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월드컵서 원정 첫 승… 24일 스위스와 G조 마지막 경기

그 날 또 하나의 한이 52년 만에 풀렸다.

13일 밤(한국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본선 G조 조별리그 ‘아프리카의 복병’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자랑스러운 23인의 태극 전사들은 가슴 떨리는 역전의 승전고를 울렸다. 월드컵 원정 첫 승의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던가. 이날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들의 활약이 빛났다.

경기 시작 전 “골 감각이 두려울 만큼 좋다”던 이천수는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전반전 침체돼 있던 팀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켰다. 득점 성공 외에도 위력적인 좌우 크로스 패스를 쏘는 등 공격 전반에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해결사는 역시 안정환이었다.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골든골’의 주인공 안정환은 이번에도 ‘반지의 제왕’의 면모를 다시 한번 과시했다. 후반전 때 수비수 김진규와 교체 투입된 안정환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는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격의 물꼬를 텄고, 마침내 결승골까지 터뜨렸다.

박지성은 경기 초반 긴장한 선수들이 잦은 패스미스를 연발하며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자 이을용과의 콤비플레이를 통해 상대 수비진을 흔들었고, 결국 상대 선수의 결정적 반칙을 유도해 퇴장시키는 행운을 이끌어냈다.

송종국도 중앙수비수들과 협력 수비를 통해 토고 공격의 핵인 아데바요르를 꽁꽁 묶은 데다 안정환 역전골의 밑바탕이 된 환상패스로 이름값을 해냈다. 중원을 장악한 김남일과 이을용, 골문을 든든히 지킨 이운재, 윙에서 상대 수비를 괴롭힌 이영표, 최진철의 철벽 수비도 무엇보다 값졌다.

2002년 숨막히는 승부 속에 신화를 썼던 이들 태극전사들은 이제 아드보카트 호의 주역으로 성장해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과거 한국은 유럽이나 남미의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으면 일단 주눅이 들어 바짝 얼어붙었다.

그러나 2002월드컵과 축구 선진국의 리그에서 뛰어본 태극전사들은 확 달라진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적응력과 면역력을 한껏 키워, 다시 독일에 모여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 ‘4강 영웅’들의 경험에, 박주영, 김동진, 김두현, 조재진, 이호, 김진규 등 젊은 피들의 ‘패기’가 보태진 2006 태극전사들. 그들이 이번에도 큰일을 내려고 하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프랑스전의 결과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24일 스위스와 결전을 위해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투혼을 불살라야 한다.

로마시대 때 알프스산을 넘어 로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한니발의 기세처럼 태극전사들도 알프스를 정복하리라 믿는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코리아의 붉은 함성이 새 날의 여명을 깨우고 있으니.

“우리의 1차 목표는 16강이지만, 이후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은 아드보카트 감독 개인의 염원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학수고대한다.

‘끝나지 않은 신화’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의 발을 숨죽여 지켜볼 것이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