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키 리듬이 탁월했던 '한동안 뜸했었지'와 흥겨운 디스코 풍의 '장미'를 발표해 밴드로는 이례적으로 빅 히트를 터트린 <사랑과 평화>는 2집 이후 내우외환으로 한동안 공백기를 맞았다.

1988년에 발표한 3집은 록밴드를 '그룹사운드'로 불렀던 마지막 시대를 장식하며 시대의 명곡 '울고 싶어라'를 탄생시켰다. 이 노래는 1집 녹음 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밴드를 떠나 경기도 용인에서 농사를 짓고 지내던 이남이가 재합류해 발표했던 노래다.

총 10곡이 수록된 3집의 타이틀곡은 '울고 싶어라'가 아니라 최이철 곡 '노래는 숲에 흐르고'다. 최이철의 가성 창법과 멤버들의 코러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곡은 귀에 감겨오는 멜로디가 탁월하지만 '작은 손 모두 위', '젖은 눈길은'과 같은 다른 수록곡들에서 느껴지듯 대부분 재기 발랄했던 과거의 리듬 터치와 실험적 음악성보다는 삶을 관조하는 느릿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호루라기 소리가 파워풀하고 경쾌한 '불의 나라'와 한국적 장단을 떠올리는 연주곡 '한문과 한글' 정도가 참신한 실험성을 담보한 곡이다.

이 앨범의 뜨거운 감자는 단 한 곡을 부른 이남이의 애절한 소울풍의 노래 '울고 싶어라'다.

'일밤' 출연뒤 빅히트

직접 창작한 이 노래가 대중적 파급력을 획득한 것은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다. 음반 발표 후 밤무대에서 이남이의 노래를 들은 MBC PD가 감흥을 받아 당시 지상파 TV의 인기 음악프로그램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 출연을 주선했던 것이다. 벙거지를 눌러 쓴 이남이의 별난 외모와 독특한 무대는 화제를 몰고 왔다. 방송 출연 뒤 '울고 싶어라'가 수록된 3집은 발매 2개월 만에 7만장이 넘게 팔려나가는 대박 행진을 벌였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과 국회 청문회로 온 나라가 들끓었던 해다. 청문회장에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을 앉혀 놓고 날카로운 질문을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깜짝 스타로 등장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벙거지를 쓴 초라한 행색의 이남이가 처절하게 부른 '울고 싶어라'는 마치 청문회에 불려 나와 초선 국회의원에게 수모를 당하던 거물 인사들의 처지를 풍자하는 상황과 절묘하게 대입되었다.

'5공 청문회' 풍자

사실 이 노래는 <사랑과 평화>가 멤버들 사이의 불화와 이런 저런 문제로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했을 때의 참담한 심정을 담은 노래다. 처연하고 슬픈 이 노래는 5공 청문회라는 시국 상황과 맞아 떨어져 오히려 코믹한 노래로 화학 작용하며 당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당시 전국의 길거리는 온통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로 점령 당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