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빌딩 지정 확대 등 사회전반에 거센 금연열풍

서러운 골초들, 거리로 내몰린다

금연빌딩 지정 확대 등 사회전반에 거센 금연열풍

7월 10일 오전 10시 무렵 서울 태평로 삼성 타운. 삼성 본관과 태평로 빌딩 사이 골목을 20㎙ 가량 들어 서자 흰 와이셔츠 차림의 샐러리맨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족히 30명은 넘어 보인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의 맛에 흠뻑 젖어 있는 이들부터, 시간에 쫓기듯 연신 급하게 담배 연기를 빨아 들이는 이들까지.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주차장 안쪽 깊숙한 곳에는 20대로 보이는 여성 2명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지난해 5월, 다른 빌딩들에 비해 1년여 먼저 건물 전체를 ‘금연 빌딩’으로 지정한 이후부터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담배요? 지독한 골초죠. 하루에 한 갑도 넘게 피는 것 같은데. 스물 두살 때부터 피우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13년 정도 된 것 같네요.” 27층 짜리 태평로 빌딩 24층에 근무한다는 삼성캐피탈 최모(35) 대리는 ‘노상 흡연’에 이젠 꽤 익숙한 모습이다. 최 대리는 오르락 내리락 10분 이상 걸리지만 하루에 대여섯 번 정도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1층까지 내려오는 수고를 한다고 했다.

“상사들 눈치도 보이고, 아내고 담배를 끊으라고 아우성이어서 이 기회에 담배를 끊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좀처럼 어렵네요. 어떻게 하겠습니까. 못 끊는다면 불편을 감수해야죠.”


흡연자 설 곳이 없다

술과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점은? 혹자는 술이 더 나쁘다고, 혹자는 담배가 더 나쁘다고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술이 자신의 건강만 해치는 반면, 담배는 다른 사람의 건강까지 함께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늘 당당한 주당(酒黨)들과 달리 “흡연권을 인정해 달라”는 애연가들의 절규에는 어딘가 힘이 없어 보인다. 담뱃값을 올린다고 으름짱을 놓아도, 건물에는 담배 필 곳이 없으니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쳐도, 변변한 대꾸 한 번 못한 채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는 것도 그들 스스로 담배의 해악성을 익히 알고 있는 탓이다.

7월, 애연가들에게 또 하나의 족쇄가 채워졌다. 금연 시설과 금연 구역을 대폭 확대한 새 국민건강증진법 시행 규칙이 본격 시행된 것이다. 연면적 3,000㎡(908평) 이상 사무용 건물과 2,000㎡(605평) 이상 복합건축물 등이 금연 구역으로 새롭게 지정됐고, PC방 공중목욕탕 만화방 등에서는 정해진 흡연 시설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했다.

사측이 혹은 건물주가 건물 내에 별도의 흡연실을 만들어 준다면 고맙겠지만, 이마저도 매몰차게 외면한다면 별 수 없다. 담배 한 가치를 빼 문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밖 거리로 나갈 수밖에. 고민도 많다. “이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느니 이 기회에 담배를 끊어 버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상사의 꾸중 몇 마디에 다시 건물 밖으로 향한다. 그리곤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며 자조한다. “내 팔자에 금연은 무슨….” 2만~3만원의 과태료 보다 애연가들을 더욱 우울하게 하는 건 사회적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 하는 자신이다.


하루에 500~600층을 오가는 사람들

‘금연 빌딩’ 확산 조치 이후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들은 고층 빌딩 근무자들이다. 아무리 담배를 피고 싶다 해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십 층을 오르내리는 일이 간단치 만은 않은 탓이다.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인 서울 여의도 63빌딩. 건물 내 흡연이 완전 금지된 7월1일 이후 1층 로비 외곽이나 분수대 주변은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이 됐다. 근무 시간이면 어느 때를 막론하고 70~80명이 몰려 담배를 피워 대는 곳이다. 고층 근무자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하루에 통톨어 500~600층을 오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엘리베이터가 초고속으로 운행된다고는 하지만 꼭대기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데만도 7~8분은 걸리는 탓에, 일단 자리를 잡으면 2~3가치씩 줄 담배를 피워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건물 35층에서 근무하는 대한생명 직원 우모(30)씨는 7월 이후 흡연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사례. 업무 시간에는 담배를 피우기가 힘들기 때문에 출근 전에 한 대, 점심 시간에 한 대, 그리고 퇴근 길에 한 대 등 ‘하루 3회 담배 피기’가 일상이 돼 버렸다.

