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은 4세대 정당체제의 출발"

[인터뷰] 이강래 민주당 의원
"신당은 4세대 정당체제의 출발"

“민주당이 지금 이 상태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4ㆍ24 재ㆍ보선에서 7전 전패라는 결과는 이미 국민이 민주당에 사형선고를 내린 겁니다. 또 크게 보면 정치사적으로도 획을 그어야 할 때입니다. 지역 벽을 허물고 국민통합을 추구하고 개혁성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당 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간한국은 5월9일 민주당 신 주류로 분류되는 이강래 의원(초선ㆍ전북 남원 순창)을 만났다. 이 의원은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신당 창당은 3김 시대와 대칭되는 시점에서 이뤄져야 하는 필연적인 4세대 정당 체제의 출현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1세대의 이승만 정권의 독립운동가 그룹, 2세대는 군 중심의 근대화 그룹, 3세대는 민주화 열기 속에 등장한 YSㆍDJ정권이라고 정의했다.

이 의원은 또 당내 구 주류들을 중심으로 한 통합신당론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통합이란 현재 각기 갈라져 있는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성향을 모두 아우르자는 국민통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구 주류들이 주장하는 통합은 신 구 주류가 통합하자는 것으로 변질돼 있어요. 이 말은 기득권을 포기하자는 우리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는 개혁신당을 거부하려는 불순한 의도도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신당 참여 폭과 관련, 신당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당 추진에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기득권 포기 부분인데 대체로 민주당 의원중 80% 정도는 뜻을 같이할 것이라고 봅니다. 20% 정도는 떨어져 나가겠지만 그들이 자생적으로 존립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극렬 반대주의자는 함께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전북 남원 출신의 이 의원은 명지대 행정학과를 나와 14대 대통령 선거 때 DJ의 정책담당 비서를 맡으며 정치권 중심에 발을 디디게 됐다. 국민회의 정책연구실장과 기획담당 총재특보를 거치며 DJ의 대선 승리를 도왔으며, 국민의 정부 첫 안기부(현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내다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을 거쳐 16대 총선서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된 뒤 민주당에 입당했다.

민주당에서도 총재특보와 대선기획단 전략기획실장 및 노무현 후보 기획 특보를 맡으며 노 정권 출범에도 상당한 역할을 해 낸 기획전략통이다. 그러나 공천 문제와 관련, 동교동계와는 다소 소원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3김과 대칭되는 정당 출현해야”


- 신당 창당의 당위성은.

“4ㆍ24 재ㆍ보선에서 민주당은 전패를 했다. 민심의 흐름이 변했고 민주당도 변해야 한다는 반증이다. 대선직후 소속 의원 23명이 발전적 당 해체를 주장했다. 그 때 절충점으로 나온 것이 당 개혁특위였고, 나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개혁안을 만들었지만 당시 지도부에서 반발하면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민심이 재ㆍ보선에서 민주당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3김’과 대칭되는 4세대 정당이 출현해야 새 시대를 이끄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더 이상 구태한 모습으로는 시대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


- 역대 정권은 늘 새 정권을 위한 신당을 창당해 왔지 않는가.

“(손을 내저으며) 이번은 다르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정당은 집권자 중심이었다. 박정희ㆍ전두환 정권의 공화당과 민정당, 3김의 지역 배경 중심의 지역패권당 등이었다. 이번은 어찌 보면 노무현 대통령과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에게는 신당을 만들거나 깰 힘이 없다. 또 공천권도 특정인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형태다. 외형상은 같아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다르다”


- 신당이 지역주의를 청산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는데.

“이전 정권에서도 정치 지도자와의 결합을 통하는 방법으로, 또는 제도적으로 선거구 조정 등의 방법으로 시도해 봤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지역 맹주가 사라져 가는 상태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이면서도 PK(부산 경남) 지역 출신이다. 기득권을 버리고 노력한다면 탈 지역주의의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 신당 운영에는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 확충도 주요 골자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정당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상향식 공천인데 사실상 지금까지는 밀실공천, 정실공천이었다. 현재 각 지구당은 이름만 공당이지 실제는 사당(私黨)이다. 양적으로 수 백만명의 당원을 모으기보다 실제 당비도 납부하고 자발적으로 자원봉사에서도 나서는 당원들이 필요할 때다.

당비는 적은 금액부터 시작할 것이고 당원 수도 지구당별로 몇 백명 규모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물론 지구당 위원장들마다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제도가 정착될 것이고 한나라당도 따라오게 될 것이다”


“통합신당은 개혁신당을 봉쇄하려는 의도”


- 구 주류는 통합신당론을 내세워 신 주류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신당론을 내세웠을 때 처음에는 어떤 반응이 나올 지 고민했지만 불과 며칠만에 신당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신당론에 대한 가속도도 붙고 호응도 늘었다. 이에 개혁과 통합에 동참하는 세력이면 모두 다 함께 가자는 취지로 신당추진위원회를 당내에 구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통합의 취지가 변질됐다. 당초에는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성향의 통합을 의미했는데 마치 신ㆍ구 통합으로 변질됐다. 기득권 포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기존 것을 두고 외부 수혈하자는 ‘리모델링’식인데 마치 개혁신당을 봉쇄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 그걸 경계한다”


- 구체적으로 누구와 함께 가고 누구를 배제한다는 것인가.

