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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금융업 포기', 왜?
1등 주의가 불러온 패배
재무관리 실패·무리한 경영방침이 도화선, 30년 금융사업 마감




△ 구본무 회장.



3세 경영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금융업 포기’를 선택했다. 구 회장 스스로가 추켜 세우길 마다 하지 않았던 그룹의 보배 LG카드는 이제 명줄을 죄는 시한 폭탄이다. 그룹 전체를 위기의 수렁으로 몰아 세우는 ‘올 오어 나씽(All or Nothing)’의 기로에서 그는 ‘포기’ 카드를 택했다.

LG카드 문제 해결을 위해 채권단이 지원할 2조원에 대한 담보 조건으로 LG투자증권 주식을 제공하면서 급기야 LG는 금융업 포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야 했다. 쓰린 가슴이야 오죽했을까. 결국 카드로 인한 위기가 그룹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해 증권마저 내놓는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LG 그룹의 금융업 진출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2대 회장이었던 구자경 명예회장이 1973년 국제증권(현 LG투자증권)을 시작으로 80년엔 부산투자금융(현 LG종합금융), 82년엔 금성투자금융 등을 잇따라 설립했다.

금성투자금융은 91년 한양투자금융과 합병한 후 은행으로 전환해 보람은행이 됐고 98년 10월엔 하나은행과 합병했다. 이같이 이어 온 LG그룹의 금융사업 전통은 구 회장의 선택에 의해 꼭 30년만 인 2003년 12월,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No" 외친사람이 없었다



2001년 봄, 구 회장은 LG그룹 계열사 사장들을 모아 높고 1등 LG를 외쳤다. 그는 “LG카드는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전 임직원이 악착같이 파고 들어 결국은 1등을 차지했다”며 “이런 자세와 실천 의지를 본받아 야 할 것”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정말 LG카드는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볼륨이 1등 여부를 결정 짓던 당시, ‘물불 안 가리기’식 회원 모집이라는 불도저 경영으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숙적 삼성카드를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구 회장으로서는 LG카드가 얼마나 기특했을까. 이후 LG카드는 구 회장이 부르짖던 ‘1등 주의’의 선두에 서서 줄기차게 공격 영업의 기치를 올렸다.

그러나 LG카드가 위험 관리의 ABC를 몰라서 최악의 상황이 온 것은 아니다. 공격 영업과 업계 1위 사수를 앞세운 최고경영자의 방침에 맞서, 잘릴 위험을 무릅쓰고 “안됩니다. 위험합니다”라고 말할 ‘간 큰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직언을 했더라도 구 회장은 귀담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공격경영, 1등주의’ 등의 구호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높이 평가되는 산업계의 경영분위기가 그대로 금융의 경영에 관철된 때문이다.

금융은 ‘위험 관리’ 산업이다. 다른 산업과 구분되는 금융 고유의 속성이다.

성장 욕구가 앞서가는 제조업에서는 ‘도전과 모험’이라는 가치가 절대시된 나머지 ‘위험 관리’는 경영 가치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 나기 마련이다. 제조업의 ‘모험’이 있기에 경제 성장도 있지만 금융은 언제나 산업의 그 같은 확장 욕구를 견제하는 시어머니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 균형이 깨지면 닥쳐오는 것이 위기다.

LG카드의 위기는 그렇게 다가왔다. LG카드는 카드사 중에서 카드 영업을 가장 잘했고, 시스템 또한 잘 돼 있는 것으로 소문난 기업이었다. 딱 한 가지, 재무 관리의 실패 때문에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금융 산업이란 말아 먹으면 자기만 엎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심지어 금융 기관까지 골병 들게 만든다.

금융은 금융의 손에 있어야 하지 재벌의 손에 있었기 때문에 ‘1등 주의’ 경영방침은 LG투자증권까지 물고 들어가며 LG가 ‘금융업 포기’선언을 하게까지 한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11월 17일, LG그룹의 총수인 구본무 회장이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구 회장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LG카드에 대해 1조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하겠다”며 그룹의 카드 정상화 방안을 발표할 때만 해도 ‘금융업 포기’ 선언은 상상할 수 없을 매?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비춰졌다.

