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드라마 '선덕여왕''무의식의 골품제' 타파하고 '아곤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2009년 안방극장 최고의 캐릭터는 바로 '미실'이었다.

그녀는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의 작중인물에 그치지 않고, 화면 밖으로 몸소 걸어 나와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거침없이 활공하는 압도적인 캐릭터였다. 미실은 마치 그녀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유명인사인 듯 연일 일상 속의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단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삶의 근원적인 화두를 던져주는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미실은 역사상 가장 지적인 드라마 캐릭터였다.

미실은 걸어다니는 학술서적처럼 아무데서나 촌철살인의 강의 멘트를 날리며 작중인물 모두에게 불꽃같은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였다. 미실은 '악녀'라든지 '팜므 파탈' 같은 도식적인 캐릭터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창조적 다중인격'을 선보인 것이다.

그리스 사회는 모든 이들을 압도하는 천재가 출현하면 오히려 불꽃 튀는 경쟁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도편추방제'라는 제도를 두었다.

니체는 도편추방제가 단지 지나친 천재의 출현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 통제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천재를 낳기 위한 훌륭한 자극제였다고 해석한다.

말하자면 '한 명의 천재'를 우상화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수의 천재들'을 키워내기 위해 매번 '1등'을 사회 바깥으로 추방하여 '또 다른 경쟁'을 무한 리필하는 제도라고 본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확장시키기 위해, 서로의 목표와 이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파멸의 경쟁이 아니라 생산의 경쟁을 극대화시키는 이러한 정치를 니체는 '아곤agon의 정치'라고 불렀다.

드라마 속의 미실은 바로 이런 '아곤의 정치'를 진두지휘하는 총괄자처럼 보인다. 미실을 '선악을 넘어서' 존재하는 인간, '아군과 적군을 넘어서' 존재하는 매력으로 빛나게 한 요소들은 매우 다양했다.

그녀는 '최고의 적(敵)이 최고의 스승이다'라는 진리를 몸소 실천했다. 그녀는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더 높은 삶의 목표, 더 큰 삶의 꿈'을 설정하게 만든다.

그녀로 인해 작중인물들은 자신의 스케일을 훌쩍 넘어서는 엄청난 미션을 수행하고, 주어진 운명의 프로그램 그 이상의 운명을 꿈꾸게 된다.

그녀는 적들에게조차 황금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미실은 덕만공주가 한낱 보잘 것 없는 '낭도'에 불과했을 때도, 그녀에게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정치학 강좌를 끊임없이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이 미실은! 하늘을 이용하나, 하늘을 경외치 않는다! 세상의 비정함을 아나, 세상에 머리 숙이지 않는다! 사람을 살피고 다스리나,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다! 허나, 너희들은 무엇이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덕만에게 최고의 스승은 언제나 미실이었다.

덕만은 미실에 대한 복수심에 떨면서도 언제나 '최고의 적에게서 배우는' 행운을 마음껏 누리는, '미실 아카데미'의 아이러니컬한 수제자였던 것이다.

미실과 덕만이 마주 앉아 '티타임'을 갖고 있는 장면은 <선덕여왕> 최고의 명장면들을 속속 배출해냈다. 덕만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정책을 실현하려 할 때마다,

미실은 천오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잔혹한 '정치의 진실'을 발설한다.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희망은 버거워하며 소통은 귀찮아하며 자유를 주면 망설입니다. 백성은 즉물적이에요. 떼를 쓰는 아기와 같지요. 그래서 무섭고 힘든 것입니다."

"공주님! 세상은 종(縱)으로도 나뉘지만 횡(橫)으로도 나뉩니다. 세상을 종으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백제인 고구려인 신라인, 또 신라인 안에서는 공주님을 따르는 자들 이 미실을 따르는 자들. 하지만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딱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공주와 전 같은 편입니다. 우린 지배하는 자입니다. 미실에서 신권을 빼앗으셨으면 공주님께서 가지세요!"

그러나 이 모든 '대단한 미실'보다 더욱 인상 깊은 미실은 '슬픔조차 찬란한 미실'이었다. 그녀는 평생 황후의 꿈을 위해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마치 100미터 단거리 경주인 양 매번 전력질주 해왔다.

그런 그녀에게 단지 '성골'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평생 이뤄온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져가버리는 덕만은, 게다가 '황후'가 아니라 감히 '여왕'을 꿈꾸는 덕만의 존재 자체가, 미실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충격이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하는 그녀의 슬픔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고통 받아 본 적 있는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첫 번째, 그 발상이 부럽습니다. 서라벌 왕궁에서 나고 자란 미실은 할 수 없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 그 젊음이 부럽습니다. 훗날 제사와 정치와 격물이 분리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준비하기에 미실은 너무 늙었습니다. 세 번째는……. 왜 전 성골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 제가 쉽게 황후의 꿈을 이루었다면 그 다음의 꿈을 꿀 수 있었을 텐데……. 이 미실은 다음 꿈을 꿀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식을 품는 따스한 사랑이 아니라 자식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기어이 혼자 힘으로 날아오르게 만드는 독수리의 사랑법으로 주변의 모든 인간들을 변화시킨다.

모두에게 가장 '위대한 적수'가 됨으로써 주변의 인물 모두가 더 높이, 더 강하게 비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미실의 신라는 과연 천재의 산실이었다. 하지만 미실의 가장 뼈아픈 실책을 짚어낸 것도 바로 덕만이었다.

"새주께선 현명하십니다. 모든 것이 뛰어나십니다. 헌데 왜 진흥제 이후에 신라는 발전을 안 한 겁니까? 새주님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새주께서 나라의 주인이었다면 백성을 자기 아기처럼 여겼을 테고 그럼 늘 이해시키려 하고, 늘 더 잘되길 바랐겠죠, 허나 주인이 아니시니 남의 아기를 보는 것 같지 않았겠습니까? 늘 야단치고, 늘 통제하고, 늘 재우고만 싶겠죠."

미실이 평생 직시하지 못한 가장 뼈아픈 결핍이었다. 드라마 속 미실이 10년만 일찍 '초라한 황후의 꿈'이 아니라 '위대한 여왕의 꿈'을 꾸었다면, 그녀는 정말 역사 속의 선덕여왕보다 더 뛰어난 통치자가 될 수 있었을까.

미실이 지금 이 시대에 부활한다면, 천재가 탄생한다 하더라도 그의 가능성을 '떡잎부터 잘라버리기에 급급한' 한국사회의 집단적 하향평준화 욕망을 견딜 수 있을까.

미실 같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형 천재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태어난다면, 진정 우리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무의식의 골품제'를 타파하고 진정한 '아곤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