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2, the 만화> 프로젝트 돈과 관련된 일상, 경제활동, 인간적 갈등등 풀어놔

권순영 작가의 <가족>은 공포스럽다. 전시장 한쪽 벽을 채운 이 큰 그림의 가운데에는 줄줄이 '꿰어진' 아빠와 엄마, 아들과 딸이 있다. 주변은 뒤틀린 동화 같다.

미키 마우스와 들장미 소녀 캔디의 변종 이미지, 크리스마스 트리와 비누방울이 가득한데 구석에서는 공장 굴뚝이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다.

오늘날 가족의 풍속도다.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단위를 꾸리는 일이 이렇다. 무엇 때문일까. 작가는 해석한다.

"가족 구성원의 캐릭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돈이라는 것이 분명 매 순간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불행한 삶에 대한 책임이 돈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개인 삶을 돌아보았을 때 돈이란 것이 내 부모와 형제들의 삶을 조금씩 비틀어놓았다고 생각한다. 때론 소시민적 일상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야만성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낯익다. 자본주의 하에서 우리 대부분이 나날이 더 실감하고, 씁쓸해하고 때론 체념하기도 하는 이야기다. 돈은 가족 관계를 뒤틀지만, 자본주의는 가족 판타지를 부풀린다. 그 틈에서 개인이 체감하는 가족은 잔혹 동화가 될 수밖에 없다. 낯익지만, 이렇게 예민한 장면 앞에서는 새삼스럽게 뜨끔한 현실이다.

예술 공간 풀에 마련된 <돈 2, the 만화> 전에 작가들이 작정하고 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여기에서 '돈'은 '자본주의'나 '화폐'가 아니다. 일용할 식량과 딸 아이에게 신기고 싶은 새 신발이며, 시야를 옹색하게 만드는 환경이자 사람들을 시험대에 올리는 심판관이다. 돈과 관련한 일상, 경제 활동뿐만이 아니라 돈 때문에 겪는 인간적 갈등과 고민과 판단이다.

그 점이 생생할 수밖에 없다. 부제가 '만화로 이야기하는 작가의 돈'이다. 10여 명의 작가들, 특히 만화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만화 산업이 취약한데다, 만화에 대한 공공적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소수자'인 만화가들의 생활은 어렵고, 어려운 만큼 진지하다.

김수박 작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브로구(블록)'를 나르는 일을 한 사연을 네모난 칸들에 담았다. 늦여름이라 다들 꺼려 하는 일이었다. 코피가 터졌고 "점심식사 때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입맛이 없어서 오히려 막걸리가 좋았다." 그런데도 일당을 받으니 세상에게서 "넌 쓸 만해"라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상쾌했다. 집에 돌아와선 씻지도 못하고 쓰러졌고 "하루가 다 지나도 일어나지 못했다."

도대체 돈이 뭐길래. 만화가들의 사연은 사담에 머물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변화 속에서 끝끝내 인간성을 지키고 삶의 향방을 고민하려는 문화예술이 처한 상황의 축약판으로 볼 수 있다.

고영일 작가가 내놓은 것은 2007년 홍콩아트센터에서 열린 대안만화 전시에 참석한 경험이다. 홍콩 들은 이상할 정도로 줄기차게 "만화가 돈이 되냐",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냐" 류의 질문을 던지고 작가도 줄기차게 "수입이 얼마여야 잘 사는 것인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이미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고 생각하고 불만 없다"고 대답한다. 누군가가 "홍콩 사람들은 돈 안 되는 일은 안 한다"고 그 이상한 상황을 설명한 후 작가의 고민은 더 깊어진다.

"한국도 홍콩과 다를 게 없었다. 우리도 돈 되는 일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환경이 죽어가고 농업이 죽고 노동자가 죽어도 GDP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과연 나는 10년 후에도 2007년 홍콩 들의 질문에 변함 없는 답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미래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그가 <홍콩에서 들고 온 질문>에서, 작가가 아닌 누구라도, 자유로운 이가 어디 있을까. 전시를 기획한 강동형, 김진주 큐레이터는 현실을 다루는 만화의 방법에 주목했다.

개인에서 출발하되 현실을 섬세하게 들여다 봐 결국 사회적 보편성에 닿는 만화의 태도와 과정은 현대 미술에 하나의 귀감이 될 수 있다. "최근 현대 미술은 돈 문제를 포함한 현실을 개념화하고 쿨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접근으로는 사회의 부조리를 적절하게 짚어내지도,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만화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 중 하나가 지난 3월 출간된 <내가 살던 용산>이다. 6명의 만화가가 용산 참사 당시 희생된 이들의 삶을 재구성한 이 책은 르포르타주 만화의 전통을 잇고 있다. 만화가들이 각각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들인 노력, 심도 깊은 취재와 자신을 개입시키는 진정성은 현대 미술이 공공성을 지향할 때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돈 2, the 만화>는 이런 내용을 5차례의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활발히 퍼뜨릴 예정이다. 오늘날 궁지에 몰린 만화가들의 생활은 어떻게 지속 가능할 것인가, 부터 만화의 진정성을 어떻게 재평가하고 미술과 연결할 것인가, 에 이르는 질문들이 제기된다.

8월13일 국내 리얼리즘 만화의 대표 주자인 이희재 작가와의 대담을 시작으로 만화가의 정체성을 확장해 나가는 젊은 작가 앙꼬의 만화 제작 과정 공개와 콘서트, 만화가 김성희와 작가 박승희가 어린이들과 함께 동네를 만화로 기록하는 프로그램, 만화 비평 토크 등이 열린다.

고영일 작가가 진행하는 풀 아카이빙은 대안 만화와 대안 미술의 접점을 찾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스스로 군사 독재 정권과 학생 운동, 사회의 급격한 자본화를 겪은 세대인 작가가 풀이 보유한 지난 시대 미술 운동 자료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동시대 대안 '문화'의 바탕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돈 2, the 만화> 프로젝트는 8월22일까지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풀에서 열린다. 관련 정보는 홈페이지(www.altpool.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02-396-4805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