“당장 누구를 가려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신당 참여자에 대한 심사기구도, 기준도 없는 상태다. 지금은 당내 공론화 과정이므로 개혁과 통합에 동참하려는 사람은 일단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개혁의지가 손상되면 안 된다. 국민이 신당의 모습을 어떻게 봐주느냐가 중요하다. 민주당이 아닌 새로운 신당으로 인식할 만한 인적 구성이 돼야 한다”


- 잇단 동교동계의 발언으로 볼 때 DJ의 의중이 실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는데.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그 어른에 대한 입장을 추정해볼 수는 있지만 이런 일에 관여할 분이 아니라고 본다. DJ를 들먹거리는 것이 그 분에게 누가 되는 일이다. 최근 전주에 내려갔는데 지역에서는 지금 민주당으로는 안되니 새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신당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가지게 됐다”


- 신 주류의 당 지도부도 개혁적 국민통합정당으로 규정하면서 덧셈식을 강조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현실 정치인으로서 자기 입장에서 보는 상황 인식에 대한 차이다. 지금은 현대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실기할 수도 있고 안이하게 대처하다가는 한국정치가 위태로운 지경이 될 수도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민주당이 참패하면 내각제로 쏠릴 수 있다. 내심 정치인들중에는 내각제를 희망하는 세력이 많은 것도 사실이잖은가. 또 호남소외로 귀결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깊은 고뇌가 필요하다”


- 신당 창당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5월16일 신당과 관련한 워크숍이 예정돼 있다. 정치는 현실이므로 선명성만 앞세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신당 논의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면 우리도 존립할 수 없다. 지난해 8ㆍ8 재ㆍ보선에서 한화갑 대표가 신당 문제를 제기했고 대선 때도 이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중요한 국면이다. 주저앉아 적당히 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신당이 안되면 파국과 위기로 간다. 아마 그 과정에 절충점이 있으리라 본다”


- 결국 분당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렇게 비관적이진 않다. 신당 추진 인사중에는 어느 정도 수위조절이 필요하나 80% 정도의 의원들이 참여할 것으로 본다. 20% 가량은 떨어져 나가도 스스로 존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당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은 물러서게 될 것이고 분리되면 고사될 것이다”


- 그럼 ‘도로민주당’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신당을 추진하고 주도하는 사람들은 정당성을 갖고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신당 반대주의자들은 이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참여하더라도) 중심에서는 멀리 떨어지게 될 것이다”


- 당만 옮기면 철새정치인으로 비난받는데 민주당 후보였던 노 대통령도 신당에 동참하면 철새대통령이 되는 것 아닌가.

“철새는 살기 좋은 곳을 찾아가는 새가 아닌가.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국민적 선택을 받기 위한 움직임을 비난해서야 되겠는가”


- 개인의 야심을 위해, 또는 동교동계에 대한 분풀이 차원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동영 신기남 천정배 의원 등과 함께 2001년 5월 동교동계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당의 한 기류가 형성됐다. 결정적 계기는 DJ의 총재직 사퇴였다. 여기서 민주당의 환골탈태 주장이 나왔다. 당정분리와 상향식 공천, 국민경선을 강조했다. 국민경선 얘기가 나올 때만 해도 코웃음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결국 해 냈다. 그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몇몇 정치인들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학습 부족”


- 노 정권의 초기 국정운영을 평가한다면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역할 학습이 아직 덜 됐다. 전임자를 답습할 필요는 없지만 참고는 해봐야 하는데 준비과정이 부족한 것 같다. 노 정권 출범은 모든 분야에서 큰 폭의 변화이다. 실질적인 변화의 와중에서 대통령도 변화에 대한 모델 정립이 아직 안된 것 같고 국민 입장에서도 이에 대한 적응이 덜 돼 불안하게 비쳐지는 구석이 있다”


- 노 대통령이 국정을 모두 챙기려는 모습에서 책임총리제가 실종됐다는 지적도 있는데.

“노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나를 고 건 총리에게 보내 선거에서 이기면 총리를 맡아달라는 얘기를 전했다. 고 총리도 뭐든지 돕겠다고 당시 화답했다. 특히 행정수도는 반드시 가야 하며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 보다는 좀더 발전적 제안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했다. 이런 두 분의 관계에서 노 대통령이 고 총리를 선택한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학습이 이뤄지는 기간까지 노련한 행정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고 총리의 경험이 필요했고, 지금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책임총리 부분은 현실을 너무 몰라서 나온 얘기다. 현행 대통령제에서 관료들은 총리의 실권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 속에 길들여져 있다. 공동여당이던 국민의 정부에서 JP는 막강 총리였지만 그도 역시 주어진 권리에 대한 행사를 충분히 다하지는 못했다”


- 국정원 간부 출신으로 현 국정원 인사에 대한 견해는.

“국정원의 문제는 명실상부한 국가정보기관으로 자리잡는데 있다. 국가 운영을 위해 반드시 역할이 필요한 곳인데 아직도 국정원하면 마치 ‘악의 화신’같은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이래 가지고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고문이나 하고 사찰과 도청 등을 통해 사생활 침해나 하는 이미지를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 아마 노 대통령이 이 점을 고려한 것 같다. 누구를 보내야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된 것 같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0:58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