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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주역 3人이 말하는 오늘의 시위 문화
"자발적·평화적 촛불 문화제 시대가 변했구나"
인명진- '반미' '정권 퇴진'등 집회 본질 변질 우려
유시춘- 시민 의식 21세기 정부 발상은 19세기가 원인
송명길- 거센 촛불은 대의 민주주의 위기 보여준것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위원장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송영길 통합민주당 의원
6월 10일. 6월 항쟁 21주년이다. 1987년 봄, 4.13호헌조치와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은폐성명이 발표되면서 6월 전국은 민주화 운동으로 불타올랐다.

종교계와 지식계층, 야당 등 사회각계 인사들이 통합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6월 항쟁을 이끌면서 시위는 점점 더 치열해졌고, 결국 정부는 직선제 개헌과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골자로 한 6.29선언을 발표했다.

21년이 지난 그날의 시위는 최근 한미쇠고기협상 반대 시위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치열했던 거리시위는 놀이문화처럼 진화했고 시민이 주인인 디지털 시위문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 ‘수준 높은 평화시위’는 20년 전 민주화 선배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말도 들린다. 6월항쟁의 주역들을 만나 그날의 감회와 오늘의 시위문화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위원장



6월항쟁을 이끈 구심체는 단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이다. 국본은 평화시위를 위한 아이디어를 고안해 대학생 중심의 민주운동에 일반 시민을 자발적으로 참여시켰다.

당시 국본의 대변인을 맡았던 인명진(62)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위원장은 그러나 “6월 항쟁은 지도부가 없는 시위였다”고 말했다.

“6월10일 거리 시위가 있고 나서 공식적인 집행부 대부분이 바로 잡혀갔어요. 이후 시위를 주도했던 것은 자발적인 시민들이었죠. 대변인을 맡았던 나는 국본이 집결했던 향림교회 기독교회관 312호에서 사무실을 차렸죠. 나도 체포영장이 발부됐었는데, 경찰이 나를 못 잡아 간 건 당시 외신기자들이 내 주변에 많았기 때문이야. 항상 30~40명의 기자들이 있었는데 내 말과 행동이 다 외신과 국내 언론에 실렸지.”

20년 전 항쟁의 중심에 섰던 그가 오늘날의 시위문화를 보는 감회는 남다르다. 인 전 위원장은 최근의 시위에 대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국민의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주부, 넥타이부대와 예비군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이 거리로 나와 평화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상황은 국민의 높은 의식수준, 시민혁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은 초반 평화시위에서 ‘반미’‘정권퇴진’등으로 집회의 성격이 조금씩 과격해 지면서 시위의 본질이 벗어나는 상황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다.

“6월항쟁도 보면 처음에는 ‘독재타도, 호헌철폐, 대통령은 우리손으로’였습니다. 그런데 후반에 시위가 변질되면서 구호가 바뀌더라고요. 과격한 구호도 나오고, 세력이 흩어지고, 민주화세력이 분열되고. 그래서 정권 교체를 못했습니다. 각각 흩어진 역량 때문에. 6월항쟁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그런 상황을 우려를 하지요.”

■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유시춘(58)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은 당시 국본의 상임위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가 열린 6월 10일 성공회 대성당 종탑에 올라갔다.

99년 작고한 계훈제 선생의 제한으로 체육관 선거를 통해 발표된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권력승계 무효화를 선언하고 분단 독재 세월(42년)을 상징하는 42번의 종을 치기 위해서였다. 낭독은 국본 상임 공동대표인 지선 스님이, 타종은 유시춘 전 상임위원이 담당하기로 했다.

“지선 스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시청과 광화문에 울려 퍼졌죠. 종을 치니까 종소리에 놀란 비둘기들이 확 날아올라 흩어지는 거예요. ‘아 오늘 대회가 성공할지도 모르겠구나’ 느낌을 받았죠.”

오후 6시 성공회 대성당에 있던 집행부는 거리 시위를 위해 정동 세실레스토랑 방향으로 나오는 길에 10분만에 전부 연행됐다. 당시 유 이사장은 구로경찰서 앞마당을 가득 메운 대학생 2,000여명과 마주치고 “예삿일이 아니구나”를 직감했다.

“마포로 해서 광화문으로, 청량리로 가는데, 종로통이 완전 전쟁통이더라고요. 이게 보통 성공한 게 아니구나 생각했죠. 가슴이 벌렁벌렁 뛰더라고.”

유 전 상임위원은 오늘날의 시위와 당시 시위를 비교하면 “구석기 시대와 산업사회 시대만큼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20년 전 항쟁은 지도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상황을 진단하면 국민이 동의해 주는 형식이었지만, 수동과 능동의 구분이 없어진 것 같다고.

“분노의 강도라는 점에서 그때가 훨씬 더 했죠. 지금은 완전히 자발적 시위라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자발적 불특정 다수가 모였음에도 굉장히 평화적인 시위가 인상적입니다.”

유 전 상임위원은 “시민의식은 21세기 이지만, 정부의 발상은 19세기 인 현실이 이번 사태의 배경이라 본질”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는 과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저는 권리의식을 쟁취한 10년이라고 봅니다. 매체환경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 정부는 지난 10년간 국민 의식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알고 있다고 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 송영길 통합민주당 의원



앞의 두 사람이 국본의 집행부로 6월항쟁을 겪었다면 통합민주당 송영길(45) 의원은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감격을 순간을 맛보았다. 당시 학생운동 경력으로 연세대 재적 후 인천 한 공장에 위장취업, 노동운동을 벌였던 송 의원은 같은 학교 후배 이한열이 사망하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서울로 왔다.

“돌 던지고, 최루탄 던지고 해서 상당히 시위가 치열했습니다. 그러다가 한열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한열이가 연대 경영학과 직속 후배였고, 둘 다 고향이 광주라서 서울로 갔죠. 그리고 ‘이한열열사 장례집행위원’으로 국민장 치르느라 몇 주 동안 연세대에서 살았습니다. 6.29 선언 나올 때까지.”

6.29 선언 이후 그는 다시 7,8월 인천에서 노동자 대투쟁을 계속했다. 그는 “지금도 그때 사람들과 종종 6월항쟁을 말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시위를 조직적으로 주도했고, 승리의 경험으로 20년 동안 각계각층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그는 “6월항쟁의 승리가 386세대의 역사적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4번째 촛불집회를 다녀왔는데, 민주주의를 경험한 세대에서 자란 지금의 10대, 20대가 별로 경찰을 두려워 하지 않더라고요. ‘내가 국민이고, 주권자이고, 내가 뽑은 대통령이다. 그런데 불만이 있으니 대통령 만나서 얘기 하겠다’. 경찰도 비키라고 하고. 경찰이 뭐라고 하면 핸드폰으로 찍고. 인터넷이라는 횡적 네트워크로 물 흐르듯 공론이 모아가는 것을 보면서 ‘한 시대가 바뀌었구나’를 실감한 것 같습니다.”

이어 그는 촛불시위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시위 기간 진행된 보궐선거와 낮은 투표율을 말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투표 참가율이 20%, 총선도 40%밖에 안되면서 역설적으로 직접민주주의의 한 단면이라는 촛불시위는 무섭게 참여합니다. 약간의 부조화, 모순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궐선거 기간, 촛불을 아무리 들어도 선거 참여 안 하면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촛불이 꺼지고 국회가 이 의견을 수렴해서 법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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