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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에는 인간의 삶 녹아 있어

[Story in the Kitchen] (5) 고전 속의 음식
<삼국지>의 만두, 카사노바의 굴 개인 정체성 드러내
<임꺽정>의 밥 사회의 시대상 보여줘
프랑스 법률가 장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가의 대부 격인 아저씨다. 이미 180여 년 전 미식에 관한 저서를 펴냈는데, 그는 이 책의 목적에 대해 "미식법에 과학의 지위를 주기 위해서, 그 이론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서, 미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정의하고 이 사회적 자질을 대식이나 폭식으로부터 영원히 분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맛의 생리학>(1825)에 쓴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주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리다"란 말은 먹을거리 문제가 생길 때마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레퍼토리가 됐다.

이미 강산이 수백 번 바뀐 지금까지 그의 말이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기실 음식이야말로 인간의 존재방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상이 아니겠는가.

사바랭의 말을 비롯해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 닳고 닳은 것들을 꺼내 되새기는 이유는 아마 시대를 뛰어넘은 어떤 보편성이 있기 때문일 게다.

고전 속 음식을 통해 시대를 반추해보면 어떨까?

제갈공명의 만두, 카사노바의 굴

'아시아 고전'하면 먼저 나관중의 <삼국지>가 떠오른다. 어지러운 시대에 영웅이 나오고, 영웅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색과 술이 반드시 나오는 법, 색과 술에 곁들이는 음식은 영웅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삼국지>에서 소개된 음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만두다. 만두는 '밀가루 음식 만'(饅)자에 '머리 두'(頭)자를 쓴다. 밀가루로 만든 머리란 뜻이다. 이 말은 제갈공명의 설화에서 비롯됐다. 제갈공명이 여수(濾水)강을 건너려는데 물살이 너무 세 건너지 못하게 됐다.

이때 그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밀가루로 사람 머리 모양을 빚어 강에 던져 넣으며 강 수호신을 달랬다. 그러자 금세 바람이 멎고 물살도 가라앉았다는 그야말로 설화 같은 이야기다. 당시 공명이 만든 밀가루 제물을 만수(饅首)라고 불렀는데, 후에 만두가 됐다. 현재 한국과 일본도 같은 한자 만두(饅頭)를 사용한다.

만두가 제갈공명의 기지를 보여주는 음식이라면, 카사노바의 음식은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한국인에게 카사노바는 바람둥이를 뜻하는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각인되지만, 그의 직업은 난봉꾼이 아니라 법학자였다.

  • 영화 '카사노바'
40여 편의 작품을 남긴 작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종교철학자였고, 프리메이슨 사제단 단원으로 활동한 비밀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의 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8세기 유럽전역을 여행하면서 쓴 <회상록>인데, 여기에 그 화려한 여성 편력과 식도락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종달새나 모자버섯 같은 진미, 비범한 와인과 독특한 과실주를 맛보고자 미각 여행을 자주했다. <회상록>에 따르면 송로버섯이나 샴페인을 유혹의 도구로 썼고, 육욕을 자극하고자 자신의 입에 넣은 굴을 상대의 입에 넣기도 했다.

'어느 날 에밀리와의 식사 때 나는 굴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약간의 실수로 굴이 그녀의 가슴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자연스레 손으로 떨어진 굴을 주으려 했으나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가슴 단추를 풀었다. 그리곤 내 혀로 그녀의 가슴에 떨어진 굴을 삼켰다.' (자서전 <회상록> 중에서)

임꺽정의 밥과 우리의 밥

독일 철학자 포이어 바흐는 사바랭의 말을 이렇게 비틀었다.

  • 영화 '라 돌체 비타'
'내가 먹는 것이 나다.'

