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씨 80여명 손님 초대 7가지 요리와 10가지 와인 선보여

유럽 대륙의 한 가운데 자리한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 나라의 수도 비엔나 시내 한 켠에 들어서 있는 레스토랑 ‘킴 코흐트(Kim kocht)’.

좌석 수가 불과 26개에 불과한 이 조그만 레스토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다. 예약만 3개월 전에는 해야 겨우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 손님 대부분은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이는 다름 아닌 한국인, 김소희씨. 레스토랑도 자신의 현지 이름인 킴 코흐트를 그대로 갖다 쓴 오너이자 셰프(조리장)이기도 하다.

한식을 비롯한 아시아 푸드 전문 레스토랑으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그녀의 음식 비결은 무엇일까? 식탁에선 특히 까다롭기로 유명하다는 유럽 서양인들의 입맛을 어떻게 사로 잡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당장 비엔나로 달려 가기도 쉽지 않고….

대신 김소희씨가 한국으로 날아 왔다. 최근 열린 2008서울푸드페스티벌 참석차 방한한 그녀는 광주요가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의 레스토랑 ‘낙낙’에서 자신의 음식 메뉴 일단을 소개했다.

“고추는 귀가 뻥 뚫리게 먹어야지 제 맛이지요. 외국인들도 잘 먹는데…오히려 요즘은 한국 사람들이 위가 안 좋다는 등 핑계를 대요.” 걸쭉한 부산 사투리가 여전한 그녀는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들처럼 누구하고나 편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한식을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게 새로이 탄생시키는 과정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 음식 하나만 가지고는 지금 절대 외국인들에게 맞지는 않습니다.” 서울에서 생선 채소 등 식자재 구입 하나하나까지 신경쓴 그녀는 음식에 대해 ‘지구촌 차원’의 넓은 식견을 내비친다.

80여 명의 초대 손님을 위해 그녀가 이 날 선보인 ‘킴 코흐트 메뉴’는 모두 7가지. 오스트리아에서 하던 그대로 자신의 스타일이 담긴 메뉴들을 스스로 선정하고 주방에서 조리기구를 잡고 직접 조리했다. 특히 얼마 전 결혼한 오스트리아인 남편과 함께 온 그녀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져 온 와인들을 음식과 함께 소개하는 기회도 가졌다.

그녀가 내놓은 첫 번째 메뉴는 새우젓 간을 배이게 한 소라. 특이하게도 새우젓을 활용해 소스처럼 간이 배이게 한 애피타이저로 그녀 또한 ‘처음 해 본 시도’라고 털어 놨다. 새우젓 간이 짜다고 하기 보다는 짭짜스름한 맛이 식욕을 돋구기에는 충분하다는 평가.

이어 나온 음식은 수제비와 생선회, 그리고 샐러드. 넙적한 플레이트에 야채와 함께 반죽한 수제비를 일렬로 깔고 그 옆에 채소, 생선회를 나란히 배치했다. 무엇 보다 수제비와 생선회가 왜 같이 있을 수 있는지가 관심사. 하지만 놀랍게도 일본식인 생선회와 한식인 수제비의 맛과 질감은 절묘하게도 조화를 이뤘다. “저도 연습 겸 한 번 만들어 봤어요.”

그녀는 메뉴 한 가지씩을 내놓을 때 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음식에 대해 설명을 곁들였다. 그것도 마치 집에서 엄마나 누나가 얘기해 주듯 아주 푸근하고 재미있게 농담도 곁들여 가며. 실제 그녀가 비엔나의 레스토랑에서 매일 하고, 또 즐기고 있는 일과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후딱 주방으로 달려가 불과 씨름하면서 음식을 조리해 내는 과정을 연이어 반복했다.

그녀가 준비한 수프는 더 특이하다. 약초 소금을 곁들인 꽃게 수프. 그런데 막상 식탁에 가져다 준 것은 새우 두 점과 알록달록 색깔의 가루들이 놓여진 접시 뿐. 국물은 어디 있지? 하지만 조금 있다 그녀가 직접 주전자를 들고 식탁을 오가며 수프 육수를 따라준다. 게살을 끓여 만든 육수는 꽃게 향을 물씬 풍긴다.

