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건 경제 개혁이 넓게 번지면새로운 계급이 생기기 마련이다.북한에는 패배자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겼다"

[어제와 오늘] 북한의 변화
"어느 사회건 경제 개혁이 넓게 번지면
새로운 계급이 생기기 마련이다.
북한에는 패배자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겼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 후, 1주일 사이에 반대 여론에서 반성으로 바뀌는 역전이 벌어졌다. 5월 22일 5명의 납치 가족과 함께 온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 “ 예상했던 시나리오 가운데 최악”이라 혹평했던 하라누마 다케오 (전 경제산업상)은 여론의 역풍을 만나자 목소리를 낮췄다. ‘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 회의’의 회장이다.

그는 “ 가족 5명의 귀국에 대한 축복과 총리의 노고에 대한 위로 말씀도 드렸다. TV에서는 가족 회의가 비판하는 장면만 인상에 남은 것 같아 유감이다. 5명의 귀국은 있는 그대로 평가하자. 총리의 이번 방북은 납치 문제에 돌파구를 연 것이다”고 자성했다. 방북 이틀 후 격정적인 가족회, 납치자 구출연맹 등에 수백통의 전화와 1,200여통의 메일이 밀려 그들을 비판ㆍ비난 했다. 아사히 신문의 고이즈미 방북 지지도는 67%, 요미우리 63%, 마이니쯔는 62%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27일 의회 자문관 회의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무섭고 거친 독재자라는 인상은 처음 볼 때(2002년 9월)부터 없었다. 부드럽고 유쾌한 성격이고 농담도 잘하고 이해가 빨랐다”고 평했다. 그는 “ 어떤 농담을 했느냐”는 질문에 “ 그걸 잊어 먹었다”고 답하는 여유를 찾았다.

그의 첫 방북에 이어 이번에도 그를 따라 평양에 간 니혼게자이의 신문 기자는 말했다. “ 1년 8개월 전에는 거리에 주민도 적었고 그나마 주민들도 굳은 표정으로 곧바로 걷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통행인도 많고 표정도 밝아 보인다.” “ 첫 방문 당시 고려 호텔에서도 밤이 되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을 찾을 때 벽을 더듬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이 기자는 평양에서 변화를 느낀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으로 그의 방북을 취재한 월 스트리트 저널의 세바스챤 모페트 기자는 변화보다 현실을 느꼈다. “ 2000년부터 중지된 식량 원조,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 금지, 조총련의 대북 현금 송금 금지 등은 북한이 이번 고이즈미 방북에서 무엇을 느끼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 이런 경제 봉쇄의 결과로 북한의 오늘을 전시해 주는 평양은 어둡게 됐다. 에너지 난은 자동차 불을 끄게 했다. 평양에 식당, 미용실, 식품가게는 많아도 불은 반밖에 켜지 않았다. 평양에 어둠이 짙어지면 시골 마을처럼 조용해지고 어두워 진다. 지상의 불빛이 사라졌기에 하늘의 별은 총총하다.”

모페트 기자는 고이즈미 총리의 “ 만약, 내가 평양에 가지 않았다면 피랍자의 가족들은 집에 올 수 없었다”는 결론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런 성과는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을 통해 또 다른 나라에 개방이나 양보 가능성을 던지는 변화의 몸짓이라고 분석했다.

왜 김 위원장은 양보를 하면서라도 변화를 택하는 것일까. 워싱턴 포스트의 안토니 패오라 서울 특파원은 DMZ내 도라산 전망대에서 개성 공단 공사의 현장을 살피면서 해답을 전했다. 2002년 7월, 물가를 시세제, 시장의 개설, 성과 임금제 등을 채택한 후 북한은 변화한 만큼, 이를 주동한 김 위원장은 변화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일본 외부의 비공식 영자 신문인 ‘ 재팬 투데이’는 이번 고이즈미 총리 방북의 큰 성과를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 일본이 북한과의 긴장된 관계를 풀게 할 것이다고 찬사를 받았다”고 했다.

북한은 1990년대 들어 많게는 2백만의 인민을 굶겨 죽인 ‘ 김정일의 나라’다. 이 나라에 그래도 경제의 문을 열어 준 것은 중국과 한국이었다. 2003년 중국과의 교역량은 10억 2천만 달러로 38%가 늘었다. 한국과는 7억 2천만 달러로 12% 증가했다. 이런 경제 교류에 따라 스페인의 오렌지와 중국의 전자제품 등이 시장 가격으로 팔리고, 작지만 독립적인 판매대가 도시 곳곳에 들어서 음료나 담배를 팔고 있다. 에스키모라고 쓰여진 아이스크림은 북한 돈 60원으로 팔린다. 거리에는 ‘ 휘바람’이라는 자동차의 광고 입간판이 서고 2002년 당시 3,000여대였던 핸드폰은 2년이 못돼 2만대로 늘었다.

겉으로만 보이기 위한 변화라기에는 북한 사람들이 느끼는 변화는 현실적인 것이 됐다. 세계 식량계획(WFP)의 아시아 담당 국장인 토니 브랜버리의 분석은 이렇다. “ 어느 사회건 경제 개혁이 넓게 번지면 새로운 계급이 생기기 마련이다. 북한에는 패배자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겼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4월, 사실 확인을 위한 연구를 마무리 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북한의 2,200만 인구 중 650만명이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이들이 새로운 ‘ 하층 계급’이고, 일부는 ‘ 패배자’이다. 브랜버리 국장등 평양에 오래 머문 서울 산업계 인사들은 “ 북한은 돈이 돈을 만드는 사회가 되었다”고 평했다. 핸드폰 1대 등록비는 1,000달러다. 핸드폰과 새 자동차는 대게 평양 거주 공산당 간부가 사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기근이 심한 동북 지역의 한 주부 감자 농부는 말했다. “ 2002년 7월 이후는 악몽 속에 산다. 평양의 부자를 아는 사람이나 중국 상인을 아는 사람은 작물을 키울 비료를 암시장에서 산다. 이 비료로 옥수수와 감자를 기르는데, 40배로 소출이 많다.”

김정일 위원장은 새로운 하층 계급 등장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우선 그는 적어도 미국 대선이 11월 끝날 때까지는 변화와 양보의 길을 갈 것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4-06-02 14:16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