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코드로 본 이태원'역사문화적 서울 이해하려는 지역문화 프로젝트 강연대담 지상중계

(아래)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 입구. 누군가에게는 관광지인 이곳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서울 안의 세계 여행지이자 치외법권이죠."

송도영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진단처럼 이태원은 서울의 "다문화성의 실험실"이다.

이곳에 '입주'한 지명들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터키에서 최근에는 나이지리아, 세네갈, 수단까지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이 평생 한 번도 못 밟아볼 곳들이다. 미국과 서유럽 등 '보편적인' 외국은 오히려 발붙일 틈이 없다.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 문화가 당연한 경관이고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한국사회 상류층의 대저택이 들어서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이태원의 다문화는 다양한 젠더와 계층까지 포괄한다. 덕분에 이태원을 통해 한국사회에 소개되고 발생하는 문화들은 새롭고 독특한, 낯설지만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관광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매혹의 정체는 무엇일까. '관광특구'라는 화장법의 효력은 아니다. 그보다는 환경과 사회 상황, 제도 등 여러 요인들이 오랫동안 맞아 떨어진 역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태원의 다문화성을 서울의 한 속성이자 자산으로 이해할 때, 그 지층들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것이 우선인 까닭이다.

1.지난 14일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열린 '다문화코드로 본 이태원 강연대담' 이날 150여 명의 청중이 참석해 '서울다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2.송도영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3.이태원 골목에 있는 외국인 대상 슈퍼마켓. 4.이태원에 있는 관광특구보행자 안내도
지난 14일 오후 4시 서울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는 '다문화코드로 본 이태원'이라는 주제로 강연대담이 열렸다. 서울문화포럼의 지역문화 프로젝트 '서울다움찾기: 서울을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의 일환인 수요강연대담의 첫 행사였다. '서울다움찾기'는 서울시의 대대적인 도시정책 개발 추진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이태원을 비롯해 문래동 예술창작촌, 동대문 경동시장, 은평뉴타운과 테헤란로 등 특유의 지역들을 이해함으로써 역사문화적 '서울'을 구성해보려는 시도다.

송도영 한양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와 이영범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가 발제와 대담을 맡았고, 150여 명의 청중들이 참석했다. 열띤 분위기는 급속도로 파헤쳐지고 사라지는 '서울다움'에 대한 이들의 목마름을 대변했다.

"이태원은 이를테면 신촌과 비슷한 곳입니다. 누군가가 '신촌을 간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가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신촌 자체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송도영 교수는 이태원과 신촌을 비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이태원이 그만큼 비정형적이고 혼재된 지역이라는 뜻이었다.

이태원은 연원부터 드나듬과 뒤섞임의 공간이었다. 이태원(梨泰院)의 '원'은 조선 초 서울 여행자를 위한 4대 역원(驛院) 중 하나였던 데서 비롯했다. 이태원을 '異胎圓(다른 아이를 밴 동네)'으로 풀이하는 설도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들어온 일본인들이 한국 여성을 성폭행하여 낳은 아이들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일제 시대 일본군 사령부와 한국전쟁 후 미군기지가 용산에 들어서면서 이런 속성은 물리적으로 이어졌다.

외세에 의해 열린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지명 안에 그 상처를 품고 있음에도, 그래도 문이어서 누군가는 이 틈에 기대 숨 쉴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송 교수는 1950년대 이후 미군 부대의 유흥 지역으로 재편된 이태원이 한국사회 구성원에게는 "미국 본토 소비문화를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는 선망의 공간이자 특히 여성들에게는 한국을 떠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음"을 일깨웠다. 소수 젠더 문화가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태원의 문화가 또 한번 전환된 시점은 서울올림픽 이후. '짝퉁 명품'이 거래되는 곳이라는 점이 이태원의 관광지화에 기여했다. 1997년에는 정부에 의해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상점은 24시간 영업이 가능했고 관광 산업에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이 허가되었다. 외국인들이 정착하기가 한결 쉬워진 것이다.

이렇게 이태원의 "짝퉁외국화"가 이루어지는 한편, 이 일대에 상류층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미군기지의 영향이었다.

"상류층이 외국군이 주둔한 지역 근처에 거주하는 것은 식민지 경험이 있는 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치안 문제 때문이기도 하고, 외국군 이미지에 기대어 자기 계층을 정당화하려는 의미이기도 하죠."

