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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미스터리 '도피에서 체포까지'
1평 구덩이서 막내린 철권통치
'아랍권의 대부'에서 '전범'으로 몰락, 둘째부인 제보설·가짜설도




△ 체포 당시 수염을 기른 후세인 모습과 면도 후의 모습.



12월 13일 오후 8시 30분(현지 시각). 이라크 주둔 미 육군 제4 보병단 소속 특수부대와 쿠르드 특수부대원 600여명이 티크리트 남쪽 15㎞ 아드와르 마을의 한 농가 채소 창고를 포위했다. 병사들은 일제히 안으로 돌진했다.

벽돌과 쓰레기로 교묘히 뒤덮인 곳을 삽으로 파내려 가자 2m 깊이의 작은 구덩이가 발견됐다. 사람 한 명이 가까스로 누울 수 있는 넓이였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세 명의 사나이들이 웅크려 있었다. 병사들은 지저분한 머리에 수염이 희끗희끗한 한 남성을 주목했다.

그는 스스로 순순히 후세인임을 밝힌 뒤 고개를 떨궜다. 20여년간 이라크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거미 구멍(spider hole)’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생포되는 순간이었다. ‘붉은 새벽(Red Dawn)’으로 명명된 후세인 체포 작전은 그렇게 불과 30분 만에 종료됐다.


궁금증1. 어떻게 숨어 지냈나



후세인은 미군이 바그다드를 함락시킨 4월 9일 이후 이라크 지도부와 함께 잠적했다. 체포되는 순간까지 장장 8개월 간의 도피 생활이었다. 그 동안 그의 생사와 거처를 둘러 싸고 나돌던 숱한 루머도 종식을 고했다. 사망설에서부터 국외 도피설, 그리고 성형 수술과 변장 가능성까지.

하지만 그때마다 후세인은 비디오나 육성 녹음 테이프를 유출시키는 여유를 보였다. 미군의 바그다드 진격 직후인 4월 17일에는 베레모와 군복을 착용한 채 군중의 환호를 받는 모습이 아랍TV에 공개됐고, 두 아들인 우다이와 쿠사이가 미군에 의해 사살된 후에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미군 점령에 저항하라”는 메시지까지 전달했다.

후세인의 육성으로 추정되는 녹음 테이프는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방송을 타며 세계를 경악시켰다.

후세인은 잠적 전부터 도피 일정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전 발발 이틀 전 이라크 중앙은행에서 약 10억달러(1조2,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인출했다. 후세인은 이 돈의 일부를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사용했다.

두번째 부인인 사미라 사반다와 아들 알리를 국외로 피신시킬 때도 500만달러가 든 현금 가방과 금괴 10㎏이 든 상자를 쥐어준 것으로 전해졌고, 그가 생포된 구덩이에서도 언제든 사용 가능한 100달러 짜리 미화 75만달러(8억8,000만원)가 발견됐다.

미국은 그간 후세인이 고향 티크리트에 숨어 지냈다는 쪽에 가장 큰 가능성을 둬 왔다. 티크리트가 어느 지역보다 후세인 추종자가 많아 미군의 힘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데다 은신도 쉬웠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후세인은 은신 중에도 레바논에 피신 중인 두번째 부인 사반다에게 매주 한번 이상씩 전화와 편지로 연락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사반다는 영국 선데이 타임스 최근호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남편에게 매주 전화를 받으며 며칠에 한번씩 편지를 보내 전화로 못 다 설명한 사정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미군 당국자들은 후세인이 최측근만 동행한 채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거처를 옮겨 다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티그리스 강변을 따라 은신처를 옮겨 다니며 측근들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공급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궁금증2. 누가 은신처를 알려줬을까



후세인 체포 작전을 직접 지휘한 미 보병 4사단장 로이 오디어노 소장은 “최근 10일간 미군 병사들이 후세인 측근 가문의 가족 5~10명을 심문, 이 가운데 1명으로부터 후세인의 소재에 대한 결정적 정보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 말을 토대로 본다면 제보자는 정권 몰락 이전부터 후세인 측으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아 온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후세인이 8개월간 미국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고 도피 생활을 하도록 도운 측근 중 한 명이 막판에 그를 배신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 후세인이 은신했던 지하구덩이와 은신처에서 발견된 미화 75만달러.