독일 특유의 팍팍한 어감으로 바뀌어 아쉽지만, 포이어 바흐에 이르러 음식 의미는 범사회적인 것으로 확장된다. 왈, 먹을거리에는 인간의 삶 전체가 녹아있다는 것. 제갈공명의 만두나 카사노바의 굴처럼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음식도 있지만, 고전 속 음식은 대체로 그 사회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식민지 시대 발표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한국근대소설사에서 기념비적 역사소설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내용뿐 아니라 언어의 표현에서도 '우리말의 보고'로 불린다. <임꺽정>에 등장하는 각종 밥만 봐도 옛 우리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논둑에서 기승밥도 먹고 절에서 잿밥도 먹고…우리도 자기네와 같이 입쌀밥만 먹고 지내는 팔자인 줄 아는 게야'(1권 봉단편)

'너를 맨밥 먹이기 답답해서 양식하고 반찬하고 얻어 왔다'(2권 피장편)

'조팝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뜰 앞에 앉아서 해를 보냈었습니다 … 할아버지 턱찌끼 먹기 싫소. 그대로 주우.' (4권 의형제편 1)

'병인이 개춘이 되며부터 조금조금 나아서 중둥밥까지 달게 먹게 되었다.'(6권 의형제편 3)

'숫밥은 없지만 상제님 얼마 안 잡수신 대궁이 그대로 있습니다.'(10권 화적편)

기승밥은 모를 내거나 김 맬 때 논둑에서 먹는 밥이고 잿밥은 부처 앞에 놓는 밥이다. 입쌀밥은 흰쌀로, 조팝은 맨 좁쌀로 지은 밥을 뜻한다. 맨밥은 반찬 없이 먹는 밥, 중둥밥은 식은 밥에 물을 붓고 다시 끓인 밥을 뜻한다. 턱찌끼는 먹다 남은 음식, 대궁은 먹다 남은 밥을 이른다. 이렇듯 <임꺽정> 속 밥과 관련한 파생어들을 우리들의 밥과 탄생과 쓰임의 배경이 사뭇 다르다.

영양밥, 대나무통밥, 김밥 등 오늘날 불리는 각종 밥들은 잡곡과 부재료를 곁들인 것을 의미한다. 이 밥들은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는가가 관건이 된 사회에서 탄생한 밥들이다. 이에 반해 <임꺽정> 속 밥은 재료가 아니라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달리 불린 밥들이다. 기승밥, 잿밥 등은 밥을 먹는 장소와 상황을 담고 있는 말이고, 조팝과 대궁, 중둥밥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밥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2010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전도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라 돌체 비타> 1960년대 만들어진 흑백영화다. 모든 색을 명암만으로 표현하는 특성상 흑백영화에서 음식은 잘 등장하지 않는데, 이 영화는 달콤하게 치장된 사교계와 그 꿈이 사라진 한낮의 일상을 샴페인과 에스프레소, 두 음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서 연일 계속되는 파티마다 한껏 치장한 남녀가 모여들고, 장면마다 샴페인이 넘쳐흐른다. 청아한 빛깔과 넘치는 거품, 별처럼 솟구치는 기포. 샴페인은 달콤하고 화려하지만, 공허한 사교계를 그리고 있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인물들은 더 이상 샴페인을 마시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진하디 진한 커피,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샴페인의 거품은 다 빠지고, 무거운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마시는 쓰디쓴 커피는 꿈이 달아난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를 말한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천 년을 살아남은 고전. 그 고전 속 음식은 과거 그들의 정신적 지향과 상징을 은유하고 있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는 칼럼 '당신의 음식, 당신의 존재 방식'에서 "사회가 발전할수록 '어떤 것을 먹는가'는 고도의 인간적 선택 행위가 된다"고 했다. 사회마다 선호하거나 기피하는 음식이 있으며 먹을거리 속에는 인간의 정신적 지향과 상징체계가 담겨 있다고 말이다.

먹는 것 자체를 지향하는 사람과 어떻게 먹느냐를 고민하는 사람 사이에는 광겁(曠劫)의 간극이 있다. 오늘 내가 먹은 것을 천천히 되새겨보자.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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