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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거품 빼고, 폼 안 잡고 마침내 국회 입성

3전4기, 두 번의 대선과 한 번의 총선. 민주노동당 권영길(63) 대표는 그렇게 크고 작은 석 잔의 고배를 마시고서야 금배지를 달게 됐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신문기자 노동운동가를 거친 그의 곁에는 늘 서민과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 때문에, 서민적 이미지가 강해 정치가로서는 카리스마가 약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대한민국 정치의 병인(病因)이라며, 그는 오히려 일침을 가했다. 서민과 농민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게 정치인데, 겉 멋만 잔뜩 들어, 서민들의 정치 참여를 막고 있는 게 카리스마라는 것이다.

2002년 대선후보 토론회의 오프닝 멘트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는 그의 대표적 명작. 이렇게 그의 대중적 인기는 권위를 행사하려는 여느 정치인들과 구별되었다. 그렇게 소박한 말에서 그의 인기는 시작되었다. 그 후 그를 몰라 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숱한 코미디언들이 그를 흉내내며 연명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거대정당 후보들을 겨냥한 “한나라당은 부패원조당, 적반하장당. 민주당은 부패신장개업당, 갈팡질팡당”등의 독설은 소탈하고 서민적이었다. 카리스마라는 정치적 술수로 실제를 가리고 이미지 메이킹에 앞장선 여느 정치인과는 달랐다.

‘빨치산의 아들’로 태어나 언론계를 통해 사회에 입문한 그는 ’88년 전국언론노조 초대 위원장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해 ’95년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었다. 뒤늦게 뛰어든 늦깎이 노동 운동 지도자로 노동 운동계에서 빠른 시간 안에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서민적인 이미지에 바탕 한 ‘침묵’과 ‘중용’의 리더십이 작용했다는 게 중평. 난관을 거쳐 3전4기 끝에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않았다. ’97년 대선에서는 “최초의 정권 교체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 찍으면 사표가 된다”는 ‘사표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 같은 술수에도 동요하지 않으며 소박하고, 유쾌한 모습에 여유까지 부린 그가 아닌가. 어느 샌가 그의 그 모습처럼 닮아 있을 17대 국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인턴 기자 prufrock@empal.com


입력시간 : 2004-04-2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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