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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천재, 기능일까 지능일까
[영화 속 미술이야기] 영화 <고뇌와 절정>과 미켈란젤로
예술가에게 창조적 영감 불러일으키는 창작의 비밀 알려줘





글/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



인류의 역사상 가장 많은 명화들이 탄생한 시기는 아마도 르네상스 시대(14~16세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대개 교황이나 귀족 또는 부자들의 주문에 의해 작업을 해야 하는 고용인의 신분이었다. 그러나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예술가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주문자의 요구와 자신의 창조적 영감의 실현이라는 인간적인 딜레마와 창조자와 기술자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신과 같은 창조자라는 자부심을 지닌 근대적, 인본주의적 인간인 동시에 창조적 실천의 성과를 "신이시여, 과연 제가 이것을 만들었나이까?"하며 신의 힘, 즉 초인적인 존재에 의해 실현된 영적 사건으로 돌려 모든 영광을 신께 돌려야 했던 종교적 인간으로서 고민 또한 큰 것이었다.

이런 이중적 가치의 대립과 인간과 인간의 갈등과 우정, 믿음 속에서 인류의 문화적 자산인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영화가 있다. 우리에게 과연 천재란 무엇이며 예술가에게 창조적 영감과 실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창작의 비밀의 일단을 알려주는 <고뇌와 절정>(The Agony and the Ecstasy, 1965년)이 그것이다.

미켈란젤로(1475~1564)가 율리우스2세의 요청으로 성 시스틴성당의 천정화를 그리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르네상스시대 당시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어떠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일했으며, 그 작업과정에서 창조적 영감과 종교 또는 주문자와 작가의 의도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1961년 전기작가 어빙스톤이 쓴 동명의 전기소설 중 시스틴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던 부분을 영화로 제작했다. 여기서 찰톤 헤스톤이 미켈란젤로로, 렉스 해리슨이 율리우스 2세로 출연하는데 감독은 거장 캐롤 리드경이 맡았다.

영화는 율리우스 2세와 미켈란젤로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시스틴 성당 천정화 제작을 놓고 고민한다. 이 건물을 다자인한 건축가 브라만테(1444~1514)의 간섭과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율리우스 2세까지 감당하려니 미켈란젤로는 힘에 부친다.

아무튼 조각가이기 때문에 천정화는 맡을 수 없다고 버티던 미켈란젤로는 결국 율리우스와 계약을 한다. 하지만 그 넓고 커다란 천정에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막막하기만 하다. 작업은 시작했지만 진척이 없다.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작품을 어디다 내놓을 것인가.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로 도망을 가고 만다.

그러자 율리우스는 부하들을 풀어 잡아오라 명하고 미켈란젤로는 도망을 가던 중 마치 주님이 깨우침을 얻듯 구름과 자연을 통해 천정화를 위한 영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다시 작업현장에 나와 자신의 제자들과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귀한 성당에 비게와 사다리를 매고 너저분하게 작업장처럼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름다운 천정화를 기대하면서 모든 것을 용납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작업을 사이에 두고 율리우스와 미켈란젤로는 우여곡절을 겪지만 서로간의 신뢰로 작업은 이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배를 보고 퇴장하는 신부와 주교의 흰 미사복에 붓을 떨어뜨리고 물감을 쏟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율리우스 2세가 몰래 작업하는 광경을 훔쳐보러 왔다가 미켈란젤로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하고.

하지만 율리우스 2세는 병상에 들면서부터 이 작품이 언제나 완성될지 더욱 초초하기만 하다. 그래서 미켈란젤로에게 묻는다. "언제쯤 완성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한결같다. "완성되어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언제나 전문가로서 예술가로서 거만하다할 만큼 도도했지만 작품이 안 되면 고통스러워하고 까다로운 모습을 보이다가도 작품이 잘 풀리면 무아의 지경에서 따스한 미소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예술가였다. 그리고 이런 그의 모습은 찰톤 헤스톤의 깊은 연기에 묻어 나온다.

천정화는 진전이 없고, 비용 지불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형제들로부터 금전적으로 도와달라는 요청이 빗발치는 가운데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와 그의 주교단과 또 다시 부딪히게 된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나체라는 것과 예수님의 모습이 근엄하지도 자비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역경과 고난을 이기고 그림에 몰입한다.

누군가 물었다. "누가 본다고 그렇게 열심인가?" 그는 답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또 내가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이렇게 그는 자신의 창조적 역량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졌지만 한편으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감추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4 년여 만에 마침내 천정화 <천지창조>(1508∼1512, 바티칸 소장, 로마)가 완성된다. '천지 창조', '인간의 타락', '노아 이야기'등 3장 9화면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예언자나 천사, 역사를 배치해서 아래서 올려다보면 그림이 아닌 조각처럼 보이도록 인간의 군상을 완성했다. 여기서 영화는 대단원의 맥을 내린다.

이후 미켈란젤로의 생을 돌아보면 그 이듬해 그의 천적이자 후원자였던 율리우스 2세가 세상을 떠나고 메디치가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가 피렌체의 산 로렌초성당의 파사드의 건축을 강요해서 성당의 중심에 세우려했던 조각상 작업은 중단되고 만다. 그리고 1520년 메디치가 사당을 제작하지만 메디치가의 전제군주 알렉산드로와 다투고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1534년 피렌체를 떠나 로마에 자리를 잡는다.

그 후 새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시스틴 성당의 안쪽 벽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아 다음 해부터 혼자 그리기 시작하여 6년 후인 1541년에 391명의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1534~1541, 바티칸 소장 로마)을 완성한다.

그리스도가 '성난 그리스도'로 인간의 죄를 심판하러 오신 최후의 날을 서사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천지창조>와 함께 시스틴 성당의 보물이자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회화작품이며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회화작품이다. 나이가 들어 심신이 쇠약한 상태에서 이 대작을 접하면서 그는 교양 있는 페스카라 후작의 미망인 비토리아 코론나를 만나 영혼의 위로를 얻지만 곧 수녀원에 들어가 세상을 뜨고 만다.

이렇게 미켈란젤로의 인생은 매사가 '투쟁과 포기'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창조자로서 남김없이 자신을 소모했지만 인간으로서는 항상 한계를 느껴야 했던 위대하면서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니 평범한 것 이하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는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조각가로서 그림을 그려야 했던 고통을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배가 나오고, 수염은 거꾸로 서고, 머리는 어깨에 파묻혀 들어갈 정도다. 몸은 새이고 얼굴은 늙은 노파의 모습을 한 하피처럼 괴상하다. 붓에서 물감이 떨어져 얼굴은 모자이크 마룻바닥같이 헐었고, 허리가 구부러져서 걸음걸이도 흔들거린다.' 하지만 그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날 모두가 경하하는 명작을 탄생시켰다. 오직 실력만이 자신의 카리스마라는 것을 아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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