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전문가 중심 문제제기… 작가의 상상력 허용 반론도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소설 장르, ‘팩션(faction)’의 형식을 도입한 이정명 원작 <바람의 화원>이 SBS 드라마로 제작돼 전파를 타는 것을 두고 미술사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역사왜곡’문제제기가 확산 일로로 치닫고 있다.

소설이 허용하는 ‘상상’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이 두드러진다. 신윤복 연구로 박사 논문을 쓴 안휘준 문화재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28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쓰더라도 신윤복의 경우에는 분명한 역사적 인물이고 남자인 것이 명백하다”며 “그런 역사적 인물을 흥미를 돋우기 위해 여성으로 변질시킨 것은 심각한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안 위원장은 이어 “작가로서는 해서 안될 일을 했다”며 “남성인게 분명한 김유신을 여성으로 꾸민다면 이를 허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미술사가들은 특히 성 정체성을 비튼 것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가깝다는 점을 성토했다. 안 위원장은 “엄연한 남자로 활동 흔적을 남겨놓은 (신윤복을) 여성으로 바꿔 놓은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명백한 인물을 변화시킨 것은 지하에서 통탄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조선시대의 화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게 신윤복이 남자임이 명확한 가장 결정적인 증거라는 데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홍선표 이화여대 대학원 교수는 “유럽의 살롱이나 관립 아카데미, 일본의 동경 미술학교도 1940년대까지 여자는 입학할 수 없었다”며 “조선시대 도화서에 여자가 남장을 하고 들어간다는 설정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어“가명을 썼다면 몰라도 실명으로 논픽션을 비튼 것은 역사 왜곡”이라며 “작가가 역사왜곡으로 대중의 흥미를 끌어 인기를 얻는데만 급급하면 사회적 책임은 누가지나”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알려져야 할 신윤복의 진면목은 따로 있다고 설명한다. 풍속화가로서 신윤복의 주제성은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신윤복의 작품은 기록을 통해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는 선조들의 생활, 복식, 문화를 기록한 것이라는 데 주목했다.

안 위원장은 “신윤복은 기록을 통해서 상상이 불가능한 18세기 조선후기 선조들의 생활과 낭만을 표현했다”라며 “시대성, 기록성, 사실성, 예술성이 뛰어난 작가와 작품”으로 평가했다. 홍 교수 역시 “기존의 모티프와 다른 풍속화로서의 의미가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홍도와의 사제관계에 대해 학자들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고 말한다. 안 위원장은 “연대를 올라갈수록 혜원 작품이 김홍도의 화풍에 까까워 진다”며 “신윤복은 김홍도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원복 전주박물관장은 “혜원이 도화원에 소속돼 있지 않아 명확한 기록이 없다”면서도 “단원과 비슷한 분위기의 화풍과 활동 영역으로 볼 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유독 최근에 신윤복의 작품이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친숙함’을 원인으로 꼽았다. 홍 교수는 “혜원의 작품은 실경산수나 풍속화와 다르다”며 “실물을 모델로 그려 현대사람들에게 익숙한 화폭이 근대적인 사생적 리얼리즘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 위원장은 “국립현대미술관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더 공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혜원의 작품이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고 이해하기 쉽다”는 점을 꼽았다. 신윤복의 작품이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이해하기 쉬워 고급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SBS TV '바람의 화원'에서 김홍도 역을 맡은 박신양(왼)
SBS TV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문근영(오른)
SBS TV '바람의 화원'에서 김홍도 역을 맡은 박신양(왼)
SBS TV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문근영(오른)

이원복 관장은 ‘사랑’과 ‘성(性)’이라는 혜원의 작품 주제를 이유로 봤다. 이 관장은 “혜원의 작품은 태연하고 편한 성을 일부러 표현한 것이 아니라, 성을 통해 시대를 산 사람들의 삶의 자세나 태도를 전달하려 한 것”이라며 “남녀문제는 영원한 역사성이 있는만큼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그려 친근미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혜원 전문가가 아니라며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미술사 전공교수는 “신윤복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으면 소설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창작자인 소설가가 상상력을 동원한 것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취화선 역시 장승업에 관한 한 5~10%를 빼면 허구”라며 “장승업 전기를 추구한 영화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판단은 대중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원복 관장은 “작가가 시대상을 제대로 이해했느냐는 의문”이라면서도 “소설을 통해 긍정적인 시각에서 시대와 사회를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히트’로 신윤복의 <미인도> 등을 전시한 간송미술관 서화전에는 수십만의 인파가 몰렸다. 안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간송미술관에서 젊은이들이 <미인도> 그림 앞에서 “혜원이 진짜 여자래”하고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신윤복전이 아닌 서화전이었는데 연속극을 보고와서 신윤복 작품에만 관심을 기울여 씁쓸했다”며 “의미가 지속될 수 있다면 좋은데 금방 식을 유행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정명 작가는 지난달 3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문화적 토양은 소설을 역사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높은 수준에 와 있다”며 “독자들도 충분히 허구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소설로 쓴 것인데 드라마로 보여지면서 혼돈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비록 허구의 이야기라도 신윤복에 대한 관심이 그 시대와 인물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돼 역사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런 작업으로 역사가 좀 더 풍부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일반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 신윤복의 성별에 대해 “신윤복은 역사적으로, 기록적으로 남자”라고 분명히 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