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철학·영화 등 여러 분야와 관계하며 다양한 내러티브 생산
인터넷 검색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화제의 사건들 뒤에는 경악과 공포심 외에도 '흥미'가 있다. 각 사건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은 윤리적인 자성과 비판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현상으로서 다루어질 때는 분석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문화예술 작품의 소재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다른 차원의 것으로 승화되며 '페 디베르'가 되는 것이다.
일상의 사건에서 다른 차원의 문화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해석되는 페 디베르는 프랑스의 문화계에서 일상적 범죄 혹은 사건이 문학과 예술의 원천으로 확장하는 현상을 통칭하는 말이다. 일상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페 디베르적 성향은 문학, 철학, 영화 등 여러 분야와 끊임없이 관계하며 다양한 내러티브로 생산되어 왔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유난히 자주 회자되고 장 주네의 연극 <하녀들>은 페 디베르의 전형적인 사례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하녀들>의 소재가 되었던 파팽 자매의 사건은 프랑스 전역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들의 엽기적인 살인 방식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고 특히 부르주아 계층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마치 오늘날 한국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들과 흡사하다.
이 같은 페 디베르의 예들은 이외에도 적지 않다. 스탕달의 <적과 흑>, 위고의 <레 미제라블>, 푸코의 <감시와 처벌> 등은 모두 페 디베르 혹은 페 디베르와 유사한 제재에서 영감을 얻은 고금 문화 텍스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적과 흑>과 <레 미제라블>이 격렬한 사회적 정치적 변동의 시대 한복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반면, <감시와 처벌>은 국왕 시해 미수자의 처형을 섬뜩하게 기술하면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 페 디베르는 사적이고 일상적인 세계가 돌발적이고 우연한 듯 공적인 세계로 접근하는 지점이다. 그것의 사사로움 때문에 페 디베르는 어디에도 널리 퍼져 있다. 그것이 더 고급한 문화로 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왜'라는 질문이 필요할 뿐이다.
'페 디베르'를 좇는 시선들
국내에서도 페 디베르에 대한 성찰은 꾸준히 있었다. 올해 초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죄악의 시대 展>은 삶의 공간이 대도시로 재편된 후, 인간의 범주 밖에서 일상으로 다가온 범죄를 조명한 바 있다.
현재 대림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경계에서>도 질문은 이어진다. 올해로 60년 전의 과거가 된 한국전쟁은 난다 작가('전쟁과 평화')의 프레임 속에서 하나의 유희, 혹은 무관심으로 읽혀진다. 하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몇 대의 전투기와 공중에 떠 있는 낙하산 부대의 모습이다.
반면 아래쪽 잔디밭에는 가족들과 도시락을 먹거나 낮잠을 즐기는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부자연스러운 합성인 듯 생경하게 보이는 이 대비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겐 전쟁이 하나의 스펙터클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말한다.
최근 '스페이스15'에서 열린, <일상사_페 디베르 전>은 페 디베르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을 시도했다. 이 전시는 드러나지 않는 사적 드라마 혹은 일상적 사건을 바탕으로 세 젊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 내러티브를 변주한 결과에 주목했다. 작가에 의해 퍼져나가는 사사로운 사건은 일상이라는 생활 반경을 바탕으로 한다.
특히 이 전시에서 보여진 심대섭의 작업에서는 불안, 고독, 충동, 공포와 같은 개인의 실존적 고뇌가 다뤄져 눈길을 끌었다. 무채색의 건조한 페인팅 기법이 인상적인 작가의 회화는 정적이라기보다는 소스라칠 듯한 공포와 파멸에 대한 충동, 그리고 죽음으로 인한 생의 의지를 환기시키며 역동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일상의 언어에서 거부된 텍스트가 시각적 내러티브로 변이하는 페 디베르의 가능성이다. 하지만 작품들은 동시에 페 디베르가 개인적인 범주를 넘어서면 자극적일수록 대중에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 매혹적인 페 디베르
그러나 페 디베르의 매혹적인 성격은 필연적으로 폭력의 선동과 예술의 저차원성 논란을 빚어낸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동시에 다시금 그 문제(사건)를 환기시키는 단초로 작용한다.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유명한
그녀는 이 연작에서 현대인들이 흥미로워한 사건 혹은 TV, 영화에서 종종 기묘한 미감으로 다가오는 범죄현장 사진을 토대로 사건의 현장을 패셔너블하게 재구성했다. 유명 모델과 배우들에게 최신 명품 옷을 입히고 '사체 연기'를 하도록 해 촬영한 이미지들은 삶의 이중성과 함께 사실과 허구라는 현대성의 주요 코드를 돌아보게 한다. 페 디베르를 활용하면서도 그 거부감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 장르에서는 이런 페 디베르의 매혹을 굳이 뿌리치지 않는다. 니체의 초인론에 심취해 있던 19살의 동갑내기 법대 졸업생들이 14살의 어린이를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은 뮤지컬 <쓰릴 미>로 바뀌어 장르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1924년 시카고를 떠들썩하게 했던 흉학한 전대미문의 실제 유괴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그 유명한 변론을 남긴 사건이기도 하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부녀자를 대상으로 10차례에 걸쳐 일어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 와요>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제작돼 각각 연극사와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계기가 됐다. 또 영화 <추격자>는 유영철이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0개월간에 걸쳐 21명을 살인하고 사체를 유기한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영화에서 희생자로 묘사된 9명의 성매매 여성들은 유영철이 실제로 살해한 11명의 맛사지걸과 전화방 종사자들에 빚지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