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19) 알마타데마와 생상화려한 색채·세밀한 묘사·현란한 기교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알마타데마 '자화상(왼쪽)', 생상
때로는 섹시하고, 때로는 우아하며 때로는 신비로운 음악. 화려함 속에 숨어있는 정교함과 현란함 속에 담겨있는 정밀함으로 빛나는 생상의 음악은 그만의 매력적인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이런 생상의 음악을 알마타데마의 고혹적이고 환상적인 그림과 함께 감상한다면 그들의 음악과 그림은 진한 향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알마타데마는 화려한 색채를 이용한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인 라파엘 전파 화가다. 주로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이집트의 역사와 신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대표작 중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영웅 안토니우스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파스칼이 말했을 만큼 클레오파트라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반해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 놀란 듯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다.

반면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시선을 알아차린 듯 비스듬히 누워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그의 마음을 빼앗고 권력을 차지한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를 결국 파멸로 이끌었던 치명적인 매력의 그녀를 환상적인 터치로 묘사한 이 작품은 생상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를 떠오르게 한다.

콜로세움,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 1888,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왼쪽부터 시계 방향)
삼손을 유혹해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또 하나의 팜므파탈인 데릴라와 그녀의 매력에 빠져 결국 파멸에 이르는 삼손의 일화에 생상은 음악을 더해 오페라로 만든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듯한 데릴라의 매혹적인 노래는 삼손이 사랑 앞에 모든 것을 털어놓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생상의 대표작이 된 이 작품은 화려한 음색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관중을 사로잡는다. 다음은 삼손을 유혹하는 데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의 가사이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립니다.
새벽의 키스에 꽃이 열리듯 말이에요.
그러나, 나의 사랑,
나의 눈물이 마르도록 다시 한번 내게 말해줘요.
당신이 돌아온다고 저 데릴라에게 말해주세요.
그때의 맹세를 다시 한번 말해줘요
내가 사랑한 그 맹세를
아! 나의 애정에 답해주세요.
날 환희에 넘치게 해주세요.

<삼손과 데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데릴라의 아름다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고 마는 삼손. 아름다움의 유혹은 앞으로 다가올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향기에 취해 순간의 쾌락을 즐겼던 삼손을 파멸로 이끈다. 알마타데마가 그린 또 다른 작품 <헬리오가발루스의 장미>는 데릴라의 유혹만큼이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다.

장미 꽃잎들을 휘날리며 향에 흠뻑 취해 향락을 즐기고 있는 이 모습은 로마제국의 방탕하고 괴팍했던 황제 헬리오가발루스의 파티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장미에 파묻혀 음란한 파티를 즐겼는데 넘치는 꽃잎 때문에 질식해서 죽는 사람들까지 나왔을 정도로 광적이었다.

그의 사치스러움과 문란함으로 인해 결국 그는 어머니와 함께 근위대에 의해 살해된다. 한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 그림은 자신의 파멸을 알지 못한 채 꽃 향기에 취해 향락을 즐기는 삼손과 그를 장미 같은 아름다움으로 유혹하는 데릴라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화려한 색채의 사용, 세밀한 묘사와 정교함, 현란한 기교는 생상과 알마타데마의 공통된 작풍이다.

작풍 외에도 생상과 알마타데마는 여러 공통점을 지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보다 15년 이상 차이 나는 어린 소녀와의 결혼이다. 알마타데마는 35세에 자신의 제자인 19세 소녀와 재혼했고 생상은 40세에 19세의 아내와 결혼했다.

하지만 생상은 동성애자였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결혼한 지 6년 만에 아내와 여행 중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점, 그리고 자신의 제자인 포레와 각별한 관계를 오랜 기간 동안 유지했다는 점 등은 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둘 다 유아기에 부친을 잃은 점, 자녀를 일찍 잃은 점 등은 또 다른 공통점이다.

또한 생상은 영화에 곡을 붙인 최초의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영화 <기즈공의 암살>의 음악을 맡았다. 한편, 알마타데마의 그리스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은 이후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큰 영감을 주었다.

알마타데마는 여행을 즐겼는데 특히 로마의 폼페이를 여러 번 방문하며 로마인들의 생활을 탐구했다. 그의 작품 <테피다리움에서>와 같은 목욕탕 장면들은 로마인들의 퇴폐적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생상도 마찬가지로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방랑을 즐겼던 인물로 말년에는 알제리를 여행하다 그곳에서 객사했다.

알마타데마의 섬세하고도 화려한 작품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여인들, 생상의 현란한 기교와 어우러지는 세련된 뉘앙스의 유혹은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과하지 않은 감정 표현으로 보고 듣는 이의 상상력을 더욱 더 자극한다.

때론 드러낸 슬픔보다 감춰진 눈물이 더욱 슬프고,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섹시함보다는 보일 듯 말 듯한 속살에 더욱 더 매료되는 것처럼 이들의 그림과 음악은 보이지 않는 이면의 환상을 심어주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