이태원 문화가 한국사회의 트렌드를 선도하게 된 데에는 이 같은 상류층의 '접합'도 관련될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이태원의 다문화성은 특히, 다양한 음식 메뉴로 소비되고 있다. 이는 각각의 음식 문화를 낳은 문화적 토양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는 것이라기보다 특이한 국적의 음식을 맛보는 것 자체가 일종의 문화-소비 자본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할랄(halal)이라는 율법에 따라 잡은 고기만을 먹는데 정작 할랄 음식점을 찾는 한국인들은 그 종교적 의미보다 국적에만 주목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일관적이지도, 언제나 밝은 면만 있지는 않았지만 행정의 손아귀에서 비껴나 있었기 때문에 그 구불구불한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이태원 특유의 지역성은 앞으로도 지켜질 수 있을까. 송 교수가 지목하는 가장 큰 변수는 한남동 재개발 계획이다. 재개발이 진행되어 지가가 오르면 다양한 국적, 다양한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와 삶의 터전을 일구기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송 교수의 결론은 예측으로도, 경고로도 들렸다. 이후 약 1시간 동안 이영범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를 필두로 여러 청중들이 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더하거나 함께 이태원의 앞날을 구상했다.

이영범 교수(이하 '이') 강연을 들으면서이태원의 다문화성이 왜 음식문화를 통해 드러나는지 생각해봤다. 아마도다국적 계층 노동력이 한 사회 안에서 집단화하며 형성하는 근본적인 생활문화이기 때문인 것 같다. 대도시마다 나타나는 '차이나타운'이 그 예다.

이태원의 특징은 제3세계 출신 외국인들이 점유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동부이촌동에 일본인들, 서래마을에 프랑스인들이 모여 살고 있고 한남동에 독일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다. 주변부 문화의 경향이 강하다.

송도영 교수(이하 '송') 최근 서울시가 서비스하는 인구통계지도를 보면 예전에는 한남동에 모여 살았던 미국 출신 외국인들이 강남 지역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강남 지역 자체가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이미 적응해 중상류층 지역에서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거나.

이태원에는 미국인과 중국인이 없다. 그들이 한국사회에 가장 많은 외국인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특이한 현상이다. 출신 국적별로 거주 지역이 나뉘고 있다는 뜻이다. 더 정확히 말해 지역을 선택할 수 있는 국적과 그렇지 않은 국적으로 계층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태원은 미국인,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살아도 되는 공간이다. 지가가 낮다는 점도 한 몫 한다. 역설적으로 이런 특징이 이곳을 다문화적 베이스캠프로 만들었다. 다국적, 다계층, 다문화 인력이 모인 것이 새로운 문화 실험실로서의 기반이다. 예를 들면 요즘에는 이태원에서 특정한 아이템이 뜨면 곧 강남에서 이를 크게 부풀린 새 상점이 들어선다.

지역성은 '속도'의 개념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서울 전체의 속도에 비해 이태원은 물리적으로는 더디고 문화적으로는 빠른 속도를 갖고 있다. 즉 경관은 느리게 변하는 데 비해 문화는 금세 수용한다는 뜻이다. 서울의 다른 지역은 정치적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비해 이태원은 미군기지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진공상태였던 탓이 크다.

탈영토화되어 오히려 문화적 흡수력이 높아졌다. 그것이 '관광특구' 같은 제도화가 두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행정력이 개입하다는 것은 지역을 컨트롤하려는 의도가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태원을 둘러싼 정치력이 지역을 향후 어떻게 변화시킬까.

서울시가 이곳을 수렴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탈영토적 조건에서 만들어진 다문화성이 상당히 사라질 것 같다. 방관할수록 수많은 비정상성이 나타나고 그것이 다문화성의 전제가 된다. 이태원에서의 미군 위락 시설, 불법 음식점, 외국인 노동자 등이 그 예다.

서울의 일반적인 물리적 변화 속도에 이태원을 맞추다 보면 문화적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안산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외국인 '메카'라는 원곡동 일대를 다문화특구로 지정하면서 외국인 사업을 허가하고 경관을 정비할수록 거주하는 외국인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여기는 이제 '한국'이고, 통제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서울이 '진공 상태'를 감당할 수 있느냐다. 지금 이태원의 '빈 공간'을 이슬람 문화가 많이 채우면서 국가정보원이 긴장하고 있다. 언어가 다양해지고 범죄의 우려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다문화가 '안전한' 계층, 소비문화 코드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태원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더 중요한 문제다.

