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우물을 파는 문인들성기완·조연호·강정·한유주가 말하는 문학과의 상관성

1-성기완
2-조연호
3-강정
4-한유주

지미 헨드릭스 추종자인 소설가 박민규는 최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출간하면서 비매품 CD를 만들었다. 머쉬룸밴드가 곡을 쓴 이 CD에는 소설의 주제에 맞춰 작곡한 음악 4곡이 담겨 있다.

예전 한 인터뷰에서 “때가 되면 소설가라는 직함을 반납하고, 노인들끼리 밴드를 결성하고 싶다”고 말했던 작가는 2006년 장편 <핑퐁> 출간 후, 황신혜 밴드와 함께 록 공연을 열기도 했다. 소설가 한강 역시 재작년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출간하며 직접 부른 CD를 비매품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작가들이 음악에 단순한 ‘조예’ 이상의 관심을 보인 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김연수 작가는 작품 분위기에 맞춰 음악 앨범을 선곡하고 난 후, 집필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장편 <밤은 노래한다>의 ‘작가의 말’에서 “나는 원래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준다고 믿으며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캐나다 출신의 월드뮤직 가수 Matthew Lien과 독일의 고딕메탈 듀오 Mantus, 그리고 막 출시됐던 김윤아의 2집 앨범이 큰 도움이 됐다. 온 세계가 나를 도와준 것은 거기까지였다”라고 썼다.

음악, 철학, 영화 등에 마니아적 감성을 선보여 스스로를 “레고 블록 덩어리”라고 말하는 김중혁 작가는 학창시절 빌보드차트 100곡을 외우고 다녔던 음악 마니아다. 지난해 출간한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은 피아니스트, DJ 지망생, 공연 기획자, 악기점 주인 등 음악을 모티프로 한 8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것이다. 이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여흥을 넘어 작가의 ‘뮤즈’이자, 영감의 원천인 셈이다.

작가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연주활동을 하는 4명의 작가에게 음악과 문학의 상관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 홍대 종합예술인 - 성기완

음악과 문학, 두 장르를 오가는 대표적인 아티스트, 성기완 시인은 ‘뮤지션’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다. 학창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음악활동을 해왔던 그의 ‘음악인생’이 일반에 알려진 것은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를 하면서부터.

그는 99년 그룹 결성 때부터 기타와 보컬을 맡았고, 이미 홍대문화와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꽤 잘 알려진 음악가가 됐다. 그는 온갖 매체에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월드뮤직 라디오 프로그램을 4년간 진행하기도 했으며(EBS FM ‘세계음악기행’), 재즈에 관한 전문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문인 겸 음악가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젊은 작가들이 꼽은 시인이다.

- 음악활동은 언제부터 했나?

“93년 토마토란 밴드의 앨범이 나왔고 거기서 기타를 쳤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99년 결성돼 지금 10년 째 활동 중이다.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고 가끔 작사를 할 때도 있다.”

- 록부터 재즈, 월드뮤직까지 다양한 음악에 정통하다고 들었다. 요즘 듣는 음악은?

“가끔 뮤지션들이 아예 음악을 안 듣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경우 굉장히 많이 듣는 편이다. 기분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새로운 음반을 듣기도 하고, 예전 앨범을 찾기도 한다. 예전 월드뮤직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음악 정보를 많이 얻었다.”

- 음악과 문학 분야 모두 프로로 활동 중이다. 두 장르 예술에서 느끼는 쾌감이 어떻게 다른가?

“글을 쓰면 글씨가 눈에 보인다. 글은 고정되어 돌이킬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는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나의 경우 밴드 활동이 많기 때문에 내 의견이 완전히 관철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의견이 관철됐다고 해서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타를 치면 나머지 여백은 다른 멤버들이 메워나간다. 시나 소설은 쓰는 동안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는 느낌인데, 음악은 시작하는 순간 나도 모르는 길로 열리는 느낌이 든다.”

- <당신의 텍스트> 등 최근 시집을 보면, 시의 반복되는 효과가 눈에 띈다. 독자 입장에서 음악 활동이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음악을 모티프로 쓴 작품도 있나?

