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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가지 정수를 뽑아 무대 올린다
서른 살의 서울연극제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지난 7일, 좀처럼 한 데 모이기 어려운 원로 연극인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가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있었다. 김인태, 오현경, 박웅 등 70대 백발의 배우들과 김의경, 오태석, 이강백 등 원로 극작가들의 시끌벅적한 만남은 그 자체로 진풍경이라고 할 만했다. 백발의 원로들이 취재진 앞에 나선 가운데, 이 자리에 참석한 정보석, 이호성 등 젊은 연기자들과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폴 게링턴이 상대적으로 눈에 띄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올해로 30회를 맞은 서울연극제를 축하하고 이번 연극제만의 특별한 의미를 알리기 위해서다. 서울연극협회(회장 박명성)가 주최하는 서울연극제는 1977년 대한민국연극제로 출발해 해마다 한국연극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지난해까지 290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왔다.

산술적으로 매회 10편의 수작을 엄선해 선보인 셈. 이립(而立)을 맞은 이번 행사에선 그 나이처럼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기라도 하듯, 그 가운데 9편의 희곡을 선정해 선보인다. 과거의 작품이 지녔던 시대적 가치를 현재화하며 ‘서울연극’의 현주소를 조명한다는 취지에서다.

9/290, 최고 중 최고 다시 보여준다

9편의 선정은 역대 수상작들을 대상으로 심사위원 추천과 온라인 투표 등을 거쳐 이루어졌다. 1984년 작으로 유독 상복이 많았던 ‘봄날’과 그에 밀려 수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최인훈 원작의 ‘한스와 그레텔’이 9편 안에 이름을 올렸다. 역시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 수상의 3관왕에 빛났던 1991년 작 ‘길 떠나는 가족’과 제28회 동아연극상 대상 작품인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9편의 작품 중 가장 화제가 되는 작품은 25년만에 다시 공연되는 ‘봄날’이다. 1984년 ‘대한민국연극제’ 시절 대상, 연출상, 미술상을 휩쓸며 화제가 됐던 이 작품은 동양설화의 동녀 모티프를 차용해 우의적인 기법으로 제도와 개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다. 이강백 작가의 세계관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초연 당시 주연을 맡은 오현경이 다시 한 번 아버지 역으로 무대에 올라 극단 백수광부의 후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오태석 작·연출의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는 폭력, 살인, 방화, 사기 등 무뎌진 도덕성을 해학적인 어법으로 풀어내는 오태석 특유의 연출로 1990년 초연 이후 평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아온 화제작. 덕분에 관객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 어두운 현실을 반추하며 풍자하는 연극 본연의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 완전치 못했던 대사를 완성해 올려지는 작품도 있다. 극단 창파의 ‘한스와 그레텔’은 초연 당시 일부 삭제됐던 대사들을 원작 그대로 복원해 이번 연극제에서 다시 선을 보인다. 이 작품은 높은 밀도 때문에 연출가들이 꺼린다는 최인훈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작품성에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한스와 그레텔’은 제목 그대로 독일의 어린이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구성의 기본틀로 삼으며 유태인 집단 학살에 연루된 독일 전범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작품이 의도하고 있는 본질적인 부분은 우리나라의 남북 분단 문제 혹은 이데올로기 문제 등을 날카롭게 조망하고자 하는 것이다.

엄선된 9편에는 1980년대 작품이 4편, 1990년대 작품이 3편 포함돼 현 시대 연극의 분발을 촉구한다. 대학로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배우 이호재는 “이번 선정작들 대부분이 80~90년대 작품이다. 그 시대에만 연극이 만들어진 것인가. 나도 연극을 만드는 입장에서 1차적인 책임감을 느낀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는 이어서 “모두의 관심 또한 중요하다”고 덧붙이며 연극 발전을 위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1-'봄날'
2-개막작 '피카소의 연인들'
3-'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4-'한스와 그래텔'


9개의 국내 명품에 맞서는 해외 명품

한편 매년 10편을 선보여왔던 행사인 만큼, 올해 서울연극제 역시 9편의 재공연 작품 외에 1편의 신작도 함께 공개한다. 주최 측은 당초 창작 신작을 공모했지만 응모한 28편 중 9편의 선정작들과 견줄 만한 작품을 찾지 못해 번역극을 무대에 올리게 됐다. 이 ‘10번째 작품’은 국내 초연되는 ‘피카소의 여인들’(브라이언 매커베라 작·폴 게링턴 연출)이다. 이번 연극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작품은 화가 피카소의 여인 8명의 독백으로 구성된 원작을 압축한 것.

제작을 맡은 신시뮤지컬컴퍼니는 이에 대해 “10년 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했을 때 한국에서 볼 수 없던 형식이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원작의 8명은 이번에는 4명으로 압축되어 김성녀, 서이숙, 배해선, 이태린 등 네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대결이 연극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명불허전’과 ‘신구의 조화’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치러질 제30회 서울연극제는 오는 16일부터 5월 2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시티극장, 예술의 전당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달 26일과 5월 23일에는 시민들이 대학로의 명소와 극장 백스테이지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체험의 기회도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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