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과 현대사회] 복잡해지는 세상, 가벼워지는 뉴스


“댓글을 또 하나의 저널리즘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사석에서 마주한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은 이 물음을 던져 놓고 허허롭게 웃었다. 인터넷이 새로운 언론으로 각광받고 있는 언론 환경에 대한 얘기가 오가던 뒤끝이었다. 그 분도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넷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초래된 현상 가운데 하나는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반응의 형식은 댓글이다. 댓글은 단순한 반응을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의견이자 주장이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본래의 기사 못지않은 반응을 가져오기도 하니, 댓글을 또 다른 하나의 기사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을 수 있겠다.

어차피 언론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려는 것이 속성이니,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높은 시청률과 구독률은 영향력과 비례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언론사의 수입과 직결된다. 경쟁은 당연하고 사활적이다. 뉴스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가를 판단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댓글이 됐다. 게시판 저널리즘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올만하다.

뉴스에 대한 반응을 곧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매체는 인터넷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방이다. 네티즌의 관심을 끌만한 뉴스에는 댓글이 순식간에 수백 개가 붙는다. 광범위하고 제한 없이 대중이 의견을 내고 주장하는, 참여 저널리즘이 꽃을 피운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흐름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한번 포털 뉴스방의 인기 기사가 무엇인지 보라. 친철하게도 눈에 띄게 모아 놓은 ‘가장 많이 본 뉴스’에는 거의 절반 이상이 연예 뉴스나 오락 뉴스 혹은 선정적이거나 황당한 뉴스다. 그 곳에 사회와 세계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있게 설파한 칼럼이나, 다소 읽기에는 버겁지만 우리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중요한 내용을 담은 기사가 자리할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하다.

이런 흐름과 현상은 기존의 언론 매체에 영향을 끼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 기사, 댓글이 많이 붙는 기사에 대한 유혹이 언론인들의 의식을 움직인다. 그 결과 기성 언론 매체의 뉴스가 연성화되고 있다. 이른바 ‘소프트’한 아이템을 다루는 텔레비전 뉴스가 늘어나고, 정통 시사 프로그램은 설자리가 좁아지며, 줄을 쳐가며 읽어야 할 기사보다는 단번에 눈길을 확 잡아 끄는 기사가 지면을 늘려간다.

사자후를 토하는 대논객들의 칼럼이 사라지고, 이른바 섹시한 주제가 아닌 기사는 네티즌들의 외면을 피할 수가 없다. 전통적으로 언론에 부여되던 의제 설정 기능이나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은 줄어들고 있다. 논설의 의미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2월 16일자로 발간된 ‘기자협회보’의 1면 톱 기사의 제목이 “논설 위원이 봉인가”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불어 닥친 언론계의 불황 국면에서, 논설 위원들이 구조 조정 1순위가 되고 있는 흐름을 짚은 기사다.

‘지사적 언론인’이라는 말이 있었다. 설사 배는 고프더라도 사회의 병폐를 꾸짖고 진실의 왜곡과 사회의 모순을 바로 잡겠다는 기개를 가진 언론인을 지칭한다. 하지만 요즘 이 말은 듣기가 어렵다.

세상살이와 사회 구조와 세계 질서가 가벼워지지는 않았을 텐데, 뉴스가 가벼워지는 것은 분명 문제적 상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이 더욱 난감하게 만든다.

김종욱 CBS PD


입력시간 : 2005-02-24 16:52


김종욱 CBS PD networking62@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