 매주 2번씩 들어오는 수만개의 디자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라 매장에선 한 벌의 옷을 고르기 위해 심사숙고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마음에 드는 옷을 별 생각없이 여러 벌씩 구입한다. 쇼핑중독자를 일컫는 '쇼퍼홀릭'이란 말이 실감난다.

이곳에선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숨가쁜 유행의 흐름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올해 가을 자라 우먼 라인을 보면 50년대와 70년대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꽃무늬 원피스 등 로맨틱한 패션과 가죽이나 털 재킷을 믹스앤매치(mix & match)해 입는 패션도 강세다.

이번 시즌의 핵심 컬러는 그레이와 카키색이다.

남성 라인을 보면 악어나 뱀가죽을 비롯한 애나멜 가죽이 신발과 액세서리를 장악하고 있다. 또, 실크 가디건과 슬림 팬츠, 젊고 편안한 감각의 네온점퍼(neon jumper)와 티셔츠가 유행한다.

이 같은 시즌 라인을 기본으로 자라는 2주마다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상품을 업데이트한다.

무섭게 약진하는 자라와 더불어 H&M, 포에버21 등 패스트패션의 성장세는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패스트패션은 신제품을 소량 내놓기 때문에 명품보다 희소가치가 높고, 가격이 저렴해 믹스앤매치가 자유로워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에게 제격이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패스트패션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의류 소비를 조장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제3세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셔니스타를 꿈꾸는 소비자들은 이런 비난에 신경쓸 여력조차 없어 보인다.

세계적인 패스트패션 열풍에 힘입어 10월엔 포에버21이, 내년 봄에는 H&M이 국내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