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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이단자, 화두를 시대에 던지다
[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 <카라바조>와 르네상스 화가 카라바조
데릭 저먼과 카라바조, 주류문화 거부하는 예술을 현실속으로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





1-'일곱가지의 선행'(1606~1607)
2-'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1600~1601)
3-영화 '카라바조'의 한 장면


흔히 르네상스는 인류역사상 문화가 기장 부흥했던 시기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르네상스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창조적인 기운과 열정 그리고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종교화는 신앙심의 근원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위엄과 신분을 과시하기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르네상스는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위선적인 시대라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 ‘위선의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처절하게 자신을 던져 시대와 사회에 대항했던 카라바조(Caravaggio, 본명 Michelangelo Merisi, 1571~1610)는 40년이라는 짧은 생애 속에서 그 어떤 화가보다도 귀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그 보다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생산해낸 화가이다.

특히 그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빛과 그림자, 역동적인 자세, 군더더기 없는 배경 그리고 누구도 ?아오지 못할 사실적인 묘사로 바로크(Baroque)시대를 향해 문을 열어준 화가이다. 그는 매우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주제 때문에 당시 로마에서 비난을 받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1599~1600년간에 그린 ‘산 루이기 데이’프란체시 성당의 제단화를 통해 최고의 화가로 자리잡으면서 르네상스미술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하지만 고흐보다 더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살았던 그는 오랫동안 잊혀진 채로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새롭게 평가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려졌다.

이렇게 카라바조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로마와 피렌체에서 최고의 화가로 등극했지만 그는 타고난 뜨거운 피로 인해 불의와 종교적 위선에 대항했다. 또 세기말 혼란과 폭력이 난무하던 로마의 뒷골목을 휘젓던 싸움꾼이자 살인자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던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까지 인간의 고귀한 종교적 행위와 신에 대한 찬미가 자신들의 부와 영예를 영원히 이어가려는 욕망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몇 안 되는 르네상스시대의 사람이었다. 소위 콰트로첸토(Quattrocento)기의 화려하고 성스러운 신비감이 넘쳐났던 그림들은 카라바조를 만나면서 비로소 인간의 모습을 얻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신성에 가려있던 인성을 되살려냈으며 교리상의 인물들 모두를 비천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바꾸어버렸다. 르네상스시대에 최고의 권력자인 교황과 추기경, 세속적인 권력자 황제와 재산가 그리고 뒷골목의 권력자인 깡패들 모두와 통했던 카라바조는 로마 뒷골목 창녀와 싸움꾼, 건달과 노름꾼, 거지와 야바위꾼 등의 모습을 통해 진정으로 낮은 곳에 임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인간의 추악함, 고통, 배반, 슬픔, 속임수 그리고 사랑과 환희 등등 사람의 욕망과 정서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리하여 그의 하나님과 성모와 성경 속 모든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들까지도 기꺼이 천상의 세계에 함께 거두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시대의 이단자로 반항아로 한편으로는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을 간절하게 바라는 심약한 인간으로 살았던 카라바조의 인생은 실로 짧았지만 극적인 삶이었다. 이런 그의 삶을 영화화 한 것은 20세기의 ‘무서운 아이’ 데릭 저먼(Derek Jarman, 1942~1994)이었다. 데릭저먼은 카라바조에 버금가는 삶을 살았던 영화감독이자 미술가이자 무대디자이너였다.

그는 주류문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 사람이지만 그들과 타협하지 못하고 완강하게 시대와 세상에 저항했던 작가다. 게다가 영민하게 계산적이지도 상업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무정부주의와 동성애를 평생 동안 추구한 혁신적인 미학적 실험주의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특히 그는 박물관 창고에 쳐 박혀있던 카라바조와 <에드워드 2세> 같은 역사영화에 동시대 문제를 투영시켜 동성애적인 정체성을 찾으려 시도하면서 새로운 화두를 시대와 사회에 던졌던 이단아이자 혁명가였다. 이런 그가 르네상스기 화가 카라바조의 삶을 주목하면서 완성한 것이 바로 영화 <카라바지오>(1986)이다.

“기존 정치나 매체는 결코 진실을 말해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영화는 문화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입장을 개인적으로 분석한 기록영화라고 믿었다.

그는 군인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전형적인 영국식 교육을 받았다. 화가가 되려고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눈뜨면서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오페라와 발레단의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영화 <악마들>(1971)의 세트 디자이너로 일한 직후 영화에 뛰어든다.

그는 ‘반항심이 퇴색될까봐 두려워서’ 상업성이 없는 8미리와 16미리 영화를 찍었다. 또 80년대 후반에는 가정용비디오로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영화가 칸과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문제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예술적, 성적 취향은 그의 최초의 35밀리 영화 <카라바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1993년 만든 파격적인 영화, 아니 영화라고 할 수 없는 푸른 화면에 목소리와 음향만 들을 수 있는 <블루>(Blue,1993)가 자신의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라면 <카라바조>는 데릭 저먼의 몸을 빌려 오늘에 환생한 카라바조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원자를 자처하는 주문자들의 요구와 자신의 예술적, 미학적 태도, 동성과 이성 사이에서 성적정체성 때문에 갈등하는 카라바지오의 삶을 통해 화가의 미학적 욕망과 성적 욕망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그는 약 400년간의 시차를 두고 살았던 두 사람이 한 영화에서 공존하기 위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설정으로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래서 결국 성 정체성이란 오늘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욕망이 존재했던 그때부터라는 감독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시대를 넘나드는 여기에 카라바조의 정지된 스틸사진 같은 화풍을 영화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아름답고 신비로운, 때로는 시차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런 느낌을 위해 그는 보통영화가 24프레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당 3프레임에서 6프레임의 속도로 영화를 촬영함으로써 화면에서 육안으로는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촬영된 필름을 영사해서 다시 초당 24프레임의 표준속도로 촬영했다. 이 결과 마치 꿈꾸는 듯 몽롱한 분위기의 리듬과 색감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는 이렇게 카라바조의 확인되지 않은 에피소드들 즉 동성애와 폭력, 살인 등등을 그의 연대기적인 삶과 연결시켜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장소를 옮기는 것 없이 커다란 창고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찍으면서 단지 47만 5000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을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영화는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대한 장면 전환을 자제하고 필요하다면 극히 일부만을 바꿔 마치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 같은 미니멀한 구조의 배경을 지닌다. 이런 점에서 데릭 저먼은 자신을 통해 카라바조를 이 시대에 현현케 함으로써 자신의 저항정신과 비상업적인 태도 그리고 자신의 동성애적인 성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르네상스시대 화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트럭, 오토바이, 잡지와 타이프라이터 그리고 촬영지였던 창고가 철도변에 위치해서 그런지 몰라도 가끔 들려오는 기차 달리는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어 영화의 철저하게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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