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탄핵의 말 말 말들


지난 주 ‘어제와 오늘’ 칼럼을 통해 독자에게 드렸던 약속-노무현 대통령, 소설가 이문열, 강준만 교수를 정담자로 추천한 이유를 밝히겠다는-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3.12 탄핵안 가결 후 쏟아졌던 말 말 말들은 정담이라는 시간(과거, 현재, 미래)과 논리(정,반,합)를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인 소설가 이문열은 탄핵 하루 전인 10일 기자들에게 탄핵에 대해 첫 발언을 했다. “흐지부지하면 한나라당이 두 번 죽는다. 두 번 죽지 않으려면 탄핵을 발의 한 이상 전부 단결해 뭘 만들어야 한다. 발의만 하고 표결하지 않는다면 별 것 아닌 것을 갖고서 다수가 약한 사람을 괴롭힌다는 비난과 함께 역풍이 생길 것이다. 방법만 있다면 가결되더라도 탄핵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가결 소식을 듣고 노 대통령은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국회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겸허히 기다리겠다. 결코 좌절하지 않고 감당해 가겠다”, “(권한정지 기간 중) 국정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학습하겠다. 쉬면서 폭넓은 지식, 정보를 습득 하겠다”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경남지역 주요 여성단체장과의 오찬에서 쏟아낸 말은 감정에 북받친 것이었다. “참으로 죄송하고 부끄럽다. 대통령이 세련되지 못한 언행으로 공격 받았지만,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만한 언행은 아니었다. 민심은 천심이고 민심이 선택한 것이 노 대통령이었다”, “임기 5년 동안 정책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받쳐줘야 성숙한 민주주의가 실현 될 수 있다.”

주말인 13일 광화문~종각까지에는 8만 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짝짝 대한민국’, ‘짝짝 국회해산’을 울부짖었다. 이 중 ‘상식적인 생활인의 사회 참여모임’ 회원들은 이색적인 구호와 피켓을 들고 있었다. “193마리의 미친개를 찾습니다”, “4월15일 우리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지목한 갑신 5적의 한 사람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가결 직후의 의원총회에서 말했다. “승리했지만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3분의 2가 넘는 의원이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또 다른 5적이 된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자신들의 손으로 당선시켰던 노 대통령을 탄핵한 역설적인 현상에 분위기가 어두운 코멘트를 했다. “역풍이 불 수 있으나 헌법수호 차원에서 탄핵을 결정했을 때 이미 충분한 각오가 돼 있었으며 총선에서 심판 받겠다.”

선장을 잃고 망연자실한 열린 우리당의 말들은 통곡과 울분의 것이었다. 정동영 의장은 “5공의 후예들이 수의 힘으로 민의의 전당을 짓밟았다.” , “민주주의의 대학살”, “냉전세력의 야합”, “의회 독재의 서막” 이라며 울부짖었다.

김동률이라는 서울의 정치분석가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좀도둑 짓에 총격을 가한 행위다. 소위 나라의 엘리트들(수구 세력)이 고등학교 출신 대통령을, 취임 이후 한차례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아메리카의 꿈’이 실현되는 나라가 아님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경희대 백승현 교수는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말했다. “소수의 인사가 감정을 자극시켜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빠질까 염려스럽다.”

그러나 13일 광화문에 모인 8만 여 시민의 말들은 자극적이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정운현은 썼다. “성난 민심이 거리로 나선 오늘 여야의 설 자리는 확연히 엇갈렸다. 정치인 그들이 오늘 광화문을 밝힌 8만개 촛불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마이크를 잡고 고함쳤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테타를 막지 못해 오랫동안 어둠의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어제의 구테타는 반드시 막아내자”, “이 자리는 노 대통령의 탄핵 여부와 정치인 노무현의 호불호가 중요한 자리가 아니다. 쿠테타를 좌절 시킬 수 있느냐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발언했다. “친일파 세력들이 5, 6공 세력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어제는 국회에서 민주주의를 압살 시켰다. 4.15는 총선의 날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장례식이다.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자. 우리가 이룩한 민주주의에서 단 한발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도전적이었다. “지금까지 민주노총이 계급투쟁에 주력했는데 이제 쓰레기를 청소하는 데 선두에 서겠다. 16일 전국의 노조 대표들이 모여 전 민중적 투쟁을 결의 할 것이다.”

아빠와 함께 온 11살 짜리 어린이도 차분히 말했다. “아빠가 시민들의 힘을 모아 탄핵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노무현 대통령 아저씨는 우리나라를 잘 이끄는 것 같고 정직 한 것 같아 좋아한다. 아빠 말씀대로 탄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아이의 아버지가 거들었다. “월드컵 때도 거리에 나오지 않았는데 사안이 너무 심각해 광화문에 나오게 됐다. 아들에게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함께 왔다.”

입력시간 : 2004-03-1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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