카드채 위기를 촉발할 LG카드에 대해 채권단 역시 가만히 앉아 좌시하지만 않을 것이고 정부가 적극 나서 지원해 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재벌 그룹다운 또 하나의 ‘BJR(배째라)’식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다. “LG카드 문제는 카드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금융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범 그룹적으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구 회장의 LG카드 회생 안 배경이었다. 정치자금 수사의 표적으로 떠오르면서 갑작스럽게 출국 금지 상태에 묶여야 했던 구 회장의 입장으로선 국면 전환을 위해서라도, 또 LG카드 위기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정면 돌파하는 길 외에 다른 선택이 없어 보였다.


최악의 재무구조, 도덕적 해이 논란도



그러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LG카드를 둘러싼 괴담은 이미 이전부터 금융권에 퍼져 금융의 생명인 신뢰성 마저 잃은 지 오래 였다. LG그룹이 LG카드의 2대 주주인 미국 캐피털 그룹에 경영권을 넘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여기에다 한 술 더 떠 대환 대출과 잠재 부실 등으로 매각 금액에 대한 양측의 시각 차가 커서 매각 협상은 진작에 결렬됐고, 그룹이 직접 나서 채권단에 손을 벌리기 위해 자구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진실에 근접해 있었다.

LG카드는 장부상 순자산이 1조원 가량 인 것으로 금융계에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최고 마이너스 3조2,000억원 대의 완전 자본 잠식 상태로 재무구조가 최악의 상황에 달해 있었다. 또 자산유동화증권(ABS) 트리거 규정에 걸려 2004년 1월 당장 상환해야 할 국내발행 ABS규모만 2조5,500억원에 달해 정상화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겹겹으로 둘러 싸인 셈이었다.

ABS트리거 규정이란 투자자 보호를 위해 ABS발행회사의 신용등급 하락, 자산 규모 하락 등의 경우 중도상환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말한다.

여기에다 구 회장과 구자열 LG전선 사장 등 구 씨 일가와 조명제 LG그룹 임원 등은 LG카드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기 직전 주식을 대거 정리,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졌다. 이들이 판 카드 주식 규모만도 무려 488억원. 채권단의 대응은 강경했다.

보다 확실한 구 회장의 개인 담보를 요구하는 등 LG의 ‘BJR’식 승부수에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기세였다.

구 회장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올 오어 나씽’의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 하지만 시장은 냉정했다. LG가 그룹의 사운을 걸고 과연 출혈 투자를 통해 LG카드 정상화에 나설 것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LG의 카드 정상화 의지는 단지 시장을 교란하는 제스처로 비춰질 뿐이었다.

금융산업은 유리그릇 같은 산업이다. 대출과 같은 부채성 금융자산은 단기간에 급증하는 것은 언제나 위기의 신호가 돼 왔다. 투자와 달리 대출은 상대방을 믿는 대신 위험 프리미엄을 적게 받는 거래다. 우선 조달 비용은 낮지만 대신 한번 신뢰가 깨지면 그 파장은 재앙급인 셈이다. 결국 LG카드의 해법을 찾기 위한 절차상의 황금률이 나온다고 해도 신뢰성을 잃은 LG카드의 회생은 분리 매각 만이 대안이 없는 셈이었다.


"전자ㆍ화학 빼곤 모두 정리하겠다"



구 회장으로선 LG카드가 유동성 위기를 맞기 이전인 올 초가을, 금융업 포기에 대한 결심을 이미 어느 정도 굳혔던 것으로 파악된다. 구 회장은 10월 22ㆍ23일 이틀간 모든 계열사 최고경영자와 최고기술책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자 R&D 전략회의에서 “전자와 화학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정리하겠다”고 자신의 숨은 의지를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지주회사인 ㈜LG를 중심으로 전자와 화학만을 주력으로 하고 기타부문에선 모두 손을 떼겠다는 선언한 배경에는 LG카드의 위기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LG그룹의 입장에선 카드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상황인데다, 카드 때문에 다른 계열사까지 흔들리자 내부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LG카드 사태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는 방안을 이미 심사숙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LG증권의 경영권을 함께 내놓는 한이 있어도 더 이상 카드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계산이 섰던 셈이다.

특히 대기업 그룹이 증권이나 카드, 보험 등의 계열사를 보유함으로써 누려 온 각종 혜택이 사실상 봉쇄됨에 따라 지주회사체제의 입장에서는 금융계열사를 갖고 있어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이미 판단한 상태였다.

결국 구 회장은 ‘플라스틱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금융업 30년 전통이라는 선대로부터의 뿌리를 잘라 버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 2003-12-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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