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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축제 생존의 방식

서울세계무용제 등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으로 관객 유혹
  • 아떼르발레또 무용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제는 누구도 졸기 위해 공연장에 가지 않는다. 만 원에 육박하는 티켓 가격의 상승에도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은 졸리게 하지 않는 '보는 즐거움'의 보장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알 수 없는 몸짓', '그들만의 소통법', '배경지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점철된 춤과 연극이 그간 대중의 외면을 받아온 것은 일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공짜 티켓과 특별한 계기로 우연히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 원치 않는 숙면을 취하고 다시는 공연장을 찾지 않게 되는 이유였다.

해법은 간단하다. 바로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깊이가 없는 시각적인 현란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대중의 눈높이를 감안한 새롭고 쉬운, 재미있는 작품들이 잠재관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10월을 수놓고 있는 많은 공연예술축제들이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을 보면 이 같은 원칙이 확실히 보인다. 특히 국제 페스티벌들은 외국 작품의 국내 소개를 통해 세계 공연예술의 흐름을 전달하고, 국내 작품의 세계 진출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 보편의 정서에서도 흥미롭고 참신한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12회를 맞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은 굳이 춤 마니아가 아니어도 눈을 끄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락 마샬의 <몽거>는 대중에겐 조금은 낯선 현대춤이지만 장 주네의 <하녀들>을 몸으로 표현했다면 한층 이해가 쉬워진다. 게다가 언뜻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고스포드 파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 1)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축구예찬> 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디 에이지> 3) 바락 마샬의 <몽거> 4) 진옥섭 연출의 <왕의 춤>
연극평론가인 안치운 호서대 연극학과 교수는 "<하녀들>에서는 권력과 지배, 명령과 수동의 전복을 떠올릴 수 있지만, <몽거>는 그 하나의 명령을 숱한 동작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해석한다. 변주된 춤의 또 다른 매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미지만으로도 이번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폐막작인 이탈리아 국립 아떼르발레또 무용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원작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였던 발코니 대신 이 작품이 내세운 것은 거대한 환풍기다. 최소한의 옷으로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몸을 그대로 드러낸 열 쌍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프로코피예프의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지며 순수하면서도 관능적인 사랑의 몸짓을 그린다.

국제행사라고 해서 외국작품만의 향연은 아니다. 한국 전통춤의 세계화 작업을 해온 진옥섭은 이번 시댄스에서는 춤꾼 연산군의 이야기를 담은 <왕의 춤>을 선보인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무용사에서 최초의 전문무용수로 거론되는 인물은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지만, 그보다 150년가량 앞서 춤을 췄던 왕이 바로 연산군(1476-1506)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영화 <왕의 남자>의 춤 지도를 했었던 진옥섭이 다시 한번 말하는 연산군의 이야기가 전통춤과 함께 어우러지며 '춤을 통한 역사 다시 읽기'의 의미도 가진다. 한국 전통춤 장면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만을 골라 붙였다고 말하는 진옥섭은 "거창한 철학 대신 원형 그대로의 전통춤을 계속 연결해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보았다"고 설명한다. 재미있는 춤을 통해 전통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이종호 예술감독은 쓸데없이 난해하기만 한 작품, 전위적이지만 쉽게 와닿지 않는 작품들은 프로그램에서 배제했다고 선정 기준을 밝힌다. 일반 관객이나 전문 관객을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수준 있는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라고 전했다. 작품 선정의 최우선 기준을 관객의 접근성에 둔다는 의미다.

13일부터 시작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SPAF)의 올해 주제는 '아날로그와 디지로그'다. 공연예술 본래의 아날로그성과 근래의 디지털화 경향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춤 작품 17편, 연극 작품 19편, 복합장르 4편 등을 고루 포진시켰다.

2006년부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지휘하고 있는 김철리 예술감독은 "지난 3년동안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해외 유수의 공연을 초청해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창'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의 3년은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 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세계무용축제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충만한 에너지를 세계무대로 향하게 하겠다는 출사표다.

디지털과의 융합 과정에서 오는 아날로그 작품의 고민이 주제인 만큼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작품은 철저히 하이테크놀로지의 향연에 맞춰져 있는 인상이다. 15세부터 80세까지 다양한 무용수가 등장해 각 세대의 이야기를 표현한 <디 에이지>와 축구경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을 춤으로 코믹하게 승화시킨 <축구예찬> 등은 시종일관 영화처럼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김철리 예술감독은 "국내 공연예술계는 오랫동안 예술과 과학기술이 배치되는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공연예술의 깊고 오랜 원칙과 철학이 첨단기술과 만날 때 나타나는 새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대중성을 담보하려는 시도는 이미 역사가 깊다. 첨단기술 매체와의 결합도, 탈장르화에 따른 시대적 변화에의 적응도 생존을 위해서 당연한 것이다.

해마다 옷을 바꿔입은 공연예술제들이 해마다 비슷한 기준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지만 여전히 공연예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한때 '관계자'들의 잔치였던 공연예술제들은 이제 거창한 철학 대신 재미와 일상의 옷을 입고 자세를 낮추며 아직 오지 않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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