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


반신반의. 이 표현이 가장 정확한 것이 아닐까 싶다. 10월29일로 예고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를 앞둔 시장 분위기에 대한 얘기다.

타워팰리스의 가격이 며칠 새 5억원이 떨어졌다느니, 강남 일대에 아파트 급매물이 쏟아진다느니 하지만 과장이나 엄살이 조금은 뒤섞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호가만 올라갔다가 떨어졌을 뿐이고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탓이다. 말하자면 좀 더 기다려 보자는 심리가 팽배한 것이다.

강남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은 투자자들의 심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전과 달리 분명히 강력한 대책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좀 지켜보자구. 어차피 토지공개념 도입은 쉽지 않을 테고 한바탕 태풍이 몰아치고 나면 부동산 불패 신화는 여전히 계속될 수도 있으니까.”

‘거품 붕괴’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 이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마치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을 보는 것 같다. 그 때도 “외환이 고갈됐다” “위기 국면이 심상치 않다”는 경고가 적잖았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눈부신 성장에만 길들여진 국민은 “설마”라고 일축했다.

물론 현 단계에 거품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지, 언제 붕괴될 것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기우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허나 거품 붕괴가 나라 경제 전체에 몰고 올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감안하면 단 1~2%의 가능성밖에 없다 쳐도 이에 대비를 하고 경각심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 거품 붕괴로 벌써 10년 이상 장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의 사례가 결코 남의 얘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전을 일렬로 차곡차곡 쌓아 올릴 때의 심정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많이 쌓아 올려도 동전 한 개쯤은 더 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사람 심리다. 자칫 하나를 더 올리면 그간 쌓은 공든 탑이 통째로 무너질 수 있는 데도 말이다.

누가 옆에서 입김을 세게 불어도, 바닥이 다소 흔들려도 동전 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욕심을 버리고 동전 두서너 개쯤 과감히 덜어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몫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사고의 대전환’이 시급한 부분이기도 하다.

좀 가혹할 수도 있지만, 거품 붕괴 후 최악의 시나리오를 이번 호 커버 스토리로 엮은 것도 이런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21 14:35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