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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잊혀진 코리안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카랑타 마을에 낙하한 미 101공정 여단 506연대 2대대 E중대 1소대 부소대장 로버트 브루어 중위는 해안 경계를 서고 있던 4명의 아시아계 독일군을 포로로 잡고 놀랐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독일어를 알아 듣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 이들이 한국인임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1938년 조선에서 강제 징집되어 1939년 일본과 소비에트가 벌인 몽고 국경 노몬한 전투에 보내진 이들은 다시 소비에트군에 잡혔다. 이어 1941년 모스크바 근처 쿠르스크 전투서 독일군에게 다시 생포돼 히틀러의 수비군인 된 것이었다.

브루어 중위는 그 후 50년 뒤인 1994년에 나온 스테판 앰브로스의 ‘D-데이, 2차대전의 극적인 전투’를 위한 인터뷰에서 그날의 충격을 담담히 말했다. “그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한국으로 돌아갔겠지요. 그들은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에 남북한 어디에 징집돼 다시 싸웠을까요? 그들은 북한군이 되었다면 미국군과 다시 싸웠을지 모릅니다. 20세기 변화무쌍한 전쟁의 상징이 아니겠습니까?” 브루어 중위는 ‘D-데이’의 작가 앰브로스가 ‘전우’(2000년 스필버그가 제작한 TV시리즈물)를 쓸 무렵인 92년, 대령으로 예편되었다. 동북아에서 CIA를 돕는 일로 복무한 그였다.

아이젠 하워, 닉슨 대통령의 평전을 쓴 앰브로스는 ‘D-데이’를 쓰고 난 58년 후인 2002년 10월 폐암으로 죽었다. 그는 ‘미국의 전쟁’, ‘서부개척사’ 등 미국인에게 가장 많이 읽힌 30권의 책을 쓴 작가이며 뉴 오레앙스 대학 역사학 명예 교수였다.

‘히틀러 독일군 속의 코리안’은 94년 앰브로스의 책이 나온 후 끈질기게 추적되고 있다. ‘forum.axishistory.com’에는 2002년 12월 이들 4명의 코리안 독일군에 대한 사진과 함께 세계의 군사 역사 탐구자들에게 “그들을 찾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axishistory.com’에는 ‘독일 군복을 입은 코리안’의 행방 찾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회가 연일 떠들고 있는 ‘친일 규명법’에는 로버트 브루어가 잡은 ‘독일군복의 코리안’ 처럼 한(恨) 많은 한국인에 대한 논의는 없다. 예를 들어, 1954년 5월 11일 오키나와 비행장 서해상에서 특공기를 몰아 산화한 가미가제 조종사 탁경현(卓庚鉉 ㆍ일본명 : 미츠야미 히로부미) 일본군 소위가 ‘친일인가, 애국자인가’에 대한 논의도 없다.

9월 10일 나온 ‘오오누키 에미꼬(위스콘신대 연구 전임 교수)의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를 옮긴 광운대 일본학과 이향철 교수(히토츠바대 경제학 박사)는 24세로 전사한 탁 소위에 대한 이야기를 추적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20여년간 일본 근대를 연구한 그는 이전까지만 해도 특공대 속에 한국인이 있었다는 것은 ‘친일’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사쿠라가 지다…’의 저자 오오누키 박사가 ‘사쿠라’라는 일본어의 상징을 조작, 오용해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학도병 중심의 특공대를 만들어 전세를 뒤집으려 했다는 논거에는 찬성하면서도 석연치 않았다.

그는 육군 특공대의 훈련기지가 있는 가고시마 현 치란에서 특공대의 활약상을 다룬 ‘반딧불이(호타루)’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팻말 옆의 작은 돌비석을 발견했다. “아리랑 노랫소리로 멀리 어머니의 나라를 그리며 진 사쿠라 사쿠라”가 적혀 있었다. 비석을 세운 이는 설명했다. “한반도의 유족들은 황군으로 죽은 특공대원이기 때문에, 한국의 처지가 어려운 것을 알고, 일본인이야 말로 진심으로 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해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일본 특공대에서는 1944년 10월 25일부터 3,843명이 산화했다. 이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16명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모두 17~27세의 젊은이로 연희, 경성법률, 교오토 약학전문대학 출신 등 엘리트들이었다. 특히 ‘특공대의 어머니’로 불리는 육군 특별지정식당 토메야의 여주인 토리하마 토메와 그의 딸 레이꼬가 보고 느낀 탁경현 육군 소위의 ‘조국’과 ‘모국’에 대한 염원, ‘사쿠라’대신 ‘아리랑’을 택한 이야기 등은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코오토 대학 약학부 출신인 탁경현은 1920년 경남 사천군 서포면 출생으로 어릴 때 일본에 왔다. 그는 1943년 육군비행학교 치란 분교에 특별 조종 견습 사관으로 입교 당시,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나는 조선인입니다”라고 밝혔다. 1945년 5월에 비행 학교 졸업 후 1년 반만에 다시 치란에 나타났을 때 그는 특공대의 지원자였다. 과묵하고 고독한 뺙袖潔駭?그는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그는 사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이 동생을 잃고 ‘모국’ 또는 ‘조국’까지 잃은 조센진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연로한 아버지만을 둔, 그리고 ‘사쿠라’ 대신 ‘아리랑’을 죽음의 시로 택한 조센진이었다.

그는 출정 전날 토메야 식당에 나타나 토메와 레이꼬에게 말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니, 조선 노래, 아리랑을 부르고 싶다. 불러도 됩니까?” 그는 군복 깃을 세우고 부끄러운 듯이 모자를 당겨 얼굴을 가린 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토메, 레이꼬, 탁경현은 부둥켜 안고 대성 통곡을 했고 그의 모자 밑으로는 눈물이 비오듯 했다.(도쿄에서 ‘사스마오고조’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레이꼬의 회고)

노르망디의 독일 군복 차림의 코리안, 아리랑을 부르며 산화한 특공대 조센진. 논의중인 ‘친일 규명법’에는 이들의 한 맺힌 모국애, 조국애도 규명되어야 한다.

입력시간 : 2004-09-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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