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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바뀐 '그 나물에 그 밥'
'자기 복제'틀에 갇힌 PD들,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



자기 복제의 덫에 걸려 시청자의 외면을 초래하는 PD들이 속출하고 있다. 복제는 타인의 작품을 자기 것으로 하는 도용하는 차원도 있지만 자기의 작품을 복제하는 자기 복제도 있다. 남의 것을 복제하면 사법적 도덕적 비난을 받지만 자기복제는 대중의 심판을 받는다.

대중문화 현장에서는 자기복제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대중문화의 자기 복제 판단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왜냐하면 언뜻 자기복제는 연출자, 작가, 감독들의 독창적인 자기만의 스타일과 내용, 형식을 견지하는 작가주의적 성향과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자기복제와 작가주의 지향은 엄연히 구분된다. 얼마나 매너리즘적 모습이 강하게 드러나느냐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여인천하, 왕의 여자 '그여자가 그여자'



최근 드라마 연출자중 자기복제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식상함을 안겨주며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우리가 말하는 스타PD들이 그렇다.

사극의 최초의 연출자이자 30여년 넘게 사극 연출의 외길을 걷고 있는 김재형PD의 SBS 대하사극 ‘왕의 여자’는 자기 복제의 대표적인 경우다. 50%대에 가까운 시청률을 올리며 궁중 내 여성들의 질투와 권력욕을 갈등적으로 그린 치마사극의 전형 ‘여인천하’와 너무 닮아 있고, 연출 스타일 또한 복제에 가까운 것이다.

지난 2001년 2월부터 2002년 7월까지 방송된 ‘여인천하’는 조선 중종조 정난정(강수연), 문정왕후(전인화), 경빈(도지원)이 벌이는 권력을 잡기 위한 치열한 여인네들의 음모와 암투를 주요 소재와 주제로 내세워, 갈등을 증폭시키는 샷, 그리고 목욕신 등 끊임없는 볼거리 제공, 카리스마를 내세운 캐릭터들의 연기 등이 조화를 이뤄 정통사극을 후퇴시켰다는 비난을 받았으면서도 50%대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는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10월에 시작한 김재형PD의 ‘왕의 여자’는 방송된 지 한 달이 됐어도 한자리수 시청률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저조한 시청률이 나오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개똥이(박선영), 동정월(김혜리), 인빈(이혜숙) 등 여인네들이 벌이는 권력 다툼이 ‘여인천하’의 저변에 흐르는 기류와 비슷하며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장치도 비슷하다.

그 중 목욕신이 대표적이다. 또한 ‘왕의 여자’는 ‘여인천하’ 처럼 대립적인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장면과 인물 설정이 남발돼 있다. 여기에 간간히 끼어드는 액션신까지 유사한데 ‘왕의 여자’에선 이훈이, ‘여인천하’에선 박상민이 액션연기를 하고 있거나 했다.



2002년 9월 새로운 드라마의 주제와 신선한 전개방식으로 시청률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마니아층의 광적인 지지와 작품의 완성도로 높은 평가를 받은 드라마가 MBC 박성수PD ‘네멋대로 해라’였다. 박PD가 연출해 10월 22일 첫 방송하고 현재 방송중인 MBC 미니 시리즈‘나는 달린다’는 전작인 ‘네 멋대로 해라’와 주제와 캐릭터의 이야기 전개 등이 매우 흡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젊은이를 내세워 냉혹하리만치 현실적이고 차가운 시선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우리 시대의 소수의 사랑법으로 전락한 20대의 젊은이들의 맑고 깨끗한 사랑을 주제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같다.

그리고 ‘네 멋대로 해라’의 소매치기인 복수(양동근)를 두고 부자지만 집안에서 사랑받지 못해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전경(이나영)과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세상을 헤쳐 가는 미래(공효진)가 펼치는 삼각관계가 ‘나는 달린다’에서는 사진기자를 꿈꾸는 밝고 쾌활한 희야(채정안)를 두고 용접공을 하면서 책읽기와 달리기로 세상을 잊는 해맑은 청년 무철(김강우)과 외과 레지던트이고 외부 조건이 완벽하지만 가정에서 사랑의 의미를 잘 모르며 자란 의섭(이종수)이 깨끗한 사랑을 하는 삼각 관계로 환치됐을 뿐이다. 이런 유사성으로 ‘나는 달린다’는 4회가 방송되는 동안 한자리수 시청률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완성도 떨어지고 시청자 외면



이같이 자기복제의 성격이 강한 매너리즘에 빠져 시청자의 냉정한 심판을 받은 연출자가 적지 않다. 9월에 끝난 ‘여름향기’의 윤석호PD가 이 범주에 속한다.

