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 기업 스스로 해결 강조, "개발독재 향수" 비판도

朴통 블루스… 총수들의 반란?

경제난 기업 스스로 해결 강조, "개발독재 향수" 비판도

리더십이 없다. 재계가 목을 빼고 '박정희 블루스'를 외치고 있다.

재계 원로들과 기업 총수들이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와 회장단-원로자문단 모임을 갖고 "현재와 같이 리더십부재의 상황에서 더 이상 정부에 기대가 보다는 기업 스스로가 경제난 타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 목청을 높였다. 이번 회의에는 손길승 SK회장을 비롯, 이건희(삼성), 조석래(효성), 강신호(동아제약), 김승연(한화), 이용태(삼보컴퓨터) 회장 등이 참석했다.

또 김각중 전경련 명예회장. 남덕우 전총리, 김준성 전 부총리,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송인상 효성고문. 이승윤 전 부총리 등이 재계 원로로 배석했다.

재계 원로와 총수들은 "현 경제 상황은 40년만에 최악"이라며 경제난과 기업 환경 악화에 대해 심각한 위기 의식을 표명하며 "현재의 정부에는 과거의 박정희 대통려, 영국의 대처 총리, 독일의 아데나워 총리같이 중심을 잡고 경제난을 타개할 수 잇는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고 꼬집었다. 재계인사들은 이어 "정부에 의존하기 보다는 기업 스스로가 단합해 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야 한다"며 '재계 홀로서기'를 해결책으로 꼽았다.

한 참석자는 "경제가 심각하고 민심이 바닥으로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정치가 어떻게 되든 재계가 중심을 잡고 리더십을 확고히 해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줘야한다"고 역설했다. 또 다른 인사는 "30년간 회장을 해 왔지만 언제 조용한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하면서 현재의 어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자신이 있다"고 기업의 자력 갱생을 강조했다.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 재계 홀로서기 의지

재계가 입을 모아 '리더십 부재'라는 블루스를 합창한느데는 참여 정부 출범 후 노사 정책이나 정부 정책 등에 일관성이 없는데다, 정부가 성장 위주 정책을 확고히 펴나갈 것이란 점을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주력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집단 이기주의나 국론 분열 등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날 재계 총수들의 모임에서는 정부 정책에 여전히 일관성이 결여돼 있고 예측 가능성이 희박해 인내의 한계에 와 있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근 1년만에 전경련 회의에 참석, "21세기는 경제가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핀란드나 스웨덴 처럼 작지만 강한 나라를 모델로 일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역할이며, 재계 원로들이 국민 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주면 기업들은 적극 실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재계 인사는 정부에 대한 기대를 상당 부분 접은 듯 "정부가 세제 지원등 구체적인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 보다는 먼저 안심하고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도 "재계 인사들이 '홀로서기'를 강조한 것은 현재 우리 국가의 발전 단계를 볼 때, 경제가 중요하며 어느때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재계가 외치는 '리더십 부재'를 블루를곱게 만 듣지 않는 시각도 만만찮다. 태풍 피해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재계가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것은 가뜩이나 힘 빠진 정부를 오히려 더 흔들어 대는 재계의 반항의식이라는 지적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이라크 파병요구, 태풍 매미로 인한 엄청난 피해 등 일견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맞아 민심이 동요돼 국력을 모야야 할 시점"이라고 전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향수를 보이거나 '정치야 어떻게 돌아가든 경제가 굳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냉소주의이며 정부에 대한 재계의 도전 행위"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분식 회계 혐의로 불구속된 데 이어 비자금조성과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사법처리가 임박한 손길승 전경련 회장을 재계 총수들이 재신임한 것은 부도덕한 행위를 오히려 옹호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경련 원로와 회장단이 손 회장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며 박수를 치고 격려하기까지 한 것은 재계 전체가 도덕 불감증에 걸렸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냉소주의·집단 이기주의 시각도

이달초 주요 기업 전문 경영(CEO), 임원진 등 200여명이 회동한 가운데 전경련은 "윤리와 정도에 입각한 경영을 펼치기 위해 부당하 정치 자금을 제공하지 않고, 기업의 조직과 인력을 정치적 목적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 발표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전경련 회장단이 손 회장을 재신임한 것은 회원사들의 윤리경영 실천 의지를 비웃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재계 총수들이 과거 정경 유착으로 점철된 개발 독재 시대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민주적 리더십의 정착 과정을 비웃고 있다"며 "자신들의 도덕 불감증은 물론, 분식 회계 같은 숱한 도덕적 해이를 뜯어 고치려는 놀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전경련과 미묘한 갈등을 보여 온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구본무 LG그룹회장이 회장단 회의에 나란히 불참해 이들이 전경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전경련 회장단을 구성하고 있는 재계 총수들은 평상시에도 바쁜 일정을 이유로 해 절반 이상이 회의에 불참한 것이 관례라는 사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전경련과 현대차·LG의 갈등설은 결코 쉽게 진화되지 않는 분위기다.

재계에 따르면 구본무 회장은 공식적으로 미국 현지 거래선과 LG사업장 방문을 위해 출국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정몽구 회장은 수해를 입은 울산 징겨 협력 업체에 대한 점검을 이유로 회장단 회의에 불참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얼마 전 임금단체 협상과정에서 보여온 전경련의 태도에, LG그룹은 하나로 통신 인수와 수도권 반도체 공장 증설 허용 촉구 과정에서 보인 전경련 입장에 대해 아직도 앙금이 가시지 않은 분위기다.

특히 현대차는 노조의 주5일 근무제 요구에 대한 재계 차원의 지원 요청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다 막판에 수용한 것에 대해 전경련이 공식 성명까지 내며 공박한 일에 화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기업을 보호하고 대변해 줘야 할 전경련이 지원은 못할 망정 오히려 궁지로 내몬 것은 전경련의 존재 의미까지 재고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LG그룹도 전경련이 재계 전체의 이익보다는 특정 기업에 편향돼 있다는 의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LG그룹은 불화설 이후 납부하지 않아 온 회비 가운데 6,000만원을 최근 납부했지만 그 간의 불편한 심기를 쉽게 접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재계는 물론, 전경련에도 '리더십 부재' 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장학만 기자


장학만 기자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