“예전 재즈를 응용한 시를 쓰기도 했고, 뮤지션을 인터뷰한 내용을 모티프로 시를 쓰기도 했다. 어떤 때는 선곡표를 그대로 시로 만든 적도 있다.”

- 문학 작품 쓸 때 음악에 영감을 받나?

“예전에는 암암리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 경험을 접목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요즘 반복되는 음악이 유행이다. 하나의 반복 마디를 ‘루핑’이라고 하는데 루핑 할 때 효과가 있다. 글이 반복되는 순간 나오는 효과를 시도한 시를 썼다. 최근에는 발음에 관심이 많아져서 이번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는 ‘ㄹ’에 관한 시를 썼다. ‘ㄹ’은 혀가 굴러가는 발음인데 빙글빙글 돈다는 게, 시의 본질인 것 같기도 하다.”

● 록부터 월드뮤직까지 - 조연호

또 한 명의 문인 겸 음악가는 본지 ‘문단 뒷마당’을 연재하고 있는 조연호 시인이다. 기타와 인도악기 싯타르 연주에서 프로 수준의 솜씨를 자랑하는 그는 작곡과 연주, 녹음까지 혼자 해낸다.

록부터 월드뮤직까지 다양한 듣고 연주하는 그의 음악인 경력(?)은 20년을 넘었다. 현재 문학전문 라디오 방송 ‘문장의 소리’ PD를 4년째 맡고 있다.

- 기타와 싯타르 연주, 앨범 녹음 작업도 한다고 들었다. 전문 ‘뮤지션’이 된 건 언제부터인가? 현재 갖고 있는 악기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그룹을 만들어서 악기를 연주했다. 90년도부터는 홍대에서 라이브 공연을 했다. 현재 기타 3대, 싯타르 3대가 있다 . 싯타르는 단독 공연이 가능한 악기인데 인도 전통악기와 함께 공연할 수도 있고, 서양 악기와 섞으면 퓨전 음악 공연이 된다.”

- 오랫동안 음악과 문학 활동을 해왔다. 이 두 장르의 차이가 뭔가?

“일단 형식이 너무 다르지 않나. 노래 가사만 보면 문학작품이라 볼 수 없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워 계속 회자되는 노래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학의 말하기 방식과 음악의 말하기 방식은 맞붙여 나가지 못할 만큼 다르다.”

- 시를 쓸 때, 음악의 영향을 받나?

“이 질문을 자주 받는다. 시를 쓰기 위해서 음악을 하거나, 음악을 잘 만들기 위해서 시를 쓰지는 않기 때문에 ‘유관하지 않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이 두 장르를 함께 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감각이 섞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 시에서 음악적 내재율이 있을 것이다.”

● 시와 음악 경계 넘기 - 강정

강정 시인은 2005년 그룹 비행선의 보컬로 활동을 하며 음악활동(?)이 알려진 케이스다. 조연호 시인과 록그룹을 결성해 잠깐 활동한 적도 있다. 2007년 겨울, 작가들의 송년회자리에서 김연수 작가와 공연하며 알려진 밴드 ‘수와 정’은 공연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일반에게 알려졌다.

현재 시와 음악 두 장르를 섞은 ‘혼종 무대’를 만드는 재미에 빠져있다.

- 중고등학교 때 밴드활동도 했다고 들었다. 음악에 관심을 둔 계기는?

“밴드활동은 내 또래 사람들이 학창시절, 다 한번 씩은 한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꿈이 남아있는 경우다. 글을 쓰는 것이 기본적으로 자기고양 상태를 느끼게 해주는데 음악은 직접적으로 이런 느낌을 가져다준다. 음악을 듣고, 무대에 선다는 것이 나한테는 고무된 느낌을 주는데, 그 기분을 못 잊는 것 같다.”

- 전문적인 악기를 다루거나 밴드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게 아니지만, ‘음악과 문학’ 두 가지 키워드에 가장 적합한 아티스트라고 꼽힌다.

