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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돈] 권력의 불나방 '돈'

실세 주변으로 몰리는 정치자금, 돈 주무르다 정권과 함께 몰락







대검 중수부는 8월15일 현대의 대북사업 등을 지원하는 대가로 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구속 수감했다.

권 전 고문이 돈 문제로 교도소에 간 것은 이번이 세번째. 첫번째는 1997년 한보사건때. 그 해 3월 권 전고문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국감조사 무마용으로 뇌물(2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같은 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 추징금 2억5,000만원을 선고 받고 98년 8.15 특사 때 복권됐다.

권 전고문은 지난해 5월 진승현 게이트의 핵심으로 지목돼 두번째로 구속됐다. 1심에서 5,000만원 수뢰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최근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정계 복귀’ 가능성도 점쳐졌다. 그러나 또다시 현대비자금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의 정치 재개는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권 전고문은 한국정치사에서 ‘측근정치’의 대명사로 통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고향 및 학교 후배인 그는 1963년 김대중 의원의 비서관을 시작으로 40년간 김 전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을 해 왔다. 범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주로 조직이나 자금 관련 일을 도맡아 오며 각종 선거에서 공천과 자금 지원 등에 깊숙이 개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고문이 40년간 김 전대통령의 측근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자금 동원력과 관리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스스로 자신을 ‘정치자금의 정거장’이라고 밝혔듯이 현 여권 인사 가운데 권 전 고문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는 게 당내 일반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현대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정치생명이 다할 것으로 예상되는 권 전고문은 너무 태양(권력) 가까이 날아 올랐다가 밀랍 날개가 녹아 추락한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에 비유되기도 한다.


권력의 단맛서 헤어나지 못해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의 단맛과 이중성의 함정에 빠진 이카루스는 비단 권 전고문만이 아니다. YS정권 시절 정치권 사정의 첫출발인 슬롯머신사건(93년)에 연루돼 구속된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자민련 의원이 있다.

박 전의원은 구속 직전 “새벽이 왔다면서 닭의 목은 왜 비트는지 모르겠다”며 YS에게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실세 중의 실세로 정치자금은 물론, 공천과 인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슬롯머신 업자인 정덕진 형제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당시 정치권의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했다.

한보사건에 연루돼 구속 수감된 YS의 차남 김현철씨도 같은 부류로 분류된다. YS 시절 “권력은 소통령(김현철)으로 통한다”고 할만큼 정치 자금과 인사 청탁이 김씨에게 몰렸다는 게 주변의 증언이다.

현철씨와 함께 ‘YS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광화문팀’의 한 멤버는 “대선후 청와대쪽보다 현철씨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말해 김씨의 위상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짐작케 했다. 현철씨의 영향력 정도는 YTN의 인사 개입 내용이 담긴 이른바 ‘박경식 테이프’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6공화국에서 여당 대표를 지낸 박태준 전 총리는 YS 정권이 들어선 93년 포철 계열사와 협력사로부터 56억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3년여 정치적 망명생활을 보내야 했다.

DJ 정권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복심(腹心)’, ‘대통령(代統領)’이라는 별칭이 뒤따른 박지원 전 청姑?비서실장은 권 전고문과 차이가 있지만 나름대로 ‘친(親) 박지원’의원들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DJ 정권에서 각종 게이트가 불거질 때마다 이니셜 ‘P’로 자주 등장했지만 법망에 걸려들지는 않았다.


고비용정치 구조가 빚은 필연



한참 잘 나가던 시절, 돈을 만지거나 받은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정치인은 이외에도 많다. ‘떡을 만지면 떡고물이 손에 묻기 마련’이라는 이후락 전 안기부장의 말에서 보듯 각 정권의 실세 주변에는 늘 돈의 그림자가 떠돌았다. 이는 고 비용정치에서 비롯된 필연의 산물이기도 하다.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98년 경성비리 사건으로, 백남치 전 신한국당 의원은 동아비리(99년), 이신행 전 한나라당 의원은 기아 비리(97년) 등과 관련해 구속됐고, 91년 수서비리 사건 때는 오용운 이태섭 이원배 김동주 김태식 의원 등이 구속됐다.

'朴통'때 정착, 한국정치 고질병으로
  








고 비용정치에 따른 정경유착은 역대 정권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이승만 정권의 대표적인 사례는 중석불(重石弗) 사건과 은행 민영화 특혜. 중석불 사건은 텅스텐 수출대금 470만 달러를 정치권과 결탁한 삼호기업에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다.

은행 민영화 특혜는 정부 소유의 부실 상업은행 5개를 민영화하면서 권력 핵심부와 관계가 좋았던 삼호기업 등에 넘겨준 사건이다.

정경유착이 정착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66년)을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사례로 정치학자들은 들곤 한다. 당시 박 정권은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건설자재로 위장해 사카린 원료를 수입, 밀매하는 것을 묵인해 주고 그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받아 문제가 됐었다.

전두환 정권 때는 장영자 사건, 명성사건 등을 거치면서 정경유착이 공고화됐다. 권력층의 친인척 비리가 두드러진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동국제강은 자신보다 규모가 큰 동진제강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순자 여사가 운영하던 '새세대 심장재단'에 20억원을 기부해 삼성. 현대 등을 제치고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 때는 율곡비리. 고속전철사업비리 등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불거졌고 YS정권 때는 현철씨를 비롯해 민주계 권력 실세들의 개입이 눈에 띈다. 최대 비리사건은 한보사건.

DJ 정권에서는 붐을 이뤘던 벤처기업과 연계된 정경유착, 제 2금융권 비리가 두드러졌다.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 등과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들어간 종금사와 부실기업을 둘러싼 권력비리 등이 그것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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