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기치 들고 뭉쳤던 꼬마 민주당·한나라당 탈당파

'수덕사 결의' 물거품 되나?
정치개혁 기치 들고 뭉쳤던 꼬마 민주당·한나라당 탈당파

“이게 아닌데…”. ‘국민적 신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의 창당 준비위 발족(10월27일)을 전후해 안팎에서 잇단 악재가 터지면서 나오는 말들이다. 당 밖으로는 민주당의 대선자금 공세로 여론이 악화되고, 당내에선 헤게모니를 둘러싼 계파간 불협화음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게 요즘 우리당의 현실이다.

‘우리당=노무현 신당’이란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불거진 대선자금 문제는 자칫 우리당이 뿌리를 내리는데 암초가 될 전망이고, 민주당 출신 신당파간의 파워게임이 치열해지면서 우리당 호(號)에 몸을 실은 여타 세력들 사이에서 불만이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 일부의원 우리당 합류 주춤

그러다 보니 우리당에 합류하기도 했던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머뭇거리는 상태이고, 11월10일 중앙당 창당대회에 대비한 2차 외부 영입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우리당의 모습에 가장 큰 실망과 우려를 나타내는 그룹이 이른바 ‘수덕사 모임’ 회원들이다. 수덕사 멤버들은 올해 초부터 정치권의 최대 화두였던 ‘신당’ 논란이 민주당 신ㆍ구주류 간에 힘겨루기로 제자리를 맴돌 때 수덕사에서 신당의 기치를 높이 들어 주목을 받았다.

‘수덕사 모임’도 그때 붙여진 별칭이다. 멤버는 한나라당 탈당파인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안영근 김영춘 의원 등을 비롯해 70여명이 주축. 이 모임의 근간은 종래의 지역주의 구도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자는 것으로, 민주당 신주류가 주창했던 ‘신당’노선과 맥락을 같이했다.

수덕사 모임이 태동한 것은 지난 2월 충남 서천에서 열린 나소열 서천군수의 결혼식이 계기가 됐다. 민주당 당료를 지낸 나 군수는 4전5기 끝에 기초 단체장에 당선돼 늦장가를 가게 됐고 그를 축하해주기 위해 이철 전 의원, 김부겸 의원 등 과거 꼬마민주당 출신 20여명이 모였던 것이다.

꼬마민주당은 95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민주당에 속해 있던 친DJ 성향의 의원들이 대거 탈당한 뒤 남은 세력 중심의 민주당을 말한다. 이들은 96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라는 조직을 만들어 총선에 뛰어들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김원기 우리당 공동대표, 이부영 김부겸 김원웅 김홍신 의원, 이철 박계동 제정구(작고) 김정길 이미경 전 의원, 유인태 정무수석 등이 멤버였다.

나 군수 결혼식장에서 만난 꼬마민주당 인사들은 4월 서천군 축제에 다시 모여 1박2일 동안 머물며 본격적으로 새로운 정당(신당)에 대해 논의하고 세력화를 도모했다. 이때 참석한 인사는 안영근 서상섭 의원, 이철 장기욱 전 의원, 나소열 군수, 장준영 전 교토통신 특파원 등 40여명이었다.

이 모임은 회를 거듭할수록 정치성을 띠면서 세력이 확장됐다. 5월 초 부산 송정 임해수련원에서 3차 모임을, 5월 말에는 경기도 남양주 다산기념관에서 4차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는 민주당의 신당 논의와는 별도로 ‘새로운 정당’ 창출 의견이 모아졌고, 회원도 60~70여명으로 늘어났다.

수덕사 모임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것은 6월21일 예산 수덕사에서 가진 5차 모임 때다. 당시 민주당의 신당 논란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나라당을 탈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 그동안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이우재 김영춘 의원이 참석했고, ‘제3 신당’ 창당에 대한 ‘도원 결의’를 다져 주저하던 민주당 신당파에 동력을 제공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보름 뒤인 7월7일 수덕사 멤버 중 이부영 이우재 김부겸 안영근 김영춘 의원 등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통합연대’를 결성, ‘제3 신당’의 한 축이 되면서 신당 창당에 가속도를 붙였다. 9월7일에는 정치권밖 개혁세력이 주축이 된 신당연대와 통합연대, 개혁국민정당이 ‘국민통합 개혁신당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시민단체와 각계 인사 1013명이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1000인 선언’을 발표, ‘제3 신당’ 창당을 목전에 두었다.


민주당 신당파와 손잡으며 균열

그러나 새 정당의 틀을 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온 ‘수덕사 모임’이 막판 민주당 신당파(통합신당)와 손을 잡으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임의 중심적 역할을 해온 한나라당 탈당파 5명이 회원과 충분한 협의 없이 9월20일 통합신당과 전격적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이에 대해 수덕사 모임의 한 핵심 인사는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이 멍했다”고 말한다. 그는 본래 ‘제3 신당’의 로드맵은 한나라당 탈당파를 포함한 수덕사 모임, 민주당 신진세력, 시민단체, 참신한 전문가그룹이 중심이 돼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당을 결성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 문제가 있는 인사들까지 참여시키는 형태는 아니었다는 것.

현재 수덕사 모임은 열린우리당의 창준위 발족과 함께 ‘참여파’와 ‘관망파’로 갈린 상태다. 이철 장기욱 전 의원은 발기인으로, 최욱철 전 의원은 강원도 창준위원장, 유영훈 통합연대 사무처장과 이희원 통합연대 운영위원은 우리당 상임위원, 한인철 통합연대 운영위원은 우리당 조직팀장, 또 통합연대와 개혁신당에서 활동한 김영진 김서용씨 등은 우리당에 합류했다.

반면 고창근 경희대 교수, 최희원 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장준영 전 교토특파원 등 일부는 관망파로 남았다.


제 목소리 못내는 수덕사 모임 출신들

문제는 당 내분과 외부 정치 환경의 악화로 우리당에 참여하고 있는 수덕사 모임 회원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김원기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출신들이 당을 장악하자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 주니어 개혁파들이 반발하고, 대선자금 문제로 민주당과 신당(우리당)이 다를 게 없다는 여론이 비등하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수덕사 모임 출신들은 전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희원 상임위원은 “지금의 우리당이 본래 수덕사 모임이 추구했던 신당의 모습과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점차 개선해나가는데 회원들의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부터 수덕사 모임을 이끌어 온 이철 전 의원은 “수덕사 모임은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 맑은 정치구조를 지향하면서 분열이 아닌 통합, 갈등 대신 화합, 전면적 부정이 아닌 단계적 개혁을 추구했는데 지금 우리당이 이에 못미치는 것은 인정한다”면서 “그렇다고 또다시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성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치상황상 어려운 만큼 우리당을 개혁해나가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한 ‘개혁’에 수덕사 모임이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요즘도 그 때문에 사람 만나는 일과 대책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1-05 10:5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