“음악활동을 전문적으로 한 건 아닌데, 이런 기사가 나올 때 민망하긴 하다. 시를 쓰지만, 내 정체성을 음악에 두는 건 맞다. 문학을 하게 된 동기도 음악을 듣다가 하게 된 거고. 어떻게 녹아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을 갖고 문학에서 표현하지 못한 걸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회가 될 때마다 음악 활동을 하려고 한다.”

- 시를 쓸 때 음악에 영향을 받나?

“다른 시인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평소에 시를 생각하지 않는다. 시는 사람과 비슷해서 그 사람 생각하면 안 오니까. ‘시 써야지’ 하면, 회로가 엉키는 느낌이 들어서 뻣뻣해진다. 오히려 한 동안 잊고 있으면 살아오면서 가진 느낌의 총체가 엄습하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풀린다. 문체가 ‘몸 체(體)’자를 쓰지 않나. 글은 몸이 움직이는 대로 가는 것 같다. 긴 산문을 써야 할 때는 음악을 트는 데, 글의 감각을 살려주는 음악이 있다.”

- 당신의 시는 오히려 운율감이 안 느껴지기도 한다.

“정형화된 시가 아니라고 해서 글에 리듬이 없는 건 아니다. 모든 글에는 운율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리듬이 숨어있을 수도 있고, 표현해 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장기하의 노래는 음악에 리듬이 있지만, 가사면 떼서보면 운율감이 안 보인다. 어떤 사람이 시를 읽을 때 이해가 안 되지만, 좋다고 느낄 수 있다. 이건 쓰는 사람의 리듬과 읽는 사람의 리듬이 닮아서 그런 거라고 본다.”

- 최근 심취한 음악이나 뮤지션, 공연이 있나?

“얼마 전 김경주 시인과 음악과 시 낭송을 섞은 퍼포먼스 공연을 했다. 시를 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질감이 나왔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시도 과격하게 읽으면 다르게 읽힌다. 기타리스트와 함께 내멋대로 소리 지르고 시를 낭송했는데, 이것도 문학과 음악을 혼종한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 그녀의 감각은 베이스에서 - 한유주

‘그로테스크’하다는 말로밖엔 설명할 수 없는 독창적인 한유주 작가의 작품에 대해 평론가 김형중은 “문어체 소설이 어떤 방식으로 낭송용 산문이 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희귀한 예”라고 소개한다. 그녀의 소설이 기존 서사 중심의 소설이 갖지 못한 운율감이 있다는 말이다.

한유주 작가 역시 음악에 일가견이 있다. 대학시절 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그녀는 지금도 일주일에 3~4일은 하루 8시간 이상 음악을 듣는다. 음악 동아리에서 기타와 베이스를 배웠던 터라 기형도 추모 콘서트 등 문인이 주축이 된 공연에서 베이스를 잡기도 하고, 코러스를 담당하기도 한다.

- 많은 비평가들이 한유주 작가의 작품에 운율감이 있다고 말한다. 음악을 오랫동안 들었던 경험이 내면화된 게 아닐까. 하루 8시간 씩 음악을 듣는다고 하는데.

“일주일에 4일, 8시간 씩 홍대 근처 카페에서 음악을 듣는다. 이곳에서 글도 쓰고 책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기 때문에 항상 카페에서 뭔가를 듣고 있다. 카페에 가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턴테이블에 LP 앨범을 듣는다. 장르는 인디밴드 음악부터 월드뮤직까지 다양하다.”

- 음악 작업을 하면 작품 활동에 유리한가?

“은연중에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내가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다. 음악을 많이 들어서 흉내 내는 정도다. 음악을 가리지 않고 많이 듣는 편이지만, 글 쓸 때는 오히려 듣지 않는 편이다. 단, 글 쓰는 내내 머리에 맴도는 음악은 듣는다.”

- 음악을 모티프로 쓴 작품이 있나?

“최근 나온 <얼음의 책>에서 단편 ‘되살아나다’. ‘Lalipuna lowdown’을 듣고 썼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