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특검법 거부땐 對盧 전면투쟁" 으름장

초강수 崔, 속사정 뭐길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특검법 거부땐 對盧 전면투쟁" 으름장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칼을 뽑아 들었다.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대노(對盧) 전면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다. 진격태세를 갖춘 최 대표의 모습은 여야 총수의 의례적인 신경전 수준이 아니다. 거의 사생결단식 분위기이다.

최 대표는 주말인 22일 서울 명동과 강남고속터미널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소속 의원들과 함께 특검법 통과의 당위성을 알리는 가두홍보에 나섰다. 이튿날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법 거부권 행사시 재의(再議) 거부와 함께 대통령 탄핵을 포함한 강도높은 대응책을 펼쳐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도 자신의 측근과 연계된 사안이므로 특검 거부는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라는 것이다. 당내에서도 의원직 총사퇴와 함께 곧바로 장외투쟁에 나서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 대표가 치켜 든 깃발에 한껏 힘을 보태겠다는 이야기이다.

이 같은 최 대표의 초 강경수에는 특검법 재의를 사전에 차단시키려는 정략적 노림수도 있지만 재의시 통과여부에 대한 표 계산도 쉽지 않다는 현실론이 맞물려 있다.

민주당과 자민련과의 관계가 예전처럼 녹록치 않은 상태에서 선뜻 재의에 참여했다가 재적의원 수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큰 화(禍)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이다. 겉으로는 초강수 카드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마지막 남은 고육책이란 관측이다.


한나라당 "전면투쟁" 청와대 "집단 생떼"

최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에서 “특검법이 국회에서 3분의2 이상 의원의 찬성으로 통과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수용의견이 60%를 넘는 상황인데도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하면 국회는 대통령을 거부할 수 밖에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이 자기 비리를 감추기 위해 끝까지 국민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의원직 총사퇴 ▦대통령 탄핵추진 ▦대통령 측근비리 국정조사 및 청문회 ▦정기국회 보이콧 및 장외투쟁 병행 등의 대응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중 현실적으로 대통령 탄핵과 의원 총사퇴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 측근비리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와 장외투쟁 등이 유력시되고 있다.

청와대는 당연히 펄쩍 뛰었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집단적 생떼’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협박’이라는 극한 용어를 동원하면서 비난했다.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재의 포기는 재의결 정족수를 확보할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은 복잡한 내부사정을 국민에게 전가하지 말고 정도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 측 의견대로 한나라당의 태도 변화에는 실제적 이유가 존재한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특검법 거부시 11월27일께 본회의를 소집, 재의결을 통해 법안을 확정짓겠다고 말해왔다. 지난 10일 특검법안 처리 때 재적의원 3분의 2인 182명보다 2명이 많은 184명의 찬성으로 통과됐기 때문에 재의에는 별반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바탕이 됐었다.

그러나 불과 2주만에 상황은 돌변했다.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행정수도건설특위 구성이 부결된데 대해 자민련은 물론 당내 충청권 의원들마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믿었던 자민련이 등을 돌린 형국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민주당과의 공조 균열에 있다.

28일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특검에 부정적인 추미애 김영환 의원과 장성민 전 의원 등이 지도부에 포함될 경우 민주당과의 공조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추 의원이 대표에 당선된다면 아예 한나라당과 척을 지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 야야 공조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더구나 재의 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실시된다. 다른 야당과의 공조는커녕 당내 단속마저 확언할 수 없는 처지다. 한나라당은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한 뒤 각개격파식으로 야당 의원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는 ‘작업’에 들어간다면 결국 수(數) 싸움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盧-한나라당, 총선위한 교두보 싸움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게 몇가지 있다. 한나라당이 재의와 관련, 해보지도 않고 미리 거부를 선언한 실제 이유는 무엇인가와 노 대통령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손잡고 국회의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시키고 국민 여론도 수용 쪽인데 굳이 이를 거부하려는 속내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 야당이 재의시 투쟁을 선언한 상태라 야당 협조로 통과시켜야 하는 이라크 파병, 한ㆍ칠레 FTA, 부안사태 등 산적한 현안은 연내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문제도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먼저 한나라당에게는 현재 진행중인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암초처럼 남아 있다. SK 100억원 수수로 이미 한나라당의 이미지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태. 여기서 삼성이나 LG그룹 등 다른 기업체로부터도 SK와 비슷한 수준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사실이 드러날 경우 내년 총선에서 회복하기 힘든 상당한 충격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서둘러 노 대통령 측근 비리를 특검에 부쳐 이를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여론 물타기용으로 사용하려 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덜렁 재의를 받았다가 부결될 경우 내년 4월까지 한나라당은 자칫 그로기 상태로 여권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키 위해 재의거부와 장외투쟁 및 국정조사 실시 등을 내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 노 대통령은 특검 수용을 왜 거부하는가.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만약 특검이 실시돼 제대로 수사할 경우 엄청난 사실이 공개될 수도 있다”고 한 자락을 깔았다. 노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원론적으로는 헌법에 명시된 권한 행사라고 밝히고 있지만 국회 파행을 감안하면서까지 재의를 고려하는 데에는 분명 특검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많다.

특히 특검이 내년 총선 근처까지 진행되면서 청와대에 대한 부정적 결과물들이 쏟아진다면 이는 한나라당에게 엄청난 호재로 작용할 것이며, 반대로 열린우리당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게 자명하다. 구태여 정권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특검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다.

물론 이 같은 가설은 정치권 안팎의 추측에 불과하다. 관련 사실이 드러난 것도 없고 당사자들이 밝힌 부분도 없다. 하지만 여야가 일대 충돌 양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사연은 반드시 내포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1-25 17:17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