우씨는 “예전 같으면 담배 한 갑을 사면 하루를 채 가지 않았는데 요즘은 이틀에 한 갑 정도를 피는 것 같다”며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1층까지 내려갈 때는 담배를 아예 끊어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예 ‘절연(絶煙)’을 한 직원들도 적지 않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박모 과장은 “하루 10개피 정도 담배를 피워 오다 7월 들어 아예 담배를 끊어 버렸다”며 “주변 직원들 중에서도 금연 대열에 동참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라고 전했다.

인근에 위치한 35층 LG 쌍둥이 빌딩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에 서너 차례는 흡연을 위해 1층으로 내려온다는 LG화학 한 직원은 “3일 정도 담배를 끊었다가 결국 다시 피우게 됐다”고 했다. 그는 “공항의 밀폐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만큼이나 비참하게 느껴진다”며 “기회가 닿으면 다시 한번 끊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성 흡연자, 음지에서 양지로

“거 참, 꼴 사나워서….”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층 짜리 K빌딩. 건물 내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한 50대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찬다. 7월 들어 행인들이 많이 오가는 건물 앞에서 20~30대 여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되는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건물에 여행사 등 여직원 비율이 높은 회사들이 많이 입주해 있는 탓에 건물 앞 흡연자들의 대다수가 여성들인 탓이다. 아주머니는 “예전에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앞에서 담배를 많이 피우더니 요즘에는 훤한 대낮에 길 거리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 댄다”며 못내 마뜩찮은 표정이다.

새 법이 시행된 이후 여성 흡연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흡연실이나 화장실 등 닫힌 공간을 떠나 어쩔 수 없이 ‘양지’로 나왔지만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여행사에 근무한다는 한 20대 여성은 “처음에는 길 가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바람에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몰랐다”며 “젊은 사람들이야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의 눈총은 아직 따갑다”고 말했다. 옆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던 동료 여직원은 “얼마 전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심한 욕설까지 하더라”고 거들었다.

패션몰이 밀집해 있는 동대문 일대에서도 여성 거리 흡연자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패션몰 두타에서 일한다는 한 상인은 “요즘은 건물 앞 야외 광장에서 여자들이 담배 피우는 것이 아주 일상이 됐다”며 “여성 흡연율이 이렇게 높은 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담배를 같이 피울 수 있는 동료 여직원이 있는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경우. 사무실에서 ‘나 홀로 흡연’을 해왔다는 한 여직원은 “혼자 길 거리에 나가서 담배를 피울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요즘 같아서는 담배를 정말 끊어 버리고 싶다”고 씁쓸해 했다.


'몰래 담배'도 횡행

하지만 아직 당국의 단속이 본격화하지 않은 탓인지 ‘몰래 담배’가 횡행하는 곳도 여전히 적지 않다.

서울 강남역 인근 L빌딩. 22층 짜리 건물에 들어서면 층마다 복도에서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한 직원은 “아직 회사측에서 흡연에 대해 별다른 방침이 내려온 것이 없어 복도나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빌딩 내 음식점들도 ‘불법 흡연’이 활개를 친다.

서울 성수동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최모(46)씨는 “소주 한 잔 들어가면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워 무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며 “그 때마다 제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금연-흡연 구역을 나눠 설치하도록 한 PC방이나 만화방 등도 생색 내기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 업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간에 칸막이 조차 없이 구역을 나눠 놓아 금연 구역 지정의 실효성이 없는 탓이다. 서울 구의동 C PC방 직원은 “공간이 협소해 구역을 분리한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며 “흡연 구역에 유리 칸막이를 하고 환풍 및 에어컨 시설을 별도로 갖추려면 상당한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영태기자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