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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근원적 자유를 노래하다

[Classic in Cinema] (5) 영화 <솔로이스트>의 <합창교향곡> 3악장
슬로모션 노숙자들 모습 속 흐르는 음악… 해방감 느껴져
지난해에 개봉된 조 라이트 감독의 <솔로이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넌픽션이다.

한때 잘 나가는 음악학도였으나 이제는 길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해 버린 나다니엘. 그는 길거리에서 두 줄짜리 바이올린을 켜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그가 어느 날 LA 타임즈 기자 로페즈의 눈에 뜨였다. 가족이나 친구와도 멀어진 채 오로지 특종만을 쫓는 고달픈 삶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던 로페즈는 거리에서 나다니엘을 발견하는 순간, 가지로서의 취재본능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다.

무심코 지나가기에는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나다니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줄리어드 음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숙자로 전락해 버린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천재 음악가.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로페즈는 입맛이 당겼다. 그래서 취재를 시작했다. 처음에 그에게 나다니엘은 새로운 특종감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취재를 하기 위해 그와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새 로페즈는 나다니엘에게 우정을 느끼게 된다.

나다니엘의 전공악기는 본래 첼로였다. 어려서부터 첼로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그는 재능을 인정받아 줄리어드 음대에 들어가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에 찾아온 정신분열증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고 말았다.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그는 자기 구역인 한 터널 밑에서 두 줄만 남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시 그가 바라는 유일한 소망은 네 줄을 모두 갖춘 바이올린을 갖는 것뿐이었다.

로페즈는 나다니엘을 정상적인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 로페즈가 쓴 나다니엘에 대한 기사를 보고 감동한 한 독자가 자신의 첼로를 기증하자 로페즈는 첼로를 가지고 나다니엘에게 가서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면 첼로를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다니엘은 자기 삶의 근거지인 터널을 떠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나다니엘의 삶을 정상인으로 그것으로 돌려놓기 위한 로페즈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다니엘은 또 다시 거리로 뛰쳐나간다. 로페즈가 구획 지어 놓은 '정상의 삶', '실내의 삶' '방에 갇힌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정신분열증은 나다니엘로 하여금 '안'보다는 '밖'에서의 삶, 야인(野人)으로서의 삶,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로페즈는 끝내 나다니엘을 정상인의 삶으로 돌려놓는 데에 실패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나다니엘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는 '안'보다는 '밖'에서의 삶에서 더 행복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보통 사람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로페즈의 시도는 애초부터 무모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솔로이스트>의 끝 장면에는 베토벤 <합창교향곡>의 3악장이 흐른다. <환희의 송가>가 나오는 4악장의 광채에 가려 좀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합창교향곡>의 3악장은 세상 그 어느 음악보다 아름답다. 이 곡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를 느끼게 한다. 치열한 투쟁 끝에 얻은 찬란하고 화려한 자유가 아니라 신이 애초에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스럽고 느긋한 자유, 중력의 법칙이 미치지 못하는 저 먼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모두 4악장으로 이루어진 <합창교향곡>에서 3악장은 나머지 악장들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격정적이고 극적이라면 후자는 명상적이고 시적(詩的)이다. 정말로 이 곡의 3악장은 지극히 우아하고 격조 높은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 강력하고 화려한 4악장의 대폭발을 위해 이토록 부드럽고 아름다운 전주(前奏)가 필요했던 것일까.

인류애와 같이 드높은 이상을 외치던 베토벤도 여기서는 잠시 목소리를 낮춘다. 그리고는 보다 근원적인 곳으로 회귀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는 이른바 프레임 밖에 존재한다. 나다니엘을 비롯한 노숙자들은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자체는 노숙자의 문제를 풀어야 할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합창>의 3악장이 흐르는 가운데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된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면 지나친 해석의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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