윤PD는 전작인 ‘가을동화’와 ‘겨울연가’에서 보였던 운명적인 사랑, 빈번한 우연과 죽음의 기제, 주연들의 사랑을 성사시키기 위한 방자와 향단격의 조연 출연, 비극적 운명을 강조하는 병원의 등장 등을 ‘여름향기’에도 반복시켜 스타PD의 연출작, 손예진과 송승헌이라는 최고의 인기의 스타의 캐스팅, 막대한 홍보전이라는 유리한 이점을 살리지도 못하고 결국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완성도면에서도 호된 비판을 받았다.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푸른 안개’ 등 우리 시대의 소수들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문제에 천착해 줄기차게 자신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스타일을 지켜온 표민수PD가 40대 여성(이미숙)과 20대 남성의 사랑(류승범)을 그린 KBS 미니 시리즈‘고독’역시 자기복제적 성격의 한계를 넘지 못해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표PD에게 앞으로 자기 연출의 방향과 스타일에 대한 고민의 숙제를 안겨줬다.

이 같은 자기 복제의 덫에 걸린 PD도 있는가 하면 매너리즘의 함정을 벗어나 이전의 작품과 비슷하지만 새로움이 담겨 있는 것을 보여주는 ‘대장금’의 이병훈PD와 과 ‘애정만세’ 성준기PD도 있다. 이병훈PD의 ‘대장금’은 그가 이전에 연출했던 ‘허준’ ‘상도’의 주제로 등장시킨 인간의 얼굴을 한 성공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허준과 ‘상도’의 임상옥이 신분적 한계를 뛰어 넘은 성공을 이룬 남자가 주인공인데 비해 ‘대장금’은 신분의 벽과 함께 여성이라는 성적인 차이까지 이겨내야 하는 이중의 차별의 벽을 넘은 장금을 내세워 새로움을 시도했고, 화면 구성과 영상 전개에 있어 정적이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들게 만드는 신선함과 노련함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은실이’ ‘옥이 이모’ ‘소문난 여자’ 등 1930년~1970년대의 시대극을 주로 연출해온 성준기PD가 만들어 10월 25일 첫 방송 한 SBS 주말 연속극 ‘애정만세’ 역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다.

성PD가 이전 작품에 보였던 서민층의 구수한 풍경과 은유, 그리고 신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후방에는 연기력이 출중한 중견 연기자를 배치하는 전략은 ‘애정만세’에도 나타난다.

하지만 극중 인물들이 빚어내는 소재나 웃음의 빛깔 그리고 연기자들이 표출해내는 연기의 문양은 이전의 작품과 큰 차이가 있다. 이병훈PD와 성준기PD는 분명 자신들의 향취가 풍기는 연출 스타일을 견지하면서도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도입시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청률 지상주의서 벗어나야



연출자의 가장 큰 함정은 매너리즘이다. 특히 스타 또는 작가주의적 PD의 입지를 굳힌 연출자들은 더욱 그렇다. 자신의 스타일과 주제 그리고 캐릭터군을 고수하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대중의 취향에서 보면 진부함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스타PD일수록 대중의 흐름을 정교하게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영화 학자인 앤드류 사리스는 연출자가 진정한 작가로서 부상하려면 드라마에 연출가의 개성, 그리고 고유한 스타일, 현저한 의미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출자로서 이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하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연출자의 개성과 의미를 담아낼 작품만을 할 수 있는 방송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청률만이 유일한 미덕이 돼버린 여의도 방송가에서 더욱 더 그렇다. 작품성의 측면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하더라도 시청률만 좋으면 뛰어난(?) PD로 인정받는 곳이 방송사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기에 자신의 개성과 독창적인 스타일을 견지하면서 시청자에게 삶과 생활에서 되새길 수 있는 의미를 주는 드라마를 연출하는 PD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방송의 제도적, 환경적 개선이 획기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PD자신의 확고한 연출관과 노력만이 자기복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진정한 스타PD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것이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


입력시간 : 2003-11-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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