후세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2,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300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기 때문에 배신의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었던 셈이다. 7월말 후세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의 은신처 정보를 미군에 흘린 인물도 후세인의 인척으로, 이들 형제가 은신했던 호화 빌라의 주인 나와프 자이단인 것으로 서방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사정에 정통한 레바논의 소식통들은 후세인의 두번째 부인인 사반다가 미군에게 후세인의 소재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최근 매주 최소 한 번은 전화나 편지로 후세인과 연락을 해왔다고 밝힌 바 있어, 만약 사실이라면 후세인은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아내로부터 발등을 찍힌 셈이다.

제보자가 후세인의 측근 인물이 아니라 일반 이라크인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CNN방송은 후세인 체포 직후 미 국방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한 이라크인이 후세인 체포 세시간 전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 마흐무드 오트만 위원도 “쿠르드 민병대는 쿠르드족 뿐 아니라 티크리트ㆍ모술 등지에 이라크인 친구를 많이 두고 있는 터라, 이들을 활용해 후세인을 잡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고 말해 이라크인의 제보 가능성을 내비쳤다.


궁금증3.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은 미군에 의한 사살이 아니라면 후세인이 체포 순간 ‘명예로운 자살’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혹은 격렬한 저항이라도 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의 저항도 없이 순순히 미군의 체포에 응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것과는 너무도 상반된 모습이었다.

후세인이 생포된 지하 은신처에는 당시 AK 소총 2정이 있었다. 지하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죄어오는 위협을 느꼈다면 생포 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미군이 총부리를 겨눴을 때 그가 내뱉은 말은 의외였다. “나를 쏘지 마라. 내가 대통령이다(Don’t shoot me! I’m a president.)” 미군 당국은 “생포 후 후세인이 매우 협조적이었으며 말을 많이 했다”고도 전했다. 외신을 통해 전해진 그가 머리와 구강 등의 건강 검진을 받는 장면에서도 저항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오랜 도피 생활에 따른 자포자기의 결과다. 시시각각 죄여 오는 미군의 압박, 그리고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측근 등 주변의 상황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순수하게 생포에 응한 것이 또 다른 형태의 저항 전술일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게릴라식 저항을 조종하는데 한계를 느낀 그가 향후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진행될 재판 과정에서 중동 재편 전략 등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음모를 집요하게 부각시키는 여론전에 나서기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또 법정에서 탄압받는 모습을 통해 이라크인의 자존심을 자극해 공개적으로 성전을 독려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바로 이런 점을 우려해 미국이 후세인 생포보다는 사살에 더 총력을 기울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후세인 추종 세력 일각에서는 진짜 후세인이 잡혔다면 자폭을 했을 거라며 ‘가짜 후세인’이 잡힌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궁금증4. 후세인 어떻게 될까



후세인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에 의해 설립된 이라크 전범 특별재판소에 회부돼 법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적용될 죄목에는 바트당이 집권한 1969년 7월 14일부터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한 2003년 5월 1일까지 이라크 정부가 자행한 모든 반인륜 범죄가 포함될 전망이다. 큰 혐의만도 ▲1983년 쿠르드족 바르자니 부족 8,000명 학살 사건 ▲88년 할라브자 지역 쿠르드족 5,000여명 화학 무기 사살 ▲91년 걸프전 이후 30만명의 시아파 이슬람교도 학살 사건 등이 거론된다.

과도통치위에서 지명한 판사들로 구성될 전범재판소 재판은 민간 재판으로 진행돼 일반인과 인권단체 등에 공개되는 것은 물론 TV중계도 가능할 전망이다. 실제로, 유엔 전범재판소가 진행하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의 재판도 세르비아TV를 통해 중계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후세인의 사형 선고 여부다. 일부 외신들은 벌써 그의 사형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후세인의 향후 처리 방향에 대한 분석 기사 첫 머리에서 “그(후세인)가 사형 선고를 받을 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영국 외무부는 14일 성명을 내고 “후세인과 관련한 어떤 재판에서도 사형이 선고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라크 과도통치위 위원들은 사형제도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아직 명확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지만 대부분 사형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성 시비와 함께 국제전범재판소 개설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국가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법 체계 작동이 어렵고, 희생자들에 의한 가해자 재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이 이뤄질 경우 미국의 꼭두각시 놀음으로 끝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반인도주의적 범죄인 만큼 국제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제 인권 단체들에서 득세하는 건 그래서다. 유엔이나 국제 법률 전문가의 참여가 배제되고 사실상 미군 점령 하에서 전범 재판부가 구성됐다는 사실은 그 같은 비판적 시각에 힘을 얹어 준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3-12-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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