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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꿰뚫어 보는 모형 혹은 환영

정정주 작가 개인전 <Illusion>
김종영미술관 '2010 오늘의 작가'로 선정… 지난 작업 함축적 정리
  • 응시의 도시-상하이
전시장 깊숙한 곳에 상하이가 재현되고 있다. 상하이의 건물 모형들이 배치되어 있고, 벽면에는 그 풍경이 상영중이다. 모형들 틈틈이 설치된 카메라들에 포착된 실시간 영상이다. 관객 자신의 모습도 언뜻 언뜻 비친다.

정정주 작가의 <응시의 도시-상하이>는 도시를 물리적 골격과 빛, 바라봄이라는 기본 요소로 분해한 후 재조립한 것 같다. 빛과 바라봄이 기본 요소인 이유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터이다. 빛은 작가가 공간을 파악한 첫 매개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유학 중이던 90년대 후반의 초기 작업들은 작가의 숙소에 비쳐 들어온 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관찰한 데서 시작했다. 빛은 인간이 공간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므로, 자연스럽게 바라봄이라는 행동과 이어진다. 공간을 둘러싼 이 작용-반작용 구도를 도시에 적용한 것이 바로 <응시의 도시-상하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적용 과정에서 일어난 화학작용이다. 작가의 손을 통해 축소된 채 재조립된 도시에서는 이상한 공허함이 짙게 감돈다. 단지 인기척이 없기 때문은 아니며, 오히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확히 감지되지 않을 때의 긴장과 불안, 어떤 음모의 기운에 가깝다.

인공 빛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도시의 스펙터클로, 바라봄을 전시하는 영상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감시 카메라의 시선으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그 순간 이 작업은 도시의 외형뿐만이 아닌 도시의 작동 방식, 그 기저의 이해관계와 권력구도까지 재현하는 것이 된다. 작품의 인상은 곧, 작가가 파악해낸 도시의 감각 혹은 영혼이다.

  • 빌라(수색로)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정정주 작가의 작업에서 "보고/보이는 관계가 만들어내는 대도시의 사회적 관계"를 읽어낸다. 나아가 기능적으로 설계된 근대 건축물(과 그 사상과 정서)이 첨단 미디어와 결합한 가상공간을 본다. "너무나도 투명해서 오히려 혼란스러운 근대적 공간은 미디어와 결합하여 인간의 시공간 감각을 와해시키는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가상공간에 대한 비유가 되고 있다.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보여지는 것, 그리고 더 많이 보여지는 것, 이런 것들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권력의 관계를 함축한다."

정정주 작가의 작업이 이렇게 복합적인 알레고리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도시를 비롯한 장소들을 모형으로 만드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에 관심이 많다. 건축물은 자연의 빛, 대기, 습도, 소리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제어하고 변형시키며, 사람들에게 일정한 공간적 환경을 만들어준다. 또한 건축물에는 개인적인 경험, 역사가 스며있으며 사회적 관계와 의미들이 깃들이게 된다. 그리고 건축물을 통해 형성되는 안과 밖의 관계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속박과 자유, 안정과 불안정 등과 같은 다양한 의미의 대칭을 이루어낸다."

중요한 것은 이런 환경이 도시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일 것이다. <빌라(수색로)>라는 작업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다. 서울에서 일산 가는 길인 수색로 변에 있는 군인아파트를 본뜬 함석판 모형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전쟁터의 방어선"처럼 보이는 이 독특한 건축물은 관계나 정서에 대한 고려 없이 기능적으로 설계된 근대적 공간의 전형이다. 겉은 고요하고 견고해 보이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안을 들여다 보면 방마다 사람들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 어떤 이는 타인에게 쉽게 상처 입었던 어린 시절을, 어떤 이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가족에 대해 고백하는 중이다. 어떤 이는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찢고 있으며, 어떤 방에서는 화를 이기지 못해 지르는 소리가 난다. 도시의 찬란한 스펙터클 아래 보여지지 않는, 혹은 보여지지 못한 어떤 부분이 이렇게 곪고 있었다.

  • Metaphysical star
이선영 미술평론가가 정정주 작가의 작업을 매개로 근심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는 도시의 스펙터클이 도시인들의 소외감과 공허함, 무관심과 수동성을 만들어내며 이는 권력의 이해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무인카메라들의 시선만이 번득이는 정정주의 작품처럼, 스펙터클의 세계는 억압적인 전체성을 형성했다. 정정주의 작품은 군중의 육체와 그것이 담긴 공간의 괴리를 강조하는데, 이는 개인주의의 강화를 낳는다."

최근 정정주 작가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처럼, 우리가 삶의 터전에 대해 근심해야 할 문제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영미술관의 김정락 학예실장은 "정정주 작가의 모형들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생활 환경을 낯설게 보게 한다. 우리가 몸으로 경험했던 환경을 조망하는 이미지로 바꾸어 거리를 두게 하며 종종 비판적 태도를 이끌어낸다"고 평가했다.

정정주 작가는 올해 상반기 김종영 미술관 '오늘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지난 6월 25일 시작되어 7월 29일까지 이어지는 전은 작가의 지난 작업을 함축적으로 정리한 전시다. 작품이라는 '공간'과 관객의 관계를 다룬 작품, 새로운 미디어들이 불러 일으킨 새로운 공간 지각 과정을 재현한 듯 공간을 3차원적으로 분해하고 변형한 작품 등 신작도 포함됐다. 02-3217-6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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