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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지상으로 내려와 예술이 되다

[미디어아트프리즘] 미디어아트의 빛
표현의 대상, 숭고의 상징서 하나의 매우 자유로운 표현 수단으로
  • 1) 제임스 터렐, '스카이스페이스'
    2) 안도 타다오, '빛의 교회'
    3) 카라바죠, '의심하는 성 도마'
    4) 윌리암 터너, '호수 위의 일몰'
    5) 리 후이, '환생'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메두사의 눈을 바라볼 수 없다. 메두사의 눈을 응시하는 순간 그는 돌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이 메두사의 신화는 현실에도 존재한다.

19세기 초반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햇빛을 관찰하기 위하여 눈에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이 태양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눈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어떤 이는 아예 실명을 하기도 하였다.

태양을 응시하는 순간 그들의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마치 태양의 빛은 메두사의 눈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무척 어리석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눈이 멀게 되면서까지 사람들이 태양을 응시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태양의 빛은 신과도 같은 절대적인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태양의 빛을 응시하고 그 실체를 확인하는 것은 바로 절대적인 존재를 목격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 달리 과거에 빛은 절대적인 존재이자 신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으며, 그것은 회화로 직접 묘사되거나 재현될 수 없는 매우 숭고한 존재였다.

흔히 미학적으로 숭고하다는 말은 인간의 능력 바깥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존재에게 느껴지는 예술적 감정과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숭고한 대상은 직접적으로 현시할 수 있거나 묘사할 수 있지 않다. 그것은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만 드러난다.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한 사례가 될 것이다. 현란한 색유리를 투과한 오묘한 빛은 성당의 내부에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투과된 빛은 빛 자체가 아닌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빛일 따름이다.

빛은 절대적인 존재이지만 미술에서 그 빛을 드러내는 방식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빛 자체가 도저히 표현될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중세 미술에서 빛의 느낌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은 번쩍번쩍 빛나는 금가루를 화면에다가 발라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가루는 번쩍거리는 빛의 느낌을 줌으로서 빛의 권위를 대행할 수는 있을지언정 빛 자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대 미술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빛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카라바죠는 중세의 화가들처럼 금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억지로 발광 효과를 내려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명암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하여 밝은 빛의 느낌을 발산하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그는 빛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명암의 대비를 통하여 빛의 효과를 창출한 것이다.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그의 그림이 르네상스 회화와 달리 어떤 절대적이고도 숭고한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세화가들처럼 비록 번쩍거리는 매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그림 또한 빛 자체를 묘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반해서 19세기 초반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는 아예 태양의 빛 자체가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많은 그림은 태양을 대상으로 하지만, 화면은 태양 자체가 아닌 구름에 반사되거나 노을에 드러난 간접적인 빛의 효과로 채워질 따름이다.

터너의 통찰에 따르면 태양은 아무런 여과 없이 우리의 눈에 드러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생리적인 눈은 태양의 순수한 빛 자체를 응시할 수는 없으며, 항상 잔상 효과로만 체험할 수 있다. 터너의 그림은 바로 태양에 대한 우리 눈의 잔상효과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태양이라는 숭고한 실재는 우리의 생리학적 한계 때문에 잔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빛이라는 숭고한 실재는 항상 간접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뒤집은 것은 20세기의 예술가들을 통해서이다. 가령 제임스 터렐은 빛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아예 빛 자체를 묘사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이 갖는 독특성은 이러하다. 빛을 다루는 과거의 작가들이 빛의 효과에 주목을 하였다면, 그는 빛 자체를 아예 작품의 대상으로 삼는다.

가령 그의 작품 '스카이스페이스'는 전시장의 천장에 사각형 구멍을 뚫어서 관객이 아예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터렐의 작품에서 관객이 마주치는 것은 빛의 효과가 아니라 빛 자체이다. 그는 전통 회화가 빛을 마치 트라우마처럼 간접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빛이라는 실재 자체를 은폐하지 않고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작업 또한 터렐의 작업과 비슷한 맥락의 작업을 하였다. 그가 지은 매우 독특한 건물인 '빛의 교회'는 오사카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다. 그 교회를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건물이 다른 교회와는 매우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교회의 제단이 있는 전면부의 벽이 십자가 모양으로 아예 뚫려져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내부에 들어서게 되면 제단부의 벽에 십자가 모양으로 뚫린 벽을 통하여 교회의 내부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을 굴절시켜서 숭고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빛 자체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 건물은 빛 그 자체를 투과시킴으로서 빛이 주는 숭고함의 감정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디어아트는 이러한 빛의 느낌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킨다. 그것은 미디어아트가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통적인 미술에서 빛은 표현의 대상이거나 숭고의 상징이었다. 미디어아트에서 빛은 더 이상 응시할 수 없는 숭고의 대상이 아니다.

미디어아트에서 빛은 하나의 매우 자유로운 표현수단이 된다. 그것은 다른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표현 매체일 뿐이다. 심지어 미디어아트에서 태양과 같은 절대적인 빛의 존재 따위는 더 이상의 의미가 없다. 레이저, LED, 홀로그램 등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인위적인 조명들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 후이(Li Hui)의 작품 '환생'(Reincarnation, 레이저 설치, 2007)은 빛을 매개로 매우 숭고한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빛이 지닌 기능은 전통적인 회화에서 빛이 지녔던 의미와는 다르다. 전통적인 회화에서 빛 자체가 하나의 숭고한 대상으로 표현된 반면, 이 작품에서 빛은 숭고한 주제를 표현하는 하나의 매체 혹은 수단일 따름이다.

이 작품에서는 붉은색 침대 위에 붉은 색 레이저 빛이 내리쬐고 있다. 침대 자체가 탄생과 죽음의 장소를 의미한다. 하지만 침대 위로 비처럼 떨어지는 붉은 레이저와 노란 색 불꽃 또한 피처럼 삶과 죽음의 중첩된 이미지를 담고 있다.

탄생과 죽음의 끊임없는 연쇄는 잔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숭고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숭고한 과정을 이 작품은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전통적인 회화에서와 달리 빛이 숭고한 주제를 묘사하는 하나의 매체 혹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아트에서 빛은 더 이상 메두사의 눈처럼 바라보면 눈이 멀어버리는 숭고한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표현 형식이자 매체일 따름이다.

박영욱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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