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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홀릭의 시대 빛과 그림자
[대중문화읽기] 경제적 가치 획득과 프라이버시의 반납 유명세의 명암




정여울 문학평론가





1, 2-MBC '일밤'-우리 결혼했어요
3-SBS '일요일이 좋다-골드미스가 간다'
4, 5-케이블 TV 채널의 연예인 리얼리티 프로그램


인간은 문명이 진보하면 할수록 배우가 되어간다고, 칸트는 말했다. 모두가 저마다의 환경과 상황에 맞는 독특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 연예인이 아니어도 연예인처럼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해지는 시대다. 엔터테이너 산업의 세계적인 성장은 미디어의 보도 관행 자체를 바꾸었다.

포털 사이트 뉴스란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연예란이며 검색어 순위 10위권 내에 가장 많이 포진된 기사도 연예인의 뉴스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흥미 위주의 액세서리나 부록처럼 달려 있던 ‘연예’란은 이제 정치면이나 사회면 컨텐츠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그들의 비중을 위협하는 문화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무한미디어 사회에서는 인간의 오감 중 그 어느 것보다도 ‘시각적 이미지’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중요한 사건과 중요하지 않은 사건’을 다루는 기준은 어느새 ‘텔레비전에 나오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바뀌고 말았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으면 ‘셀러브리티’가 될 수 없는 시대.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모든 유명인의 ‘연예인 되기’를 목도한다.

유명인이 되면 누구나 조금씩은 연예인적 라이프 스타일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다. 연예인들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외모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그 스트레스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전염되어 간다. 한국 미용 산업의 압도적인 성장 이면에는 ‘일반인의 연예인화’라는 문화적 인프라가 전제되어 있다.

사람들은 셀카와 미니홈피를 통해 일상적 시뮬레이션으로 연예인적 라이프스타일을 즐긴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언제 어디서나 마치 자신의 삶이라는 거대한 드라마를 연출하는 감독처럼 스스로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셀카를 들이대고 저마다의 최고 얼짱각도를 습득하게 되었다.

연예인들은 1Kg만 몸무게가 늘어도 귀신 같이 잽싸게 알아보고 악플을 다는(!)네티즌의 등쌀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한다. 한 여자연예인을 인터뷰하는 TV프로그램을 보다가 불현듯 울적해진 적이 있다. “가장 큰 소원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밥을 마음껏 먹고 싶다”고 대답하던 연예인의 슬픈 미소는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연예인을 꿈꾸던 초등학교시절부터 다이어트 걱정으로 한 번도 밥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다고, 오늘 끼니도 어김없이 거른 듯 힘없이 미소 짓던 그녀. HD고화질 TV가 보급된 이후 피부의 미세한 잡티까지 낱낱이 드러나는 화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중견연기자의 인터뷰도 뇌리에 남았다.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연기력으로 항상 주목 받던 그녀였다.

해마다 시상식 시즌이 돌아오면 인터넷을 달구는 레드 카펫 드레스 경쟁은 어떤가. 우리나라 영화계가 언제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을 그토록 노골적으로 모방했는지, 여배우들은 포토 라인 앞에서 그 짧은 몇 초의 시간 동안 생애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투표까지 실시하여 베스트 드레서와 워스트 드레서를 기어이 뽑아내고야 마는 미디어의 잔혹성에 여배우들은 좌불안석이다. 또한 가장 당혹스러운 연예인 문화 중 하나는 자기 집을 속속들이 공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연예인의 집은 물론 가족들의 얼굴, 드레스룸과 냉장고 속까지 초정밀 내시경을 들이대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볼 때마다 ‘유명인의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가치를 어린 시절부터 세뇌시켜 ‘유명세의 위험’을 가르치지 않는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자신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대신 감정과 영혼의 부가가치를 반납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연예인의 시대가 초래한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관 자체를 뒤흔들었다. 스타가 되는 순간 ‘몇 억’ 단위는 기본으로 책정되는 연예인들의 광고출연료에 일반인들은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들의 광고 1회 출연료는 보통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 평생 벌어도 모으기 힘든 돈이며 서민들은 자신의 ‘노동의 가치’에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규라인’과 ‘유라인’을 필두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연예인들의 인맥은 서로를 챙겨주는 따스한 배려의 공동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라인’에 속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단지 그런 대단한 라인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배제와 소외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연예인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그들이 치러야할 기회비용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했다. 2000년대 들어 연예계뉴스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키워드 중 하나가 ‘소속사와의 분쟁’이다. 소속사들은 저마다의 또다른 ‘라인’을 형성하여 거대한 문화권력을 형성하며,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날 때쯤 되면 연예인들은 각종 스캔들의 누수에 신경을 쓰거나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 자체가 ‘스펙터클’로 자리잡아가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또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연예인들은 아무리 세상에 좋은 일을 해도 진심을 의심받게 되어 각종 선행도 ‘홍보용’으로 비난받기 일쑤다. 게다가 휴대폰 카메라로 인해 ‘전국민의 파파라치화’가 가능해진 시대에 연예인은 더더욱 인권의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은 예전보다 ‘더 높은 자리’로 상승할 수 있게 된만큼, 예전보다 더 처절한 추락의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사람들은 이제 연예인들의 ‘출연작’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의 ‘삶’ 자체를 세계의 축소판으로 투시한다. 연예인 뉴스에 중독된 현대인들, 연예인의 이미지 없이는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무한미디어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숨을 곳’을 잃어간다. 최진실, 안재환, 장자연 등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죽음자체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걸려있을 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문명의 덫을 생각하게 되었다.

'www.com'이 창조해낸 유비 쿼터스의 환상은 달콤하다. 그러나 이 세상 전체에 타인의 삶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거대한 무형의 그물(world wide web)’이 드리워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터넷의 기회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GNP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은 점점 숨을 곳이 없어지는 세계, 죽어서도 악플의 등쌀에 영면에 들 수 없는 파파라치적 세계에 침식당하고 있다.

배우는 수없이 많은 역할을 연기하지만 결국 죽을 때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죽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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