그런데 육수가 따로 오는 것을 모르는 이들 중에는 육수 없이 내용물만 먹은 이들도 있다. 아까 짧게 던진 그녀의 한 마디, “이번에 집중해서 제 설명 안들으면 나중에 후회해요.” 그런데 이들의 대답은 “그래도 맛 있네요!”

검은 색 면발이 돋보이는 파스타도 눈길을 끈다. 태국 스타일의 오징어 먹물 국수와 오징어. “아까(수프)와 달리 이건 먹는 법이 따로 없어요. 국수가 흑색이라…그건 오징어 잉크로 만들어서 그래요. 전형적인 이탈리아 스타일인데 태국식으로 만들었죠.” 이 정도 설명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가 준비하는 식탁에 오르는 고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불고기와 생선만이 예외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을 위해 고기 요리를 추가했다. 메인 메뉴로 나온 등심. 역시 조선 간장으로 고기 간을 배이게 해 독특한 맛을 연출했다.

킴 코흐트 만찬 메뉴
1. 소라 아스파라거스 새우젓구이
2. 약초 떡 수제비를 곁들인 도미 회와 야채 샐러드
3. 약초 소금을 곁들인 꽃게스프
4. 태국 스타일의 오징어 먹물국수와 오징어
5. 방울 토마토와 전복을 곁들인 카스누들(오스트리아라비올리)
6. 아스파라거스와 마늘쫑을 곁들인 양념 등심구이

그녀의 서울 만찬은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올 초 비엔나를 방문했던 조 회장이 그녀의 레스토랑에 들르면서 서울에서 그녀의 음식을 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장소(낙낙)와 여러 지원을 약속한 것. “가 보니 대단하더라고요. 오스트리아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다 꽉 잡고 있는 거예요.” 조 회장은 “빈에서 ‘이런 한국 사람이 있구나’라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마지막 코스로 나온 디저트 또한 조 회장이 추천한 메뉴다. 대대로 집에서 내려오는 방식으로 갖은 한약재를 달인 한방차. 또 등심 고기가 놓여진 불판 겸 그릇은 내열 자기인데 이 또한 광주요에서 지원했다. 도자기이지만 열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rare’ 상태로 나온 고기를 자신의 취향대로 즉석에서 구워 먹을 수 있다. 물론 불에 달궈져 식탁에 오른다.

이 날 그녀가 선보인 와인 또한 10여가지. 모두 오스트리아 산으로 남편과 함께 고른 것들이다. “저랑 입 맛이 달라서인지 와인 선택도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하나는 남편, 그 다음은 제가 고르는 식으로 음식과 매치시켰지요.” 그녀는 2001년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소믈리에 공부도 함께 했다.

“음식의 폭과 와인의 폭은 같이 넓습니다. 음식에 맞춰 와인도 그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지요.”

1983년 의상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는 디자이너 활동을 하다 1996년 첫 음식점 ‘소희 스시’를 열면서 셰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최초 여성 스시 요리사란 타이틀을 비롯, 현지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면서 지명도를 높여 왔다. 유럽 현지에서 요리 음식과 관련한 수상 타이틀 만도 수십가지가 넘을 정도. 강연이나 전시 토론 이벤트 심사 등도 그녀가 소화해야만 하는 바쁜 일정의 과제들이다.

그럼 그녀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가격대가 얼마나 나올까? 저녁은 6시와 8시 두번만 예약을 받는데 가격이 달라요. 3가지 코스로 짜여진 6시 타임은 50유로, 8시 디너는 70유로예요. 6시 시작하는 디너는 2시간 여유 밖에 없어 좀 짧지요. 그나저나 물가가 올라 더 올려야 될 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서비스 업종 종사자예요. 그래서 오시는 손님들을 제대로 대접해 줘야한다는 것이 철칙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킴 코흐트를 찾는 손님 한 사람 한사람의 기호에 맞춰 음식을 마련하는 정성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옆에서 조 회장은 “우리나라 식문화 가치를 올려야 한국의 자원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나중에 엄청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며 “그래서 김소희씨의 노력과 성공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