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결함 은유적 표현 '자라지 않는 나무'등 대표작 100여점 선보여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채기 난 꿈을 실현시키려는 욕망에서이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상실, 이로 말미암은 암흑 속에서 고독에 오한을 느끼며 아픔에 신음하는 내면의 언어를 추려내어, 가혹하고 엄격한 훈련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화면에 욕심껏 표현되는 것은 꼭 그리지 않으면 안될 필연적인 나의 모습이고, 상실이 빚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며, 즉 어떤 것에서 헤어나기 위해 고함지르는 나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가난했던 시기에 태어난 손상기 작가(1949~1988)는 어린 시절 영양 부족으로 구루병을 앓게 되고 이로 인해 척추가 휘어버린다. 세상의 장애를 짊어 진 채 그가 겨루었던 세상의 험난은 대신 그의 예술혼을 지핀다. 질병과 가난, 외로움에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이야말로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그의 숙명이었던 것이다.

올해는 손상기 작가가 40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12월 7일까지 <시들지 않는 꽃-손상기 작고 20주기>전시를 개최한다. 회고전 형태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손상기 작가가 남긴 1,500여 점의 작품 가운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임종 직전 병상에서 그린 작품에 이르기까지 대표작 100여 점을 선보인다.

손상기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 졸업 후 첫 개인전을 열기 전까지 주로 향토색 짙은 서정적 작품을 많이 그렸다.

<국화꽃>, <수확>을 비롯해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장날>, <양지> 등과 같은 작품은 구상회화의 흐름을 여과 없이 투영시키고 있다. 특히 작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은 은유적으로 표현한 대표작 <자라지 않는 나무> 역시 초창기 작품으로 1976년 전국 규모 구상전에 입상한 바 있다.

이어 그는 8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주제의식을 가지고 작품 세계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그의 작업실이 있던 아현동 일대 홍등가 작부를 모델로 한 <취녀> 연작과 신체적 장애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시들지 않는 꽃> 연작 등은 현실에 대한 강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계속해서 사회의식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이며 손상기 작가는 1980년대 서울의 지하철 개통 공사, 신축 건물 공사, 편의 시설 공사 등을 소재로 한 연작 <공작도시>를 비롯해 난지도 생활의 동질감을 표현한 <종소리-달빛은 어디에>, <난지도>, <공작도시-성하> 등을 발표한다.

불굴의 의지로 작품 투혼을 불사르던 그는 병세가 악화되자 이제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가난하지만 단란했던 손상기 가족을 애틋하게 그린 작품 <가족>과 <아빠와 딸>, 어린 시절 고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 어머니를 추억하며 그린 <나의 어머니-일상>, 작고하기 1년 전 마지막으로 다녀온 고향 여수 풍경을 담은 <비어있는 항구>, 그리고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병상에서>까지 그는 기력이 다해 더 이상 붓을 쥘 힘이 없어질 때까지 작품에 열정을 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8년 손상기 작가는 <병상에서>를 끝으로 폐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세상과 이별한다.

‘자라지 않는 나무’, ‘시들지 않는 꽃’처럼 그의 비유는 다소 냉혹한 듯 하지만 이미 시들어 버려 더 이상 시들 수 없는, 이미 다 자라나 더 이상 자랄 것이 없는, 그래서 영원할 수 있는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결국 질병으로 인해 더 이상 자랄 수도, 이미 시들어 버렸기에 시들 수도 없는 자신을 향한 비유인 셈이다. 그는 떠났지만 작품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기억될 것이다. 시들지 않는 꽃처럼.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