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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남는 것이 아름답다


“저는 콘디를 선택했어요. 그녀는 소련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핵심을 꿰뚫는 유연한 자세와 균형감각으로, 현안 문제에 대처했으니까요.”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의 삶을 엮은 책 ‘CONDI 콘돌리자 라이스 - The Condoleezza Rice Story’(안토니아 펠릭스 지음)를 전직 안보보좌관 브렌트 스카우크로포트는 이렇게 소개했다. 26세 때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스탠퍼드대 부교수에 임용되고 38세에 그 대학 최연소 부총장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흑인 여성’의 일대기다. 언론은 그녀를 부시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그의 뒤를 이을 2008년 대선주자로 꼽기도 했다.

미국에서 저명한 대학의 부총장(총장), 교수로 재직하다 고위 공직을 맡아 국가에 공헌한 사람은 콘디 뿐만이 아니다. 대개 부름을 받으면 대학에서 갈고 닦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국가 전체로도 필요한 인적 자원을 엘리트들이 모인 대학에서 찾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라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다. 콘디는 소련 및 동유럽 전문가였다. 냉전 시절 그녀는 “나는 소련의 고위 장성에 대해 소련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녀가 안보보좌관에 임명된 것은 러시아에서 옐친 대통령 시대가 푸틴 대통령 시대로 넘어가고,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 등 달라진 유럽대륙의 안보질서와 관련이 있다. “핵심을 꿰뚫는 유연한 자세와 균형 감각으로 현안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도 갖췄다.

뉴욕의 9ㆍ11 테러가 발생한 뒤 설치된 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뒤를 이어 토머스 킨(67) 드루대학 총장이 임명된 것도 마찬가지다. 키신저는 다양한 중동 외교 경험이, 킨 총장은 인종문제 전문가로서 클린턴 대통령 시절 인종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 자문 위원회 위원으로 일한 경력덕에 그 자리를 맡게 됐다.

9ㆍ11 테러를 예견한 책의 하나로 꼽히는 ‘최후의 테러리스트’(99년 발간)를 쓴 제시카 스턴 박사는 또 어떤가? 그녀는 대 테러 전문가다. 하버드대에서 테러 문제를 가르치다가 1994~95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로 옮겨 러시아 담당관으로 소련이 남긴 핵무기의 처리를 다뤘다.

40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주는, 노벨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수재 중의 수재인 로런스 서머스 박사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엔 재무장관으로, 퇴임 후에는 하버드대 총장으로 갔다. 또 부시 대통령에게 감세정책의 효율성에 대한 이론을 제공했던 하버드대 경제학과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가 앨런 그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에도 고위 공직과 총장 사이를 왕래한 분들이 있다. DJ 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경남대 박재규 총장은 북한 문제 전문가로 총장 자리를 버리고 입각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승주 주미대사도 외교부 장관을 지낸 뒤 고려대 총장을 잠시 맡던 중 발탁됐다. 두 사람 모두 전문성이나 경력으로 볼 때 중책을 맡는 데 무리가 없었고, 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소위 ‘코드 인사’로 파격을 시도한 참여정부의 인선엔 잘못된 선택도 적지 않았다. 최근 전격 경질된 서동만 국정원 기조 실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필자는 서동만 실장의 ‘깜짝’ 발탁을 비판했다. ‘국정원에서 대북문제를 담당하는 3차장을 맡았으면 (중략) 국가 전체로는 그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장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중략) 거대한 조직의 관리와 예산을 담당하는 자리에는 서 교수가 적임자는 아니다’고 썼다. 결과적으로 그가 10개월 만에 경질돼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원 ‘코드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노 대통령의 총선 ‘올인’에 따른 후속 인사에서도 서 교수 이상으로 유감스런 선택이 눈에 띈다. 김우식 연세대 총장의 비서실장 임명이다. 청와대 386 인맥의 대부(?)란 소리도 들리고, 인화란 덕목에다 인재풀이 넓다는 장점까지 갖췄으나 누가 봐도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권력이나 정치와는 거리가 먼 공학박사 출신이다. 또 연세대 총장이라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몇 안 되는 지도자인데, 그런 분을 비서실장으로 정치판에 끌어 들인 것은 부적절하다. 그 요청을 수락한 김 총장도 무척 실망스럽다.

숱하게 변혁의 바람이 불었지만 권력은 여전히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래서 각 분야에서 존경 받는 분들이 권력의 유혹에 못 이겨 정치판으로 몰려가곤 한다. 당사자들은 불신 받는 정치판을 侮袂?위해서 였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우리의 정치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소리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자신만의 분야에 계속 남아 있어야 국가 전체에 득이 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김우식 총장도 바로 그런 분이다.

입력시간 : 2004-02-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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