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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접으며] 문화재의 아우라를 위하여


‘朴통 글씨’가 수난을 겪고 있다.

그가 쓴 광화문 한글 현판이 곧 교체될 운명이고, 지난 3ㆍ1절엔 매헌 윤봉길 의사 사당인 충의사 현판은 한 시민에 의해 철거돼 세 동강이 났다. 그럼에도 ‘박통 글씨’ 격하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재야 사학자나 시민 단체 등에서는 우리 문화재 속살 깊이 새겨진 ‘박정희 흔적’ 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던 터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 여론이 18년 철권 통치 시절 전국 곳곳에 ‘하사’한 그의 흔적에 대해 정당성을 묻기 시작했다. 적어도 역사로 남으려면 한 번은 짚고 넘어갈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일련의 보도는 한술 더 뜬다. 1969년 3월 박 전 대통령은 1년전 써서 광화문에 내걸었던 자신의 현판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당시 광화문을 관리하던 총무처에 지시해 현판 글씨를 지우게 한 뒤, 그 위에 지금 있는 흘림체 풍의 새 글씨를 새기게 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조선 정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마치 자기 집의 현관쯤으로 여겼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짐이 곧 국가’라는 절대왕정 이제올로기의 박정희 버전인 셈이다.

문화재청 조사에 따르면 현재 박 전 대통령이 친필에 문화재급 사당이나 비문에 새겨진 것은 총 35곳 42점으로 집계됐다. 이것은 전체 전직 대통령 친필 현판의 75%를 차지한다. 박 전 대통령의 글씨가 문화재 현판 등에 많이 남아 있게 된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기 집권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서예 솜씨를 단지 멋이나 개인 성찰의 수준이 아닌 독재 이데올로기 공고화 도구로 활용했던 탓도 크다. 그의 친필 현판은 기념비적 장소나 건축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으며, 그가 국민에게 ‘하사’한 군대식 구호는 주문(呪文) 같은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어 한국 사회에 최면을 걸었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러나 그 결론이 어떻게 나든, 문화재 속살에 새겨진 ‘박통 글씨’에 대해서는 적어도 미래 지향적 문화 논쟁이 필요하다. 문화재 고유의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문화재에서 우러 나올 아우라(진품만이 갖는 영기ㆍ靈氣)를 보존할 수 있는 차원에서 처리돼야 한다. 청산(淸算)을 거쳐낸 청산(靑山)의 역사를 위해.



조신 차장 shincho@hk.cco.kr


입력시간 : 2005-03-0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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