어떤 도시가 문화적 다양성을 갖고 있느냐,는 곧 다양한 속도를 갖고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바꿔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주류적 속도에 맞추려고 소수자들의 속도를 편입하다보면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율성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최근 문화적인 도시 재생 사업을 많이 벌이고 있는데, 아이러니한 건 지금까지 무관심했던 것들이 오히려 그 컨텐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도시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길 없이 개발된 것들과 달리 버려져 있어 그 연원을 간직한 것들이다. '버려두기'가 가능하려면 정치적 관용이 있어야 한다. 서울, 한국사회가 이태원의 내부 갈등을 자율적으로 콘트롤할 수 있게 둘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이태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은 괄목할 만하다. 한남동 일대에 고급 주거지가 들어서면서 고급 문화 취향과 욕구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문화 코드에 둘러싸여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혹은 인사동처럼 걷잡을 수 없는 혼재, 영역 갈라놓기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까?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반응해나가야 할까?

워낙 '하나의 이태원'은 없었다. 이는 지형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언덕이 많아 행정적으로 프레이밍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다양성이 유지될 수 있는 기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다문화성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우려스럽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 3개월 이상 체류 시 지문을 찍자는 주장도 있다. 한국사회의 주류가 다문화성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할지도 의문이다. 이 지역을 문화적으로 쉽게 콘트롤하려는 의도로 재개발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태원은 그 실험실적 속성 때문에 학술적으로도 열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독특한데도 제대로 된 연구가 없었다. 관광산업의 시선으로만 주목했지. 한국사회 연구자들이 연구 공간으로서 적당하지 못하거나, 두렵거나, 감당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은 서울의 수용력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청중 1 이태원에 용산구청과 문화예술회관이 포함된 종합행정타운이 지어지고 있다. 완공되면 공무원과 문화예술 관객 등이 들어오면서 지역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영향이 있을까?

어떤 지역이든 무미건조하게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구청을 짓는 것이다.(웃음) 용산구의 종합행정타운은 문화를 몰아 놓는 매머드급 공간이다. 길거리 문화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서울 종로에 주상복합건물 '르미에르'가 들어서면서 청진동 해장국 골목이 다 지하 아케이드로 들어갔지 않나. 일상의 다양성은 길거리 문화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이런 개발은 서울다움이 사라지는 것을 가속화할 것 같다.

청중 2 노원구 공무원이다. 오늘 발제 내용이 좀 감상적이었다는 인상이다. 지자체는 태생적으로 관할 지역의 외관을 정비하고 범죄를 컨트롤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개발에 의해 원주민과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문제라면 문화 연구도 감정으로 대응하기보다 정책을 건드려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지적이다. 행정력이야말로 현실을 만들어가는 힘이니까. 영 딴소리하면 안 되는거지.(웃음) 하지만 전공 영역에 따라 입장이 다른 것 같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지자체는 개발을 강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으로 문화를 드러내는 것이 다른 지자체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다음 세대의 다른 비전과 전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청중 3 그렇다면 당장 이런 다양성 공간이 필요하고 지켜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쿄가 서울과 가장 다른 점은 A급 공간과 B급 공간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A급 공간은 이를테면 롯본기 힐스 같은 곳, 현재적 욕구에 의해 '미래'를 제시하려는 곳이고 B급 공간은 이태원 같은 곳이다. 실제로 삶과 다양하게 맞닿는 곳은 오히려 후자다. 도쿄는 B급 공간의 가치를 깨닫고 공존시킨다. 하지만 서울은 용납 못 한다. B급 공간을 A급 공간으로 '중성화' 하려고 한다. 특색 없는 공간에 누가 찾아오겠냐는 것이 지금 행정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나 경제적 효율이 있을 것인가를 내세우는 것이 전략적이긴 하지만, 이태원의 다문화적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가질 수 있는 가치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자체는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일반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창조 도시의 관건은 창조 계급이 존재하느냐고, 그것은 도시가 얼마나 관용을 갖느냐와 연결된다. 이태원은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고 문화를 창조하는 힘이 있는 지역이다. 이 가능성을 소비문화화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시 문화의 동력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