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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김훈과 이문열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기각 판결로 다시 청와대로 돌아와 시간(과거, 현재, 미래), 논리(정, 반, 합), 개인사(태어남, 삶, 죽음)에 대한 정담(鼎談)을 갖게 된다면 지난 호(3월18일자 2013호)에 천거한 소설가 이문열씨를 김훈씨로 바꿨으면 한다. 김훈씨는 올해 단편 ‘화장’으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출신인 김훈씨는 이미 장편 ‘칼의 노래’로 2001 동인 문학상을 받았다.

노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칼의 노래’를 다시 읽었다고 해서가 아니다. 성웅 이순신의 내면 세계의 ‘그 한 없는 단순성’과 ‘장군의 순결한 칼’에 대한 소설이 노 대통령을 감동시켜서 만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MBC에서 청소년들에게 ‘칼의 노래’에 대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 굉장하다. 어른들에게도 권한다”고 추천했다. 그 후 10만부(총 25만부)가 팔렸다. 노 대통령이 지난 3월14일 다시 이 책을 집은 것으로 보도되자 하루 200부 수준의 주문이 1,500부로 뛰었다고 한다. 교보문고(17일~23일)에선 ‘칼의 노래’는 소설부문 판매 순위 3위에, ‘현(絃)의 노래’는 7위, ‘화장’은 9위를 차지할 정도로 김훈씨 판이다. 한국출판협회가 집계한 전국 11곳 도서 판매부수 랭킹에서도 ‘칼의 노래’는 8위, ‘화장’은 11위에 올랐다. 이문열씨의 수상집 ‘신들메를 고쳐매며’는 13위를 차지했다. 그를 정담에서 바꾸자는 이유가 김훈씨와는 차이가 나는 책의 판매 랭킹 때문이 아니다. 그는 3월15일 80일간 한나라당 외부 공천심사위원을 마치면서 많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기에 새삼 어제, 오늘, 내일을 말하는 것은 세 사람의 정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문열씨는 모 신문 기고에서 탄핵과 공천이 이뤄진 여의도를 해전장이라고 썼다. “만신창이가 되기는 해도 유서 깊은 거함 한나라호는… 언론과 검찰의 십자포화를 피해 물밑으로 숨는 구식 잠수함이었다. 정부 여당의 연합함대는 언론과 검찰이라는 강력한 구축함과 순양함 외에 공권력의 자잘한 어뢰함을 수없이 띄워 물속 깊이 숨은 한나라호를 추적하고 있었다.(중략) 그런데 1주일 전 그 한나라호가 다른 야당과 연합한 기습공격으로 여당 연합함대의 기함을 격침하고 말았다. 오만 또는 방심으로 상대를 얕보다 크게 상처입은 함대사령관은 부근을 항해하던 헌재(헌법재판소)호로 옮겨 갔으나 그 안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이문열씨는 자신의 책을 불태우고 반납한 단체들, 특히 ‘노사모’를 향해 ‘신들메…’에서 울분을 토했다. 그 울분은 기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함의 침몰과 함대사령과의 부상에 격분한 연합 함대의 호위함과 소쾌속정들은 얼른 시민단체의 깃발로 바꿔달고 뜻 아니한 성공에 멍해진 한나라호에 불사례를 퍼붓고….”

지난 2월 ‘신들메…’를 낼 때만 해도 그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앞두고 사람에 대해 글을 쓰는 소설가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책 말미에 영국에서 ‘폭풍의 언덕’의 작가 에밀 브론테의 생가를 찾은 뒤 감상을 달았다. 또 ‘홍위병’과 진보로부터의 비평에 대한 내상(內傷)을 치유한 방법론을 개진했다.

“너는 지금 무엇에 분개하고 무엇을 한탄하는가. 혹시 그것들은 지난 20년간 네가 아무런 반성없이 누려온 문학의 그 사이비한 부산물에 집착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닌가. 너는 함부로 저들을 쥐새끼와 쉬파리 떼, 바퀴 벌레로 비하하고 있지만, 너야말로 그 사이비한 것들을 지키려고 버둥대며 섞어가는 살덩어리일 수도 있다. 그 고약한 냄새와 진물이 죄없는 저들을 꾀어 들인 것이다. 오히려 죄 있는 것은 너다. 네가 백날 기다리며 물어 보아도 곧장 본질로 돌진하여 남김없이 자신을 불태우고 간 이 순수한 영혼은 결코 내게 유리한 증인이 되어 주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라. 돌아가서 내 죄를 지고, 다시 한번 거듭나라.”

이런 그였기에 이 나라의 태어남과 삶, 죽음에 대해 노 대통령과 정담을 나눌 한 사람으로 이문열씨를 추천했다.

그는 탄핵정국을 기함의 침몰로, 대통령의 부상으로 보면서 ‘촛불 정국’을 개탄하고 있다. ‘노사모’를 통한 시민혁명과 지배계층의 교체 주장에도 발끈했다. “지배 세력이 뭡니까. 지금 우리가 계급 시대에 살고 있지 않잖아요. 시민혁명이라니요. 우리 사회의 가진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돈을 다 내놓게 하고 배운 사람들에게는 머리 속을 다 씻어서 비우라고 할 것입니까. 지식이나 소유를 계급화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월간조선 4월호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과 탄핵 정국에 대한 그의 인식은 김훈씨와 너무나 다르다. 김훈씨는 YTN 백지연 앵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 사회가 30~40년 전에 넘어졌던 자리에서 왜 또 넘어지는지… 넘어지더라도 좀 다른, 낯선 자리에서 넘어지지… 왜 우리 현실은 희망이 없는 것인지… 그런 것을 슬프게 생각하고 있죠” “역사의 비극, 그래선 안 되는데, 그런 일이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기막히고 처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탄핵 정국은 저의 아둔한 통찰력으로 볼 때 자기 당파성을 정의라고 규정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파성과 정의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는데 말이죠.” 바로 이 답변이 이문열씨를 김훈씨로 바꾸는 이유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4-04-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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