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in Cinema] (18) 영화 <내겐 너무 이쁜 당신> 속 슈베르트슈베르트 음악 영화 전편 흐르며 불편한 진실 일깨우기도

금지된 사랑 즉, 불륜은 영화의 영원한 소재이다. 현실에서의 불륜은 구차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불륜은 아름답다.

평범하고 매력 없는 아내 혹은 남편과 살고 있던 주인공이 어느 날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져든다. 금기의 벽을 깬 그들의 사랑은 지극히 로맨틱하지만 끝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기에 애틋하고 절절하다.

이들이 사랑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리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은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 순간 불륜의 사랑은 지고지순의 사랑이 되고, 절체절명의 사랑이 된다. 여기에 로맨틱한 음악까지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불륜 영화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불륜의 대상이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 정도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이렇게 누가 보아도 수긍이 갈 정도의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인의 지탄을 받는 불륜의 사랑도 나름의 정당성을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의 영화 <내겐 너무 이쁜 당신>은 불륜 영화의 공식을 완전히 뒤집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중년의 남자 베르나르는 부유한 자동차 상이자 가장이다. 그에게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아내 플로랑스가 있다. 하지만 이런 아내를 두고 그는 비서인 콜레트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콜레트는 플로랑스와는 여러모로 대조되는 여자이다. 못 생긴데다 뚱뚱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런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제까지 나온 불륜 관계의 도식을 180도 바꾸어놓는 설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년의 사장과 뚱뚱하고 못생긴 여비서의 사랑. 불륜에 대한 우리의 판타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이런 설정이 그런대로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는 영화 전편에 깔리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음악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런 황당한 설정의 사랑도 음악과 대사로 적당히 윤색하면 얼마든지 시적인 판타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에는 줄거리다운 줄거리가 별로 없다. 불륜을 미화시키려는 듯 시적으로 부드럽게 속삭이는 베르나르와 콜레트의 대사와, 수시로 등장하는 슈베르트의 음악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현실과 환상을 적당하게 섞어서 영화를 만들었다.

여기서 슈베르트의 음악은 제3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베르나르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가 들려온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음악 숙제 때문에 베르나르의 아들이 틀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이 음악이 영 못마땅하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불쾌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음악숙제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슈베르트 음악이 들리자 베르나르는 참다못해 아들에게 아직도 숙제가 끝나지 않았냐고 핀잔을 한다. 이렇게 슈베르트의 음악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수시로 등장해 베르나르의 무의식에 불편한 작용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베르나르는 연인 콜레트와 아내 플로랑스 모두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차를 타고 가버리는 두 여인을 허둥지둥 쫓아가는 베르나르. 그 황망한 뒷모습을 배경으로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흐른다. 음악 소리에 화가 난 베르나르는 뒤로 확 돌아서서 외친다.

"망할 놈의 슈베르트 음악. 제발 그 음악 좀 끄란 말이야."

여기서 슈베르트의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 전편에 흐르면서 불륜의 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윤색했던 슈베르트의 음악. 그러나 베르나르에게 그것은 불륜의 사랑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일깨우는 무의식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마침내 뒤로 돌아서서,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외친다. 제발, 그 불편한 음악을 꺼달라고.



글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