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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민족주의와 자원카르텔의 망령
'가스 오펙' '쌀 수출기구'등 결성 움직임… 국제분쟁 새 불씨로 작용할 듯
유국들 배타적인 권리 확보 위해 뜻 모아
러시아 등 쌀·천연가스 수출국 적극적으로 참여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



미국 최대 창고형 할인업체인 코스트코가 1인당 쌀 판매를 제한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고객들이 샌프란시코 매장의 쌀 진열대를 둘러보고 있다. 국제 쌀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국에서도 쌀 사재기가 성행하자 월마트 계열의 샘스클럽도 비슷한 조치를 내렸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신민족주의 물결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것과 때를 맞춰 자원의 생산과 공급을 통제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원 카르텔’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원을 확보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생사를 건 쟁탈전 양상으로 격화하는 판국에 자원 카르텔이 곳곳에서 형성된다면 에너지의 국제수급 왜곡은 물론 자칫 국가 간의 분쟁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존 카르텔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같은 지정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지역 블록의 성격을 띤 것이라면 지금의 카르텔은 특정 자원 보유, 생산국들을 중심으로 관련 국가들이 배타적인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얼마 전까지 거론됐던 새로운 자원 카르텔 유형의 대표격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본 딴 ‘가스 오펙’이었다. 가스의 주요 생산국들이 오펙 회원국처럼 가스의 생산과 공급을 통제해 국제 가스시장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자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오펙의 성격을 쌀에 적용하자는 ‘쌀수출국기구(OREC)’ 결성 움직임이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쌀이 부각된 것은 물론 올해 들어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곡물가와 관계가 깊다.

곡물가격이 불과 1년여 사이에 2배 이상 급등해 수요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정작 공급자인 생산국가와 생산자들은 가격 폭등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카르텔 형성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이다. 생산국들은 복잡한 유통 경로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국제 곡물시장에서 자신들이 단합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혜택에서 소외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쌀수출국기구 결성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쌀 생산국인 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델타 지역의 5개국이다. 이미 이들 나라들 사이에는 쌀 오펙 결성에 대한 대략적인 의견이 오고 갔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세계 쌀 생산 및 수출 1위인 태국의 사막 순다라벳 총리는 최근 “석유는 비싸게 수입하면서 쌀 생산의 중심지인 우리가 쌀에 갖는 영향력은 미미하다”며 “이 같은 불공정을 고치기 위해 미얀마 정부 총리와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태국 정부의 이 같은 발언이 나온 이후 캄보디아도 쌀 카르텔에 적극 참여할 뜻이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러시아가 쌀 카르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도 쌀수출국기구 결성과 관련해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6월 쌀 생산 및 수출국들과 쌀 생산, 교역을 조정하기 위한 쌀 오펙 창설을 제안한 적이 있고, 대표적인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도 이 제안에 동의를 표시했다.

기름값 인상을 반대하는 필리핀 시위대. 최근 유가 폭등의 주범으로 꼽히는'오일 카르텔'에 대해 정부가 단호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연간 1,200만톤, 1,000만톤의 쌀을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는 농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4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정하고 5년 내에 세계 3대 곡물 수출국으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장기적으로 연간 1억톤의 곡물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5년 내에 휴경지 개발 등을 통해 최소 3,000만톤의 곡물을 증산한다는 내용이다. 러시아 정부는 곡물가격이 올라가고 수요가 급증하는 지금이 이 같은 프로젝트를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는 적기라고 보고, 그 일환으로 쌀 카르텔 형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쌀 카르텔이 당장 실현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석유시설을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중동국가들과 달리 쌀은 공급시장이 자유화돼 있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주된 이유이다. 쌀 수출국기구 결성 문제가 7년 전에도 제안됐다 논의가 중단된 것도 생산 및 가격 통제에 대한 각국 정부의 이견 때문이었다.

델타 유역 5개국 중 라오스와 베트남 같은 공산국가는 정부의 통제가 가능할 지 모르지만, 태국 같은 자유시장 체제에서는 가격에 따라 농민들의 쌀 생산량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공급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점 때문에 당장 실현성이 떨어지는 쌀 오펙 대신 쌀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정보교류 차원에서 ‘쌀수출협력위원회’를 먼저 결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지금은 잠시 수면 아래로 들어가 있지만 가스 오펙 구상이 갖는 잠재적 폭발력은 여전하다.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세계 3대 천연가스 수출국을 비롯한 가스수출국포럼(GECF) 15개 회원국들은 지난달 9, 10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회의에서 각국 에너지 담당 차관이 참석하는 ‘가격정책 연구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가격 통제 카르텔에 대한 이론적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GECF 회원국 중 이란 베네수엘라 리비아 카타르 등 상당수 국가가 오펙 회원국이어서 카르텔에 호의적이라는 점, GECF 회원국들이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과 생산량에서 각각 73%와 42%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는 점에서 GECF가 제2의 오펙으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이지 방향을 바꿀 수는 없는 대세라는 지적이 많다.

볼리비아의 한 노동자가 천연가스 저장탱크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자원 민족주의 바람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부활을 가져오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특히 중남미에서 막강한 자원의 힘을 배경으로 한 포퓰리즘이 다시 준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뉴스위크는 최신호(5월12일자)에서 “힘든 시절 중남미에서 성행했던 포퓰리즘이 경제가 번성하고 있는 지금 또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유가 덕에 중남미 경제가 살아났지만, 빈부격차는 여전한데다 오히려 정보교류는 활성화해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더욱 커졌다는 점이 포퓰리즘 부활의 토양이라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사례가 중남미 좌파정권의 외국계 기업 국유화 조치이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지난 1일 이탈리아의 텔레콤이탈리아 자회사인 통신기업 엔텔을 비롯한 4개 외국계 기업을 국유화한데 이어 영국 석유업체 BP가 50% 지분을 가진 차코 등 3, 4개 외국계 기업을 추가 국유화할 예정이다.

“이들 기업들이 쌓은 부는 대통령도, 정부도 아닌 볼리비아 국민의 것”이라는 논리가 다국적 서방기업의 공장을 빼앗는 절대적 명분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잇단 자원 국유화정책, 아르헨티나 정부가 최근 단행한 곡물 수출관세 인상도 대표적인 포퓰리즘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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