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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들국화(上)
언더 그라운드의 반란 당당한 주류음악 반열에



최초의 헤비 메탈 그룹 '무당'의 뒤를 이어 80년대 초반에 등장한 록 그룹 들국화는 언더 그라운드 음악을 주류 음악으로 뒤바꿔 놓는 기적을 창출했다. 하지만 멤버들의 잦은 교체와 해체, 뒤이은 재결성의 반복, 마약 복용 사건 등으로 단명한 점은 큰 손실이었다.

들국화의 등장은 10년 뒤 탄생한 '서태지와 아이들'에 버금가는 대중음악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될 만큼 의미 심장했다. 특히 포효하듯 강력한 카리스마의 사자머리 리드 보컬 전인권은 압권이었다. '행진', '매일 그대와' 등 그들이 남긴 아름답고 강력한 이미지의 록 음악은 '메탈 그룹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국내 대중음악의 체질 개선을 불러오며 언더 뮤지션들의 저변을 확대한 일대 사건이었다.

리더 전인권은 인사동에서 고려인쇄소를 경영했던 함경도 북청 출신의 부친 전호준씨와 모친 고옥순씨의 3형제 중 막내로 1954년 9월 4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부유했던 집안은 그가 태어날 무렵 보헤미안 같았던 부친이 분가해 나가는 바람에 기울었다. KBS PD가 된 큰 형 전세권도 연극을 하다 아예 가출을 해 전인권은 어머니와 작은 형과 함께 살았다.

매일 혼자서 지내야 했던 그는 삼청동 집 뒤 인왕산의 범바위에 앉아 벌레 우는 소리를 벗삼아 지냈다. 그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공부보다는 그림에만 몰두해 작은 형에게 수없이 맞았다. "당시 무척 아프고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맞을 때 목청껏 비명을 지른 것이 발성 연습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날 동요 한 곡을 지정한 노래 시험을 봤다. 목청을 높여 노래하자 반 친구들이 신기해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명지중에 입학해서는 동그라미를 그리는 데 재미를 붙였다. 명지고에 들어가서도 공부보다는 그림에만 정신을 팔았다. 어느 날 규율부 학생들과 싸움을 벌이고 학교를 자퇴했다. 무작정 스케치북, 노트, 색연필, 라디오를 챙겨 들고 만리포 바닷가로 떠났다.

이때 비틀즈의 '헤이 주드', '이매진'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서울로 올라온 후 광화문 국제극장 미술과에 취직하여 잠시 다녔다. 18살 어느 날, 작은형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을 보았다. 만리포 바닷가에서 들었던 비틀즈의 노래가 떠올랐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타를 잡았다.

집 근처 삼청 공원에 나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자 작은형과 음악 친구들이 합류하면서 고정 팬이 생겨났다. 근처 풍문, 덕성여고 여학생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자 더벅머리에 돗수 높은 안경차림의 그는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스타일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또한 광화문의 분식집 <왜 그럴까> 등에서 DJ를 하다가 책가방에 음반을 넣고 다니는 고교생 이원재, '메아리'의 창립 멤버 이경호와 문무상, 김만수, 김홍경 등과 의기투합해 '개여울'이라는 라이브 분식 센터를 운영하기도 했다.

우연하게 명동의 통기타 업소 쉘브루에서 열린 아마추어 가수 콘테스트에 참가했다. 오디션을 통과해 고정 출연 가수로 뽑혀 일당 1,000원을 받고 노래 생활을 시작했다. 2개월 뒤 문무상(작고)과 무조건 대구로 내려갔다. 생각과는 달리 한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건빵과 물로 배고픔을 견딘 끝에 코리아 음악 감상실에 출연하게 되었다.

스스로 일자리를 얻어 노래를 하게 되어 가슴이 뛰었지만, 손님들을 위해 개그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갈등을 느꼈다. 이때부터 업소 출연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어느 날 부산 극동호텔 나이트 클럽에 작은형이 방위 소집 영장을 들고 찾아왔다. 소 끌려가듯 입대를 했다.

3개월 뒤 가발을 뒤집어 쓰고 무교동 꽃잎 레스토랑에 통기타 가수로 출연했다. 함께 방위 복무를 하던 강석진이 경희대 신방과에 다니던 학생 통기타 가수 윤인섭을 소개해 줘 듀엣으로 무대에 섰다. 윤인섭은 후에 방송국에 입사, 쇼특급 등 연예 PD로 이름을 날렸다. 방위 복무 후 친구들과 함께 서해안 무창포로 떠나 당시 한양대 2학년생이었던 아내 정혜영을 만났다. 한 달 20만원 수입으로 아내와 방 한 칸 얻어 살았다.

어느 날 같은 밤무대에 섰던 함춘호가 추계 예대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허성욱과 조덕환을 소개해 주었다. 두 사람은 그의 노래를 듣?그룹 결성을 제의했다. 리드 보컬 전인권, 건반 허성욱, 기타 조덕환, 그리고 드럼에는 그룹 백두산 출신의 한춘근 등이 4인조 무명 그룹을 결성해 강릉의 디스코텍으로 떠났다.

그러나 한달 후 허성욱의 어머니가 업소로 불쑥 찾아오면서 팀이 깨져 버렸다. 다시 통기타 업소의 가수로 돌아가 꽃잎ㆍ타임ㆍ무아 등 다운타운가의 업소를 돌아다니며 온갖 허드렛 일을 했다. 회의감이 생기던 어느 날 허성욱이 오랫만에 찾아와 리드보컬은 이승재와 전인권이 함께 맡고 허성욱이 건반, 기타에 이원재, 드럼에 권혁소로 해서 ‘동방의 빛’을 재결성해 오장동에 있던 디스코텍과 여의도관광호텔 나이트클럽에 섰다.

이승재는 곧 솔로로 독립했고 대신 한영애가 들어와 듀엣으로 로드 스튜어드의 '영 터크' 같은 대중적인 팝 음악을 노래했다. 팀은 오래가질 못했다. 전인권과 허성욱은 사랑 타령을 벗어 나, 가까운 친구들과 삶을 노래하는 자신들의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 연습 장소가 적당치 않아 저녁 늦게 허성욱의 학교 강당에서 자신들의 노래 만들기에 빠져 들었다.

그러던 79년 어느 날 이주원, 강인원, 나동민 등과 함께 '따로 또 같이'의 1집에 참여해 '맴도는 얼굴' 등을 불렀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 2003-11-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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