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프리즘] 미디어아트의 엘리트주의기술에 바탕 둔 예술, 과학적 사고와 예술적 정감 통합은 필수

제프리 쇼, The legible city
난해한 현대음악의 창시자인 쇤베르크, 베르크와 더불어 제2 비엔나 악파를 대표하는 베베른.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작곡한 선율을 동네 우체부들도 휘파람으로 불고 다닐 것이라고 동료인 하르트만에게 말했다.

이에 대한 하르트만의 반응은 아주 냉담한 것이었다. 베베른의 들뜬 기대와 달리 하르트만은 "나는 우체부들이 그의 선율을 무시할 것이라고 믿지만, 그가 부는 휘파람에 대해 경탄하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보내는 편지를 날라주기는 할 것이다"라는 냉정하고도 풍자적인 말만 남겼다.

하르트만의 말처럼 말하자면 쇤베르크와 베베른의 난해한 음악은 비록 적어도 소수의 음악가들에게는 혁명적인(?) 것일 수는 있지만, 고전음악과 낭만주의 음악에 길들여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괴팍스럽고 난해한 음악일 뿐이라는 것이다.

베르크에게서 작곡을 배웠던 독일의 사상가이자 변혁 이론가인 아도르노는 쇤베르크나 베베른의 음악형식은 단순히 기존의 음악과 새로운 선율이나 화음을 만드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사유체계를 뒤집는 것으로 보았다. 자신처럼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 빼놓고서는 일반인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의 형식 속에서 아도르노는 그야말로 새로운 사유체계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러니 어려운 음악 이론을 배우지도 않고 몸에 숙달된 대로 악기를 연주하고 형식적으로도 매우 단순해 보이는 재즈 음악가들은 그가 보기에 속물에 지나지 않았다. 재즈 음악은 지성이 수반되지 않은 단순한 음악이며 새로운 체계에 대한 숙고가 전혀 없이 그저 있는 현실을 수용하기만 하는 음악일 뿐으로 간주된 것이다.

클리포트 픽오버, Telopodite fractal 1
미디어 아트와 관련하여 일부 이론가들은 미디어 아트가 지닌 예술사적 의미를 엘리트주의에서 찾는다. 인간의 정서나 시각적 즐거움만 추구하던 예술가 달리 미디어 아트는 기술에 바탕을 둔 예술이라는 점에서 과학적인 사고와 예술적인 정감이 통합될 수밖에 없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형식이나 과학적 기술에 대해 거의 무지한 예술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 아트는 르네상스 예술의 정신을 부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설계하였으며 수많은 기계 장치도 고안하고 인간의 몸 정밀한 곳까지도 탐구하였던 해부학자이기도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닌 과학과 예술을 통합한 예술가였던 셈이다. 말하자면 그는 예술가이자 동시에 계몽의 철학자였던 것이다. 다빈치는 역사상 존재하였던 가장 엄친아다운 엄친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아트는 르네상스 이후 단절된 과학적 이성과 예술적 감성을 동시에 구현한 다빈치와 같은 엄친아를 탄생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미디어 아트가 대부분 컴퓨터와 같은 복잡한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무지할 경우 미디어 아티스트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나 작품을 충분히 구현할 수 없다. 이러한 태생적인 이유에서 미디어 아티스트는 기존의 예술가와 달리 과학적 지식을 지닐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기술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를 지닌 작품이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코흐 곡선
가령 미디어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경우에만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가 초창기에 만든 '읽을 수 있는 도시'(The Legible City)는 그것이 공개될 당시 관객과 스크린의 이미지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만든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 작품은 매우 조악해 보이기까지 한다. 당시의 기술적 제약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그의 미숙함 때문에 애석하게도 그는 단지 원기둥, 입방체 등의 폴리곤만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기술의 발달과 그에 상응하는 쇼의 지적인 노력 탓에 오늘날 그의 작업은 당시와 비교하면 눈부실 정도로 세련되었다. 예술가란 오로지 예술에만 정통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과거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미디어 아트가 예술적 감성에만 치우치지 않고 과학적 이성까지도 겸비한 진정한 엄친아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미디어 아트는 이른 바 통섭의 총애아로 치켜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예술이 어떤 현실적 제약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에 기초했다면, 이제 미디어 아트는 과학적 기술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는 상상에 기초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애초 기획의 단계부터 현실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단순한 공상가가 아닌 현실주의적 공상가인 셈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디어 아트는 현실과 상상의 이상적인 긴장관계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다.

클리포드 픽오버(Clifford Pickover)는 현대의 난해한 수학 중 하나인 프랙탈 이론을 컴퓨터를 활용하여 이미지로 완벽하게 구현한다. 'Telopodite Fractal 1'은 그가 컴퓨터로 만든 이미지이다. 얼핏 보면 이 이미지는 그저 나무뿌리를 닮은 듯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나무뿌리의 모양은 단순한 모양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처럼 프랙탈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코흐곡선은 처음에는 직선처럼 보이지만 확대해보면 몇 개의 직선이 꺾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직선을 이루고 있는 몇 개의 직선 역시 확대하며 단일한 직선이 아닌 몇 개의 꺾인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다시 확대하면 몇 개의 꺾인 직선들 자체도 직선이 아닌 몇 개의 꺾인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과정은 끝이 없다. 말하자면 우리가 직선이라고 보는 것은 미세하게 들여다보면 모두 다 직선이 아닌 것이다.

사실상 프랙탈의 이미지는 컴퓨터 매체로만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이며, 전통적인 평면회화나 도면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픽오버의 작품은 난해한 수학적 사고를 나무뿌리처럼 생긴 이미지를 통하여 계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수학도 아니며 그렇다고 전통적인 이미지도 아닌 셈이다. 어쩌면 수학적 지성이 은폐된 감성적 이미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차갑고 냉철한 수학적 지성과 뜨거운 감성의 결합을 완벽하게 구현한 셈이다. 픽업 자신도 그의 작업이 갖는 의미를 지성과 감성의 결합, 혹은 과학과 예술의 통섭으로 보았다.

픽업의 작업은 미디어 아트가 어째서 르네상스 예술과 인간을 부활시키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가 만든 이미지는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과학적 이미지이다. 어쩌면 픽업은 아도르노가 추구하였던 예술적 상상력과 개념적 사고가 완벽하게 결합된 전인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다만 르네상스시기와 달리 과학적 기술 탓에 다빈치와 같은 인간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픽업을 그리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미디어 아트는 르네상스시기에 존재하였던 소수의 엄친아가 누구나 될 수 있게 만드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엄친아로 만든다는 이 유토피아적 발상이 아도르노의 엘리트주의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박영욱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