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지역을 구분할 때, 먼저 우리나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서 가까운 나라들과 먼 나라들로 구분하였는데, 이는 인접 국가들과의 상호 관계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먼 나라들은 자본주의 국가군과 사회주의 국가군으로, 자본주의 국가군은 다시 선진 산업 국가군과 개발도상 국가군으로 구분하였다. 이는 최근 들어 경제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 지학사, 고등학교 세계지리

아시아라는 개념과 대응하는 실체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한국인이 ‘나는 아시아인이다’라고 말할 때, 그 아시아는 일본인, 혹은 중국인이 ‘나는 아시아인이다’라고 말할 때의 아시아와 정확히 같은 실체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을까?

또 그것은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이 ‘우리는 아시아인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의 그 아시아와 같은 대상과 대응하는가? 만약 우리가 모두 아시아에 대해서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도대체 아시아란 무엇이고, 아시아에 대해서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시아가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는 막연한 믿음은 결국 지리적으로 아시아 대륙이라고 불리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유사한 인종으로 구성되며,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도 아시아의 실체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도상에서 아시아를 구분하는 것과 아시아를 사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분명히 지리적, 문화적, 인종적 근접성을 바탕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단일 기표로서의 아시아가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라는 단일 기표(A) 밑에는 기호화 할 수 없는, 수많은 특이성으로서의 아시아(a1, a2, a3…)들이 존재한다.

범위를 좁혀서 생각해보면, ‘한국인’이라는 단일 기표(K) 밑에는 수많은 특이성으로서의 한국인(k1, k2, k3…)들이 존재한다.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가 항상 ‘나는 한국인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가 우리를 ‘한국인’으로 호명하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 자동적으로 응답한다(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들을 떠올려 보자).

그러나 정체성 기표(아시아인, 한국인 등)의 확실성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자동적으로 ‘호명-응답’의 매커니즘이 작동하느냐에 따라서 잠정적으로 결정될 뿐, 이러한 효과들이 고정불변의 아시아인이나 한국인이 객관적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볼 때, 단수로서의 아시아 역시 일종의 환상이며, 유령과도 같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의도로 단수로서의 아시아를 호명하는가이다.

단수로서의 아시아 혹은 동양을 구성하려고 하는 시도들은 이데올로기적, 정치·경제적 효과를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아시아를 단수 취급하는 태도는 서구중심주의의 시각에서 동양을 재구성하려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잘 드러난다.

싸이드(E. Said)가 지적했듯이, 오리엔탈리즘만이 지리상의 한 지역을 학문의 전문분야로 만들어냈다.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를 이국적(exotic) 풍경으로, 야만인들의 세계로, 때로는 신비한 정신세계의 원천으로 박제화하여 서구인들에게 단수로서의 아시아를 제공했다.

동양인들에게도 단수로서의 서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해왔다.

이것을 옥시덴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세계는 간편하게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체계로 분할할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해, 동양과 서양은 각각의 외부에 상대 진영을 포진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재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문명/야만(문화), 근대/봉건(역사), 도시/농촌(공간), 물질/정신(심리), 빠름/느림(속도), 합리/비합리(이성), 민주/비민주(정치) 등의 이분법적 도식과 이미지들이 각각 서양과 동양에 결부된다. 문제는 파농(F. Fanon)이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썼던 것처럼, 노란 피부의 동양인들 역시, 하얀 피부의 서양인들의 가치를 내면화하게 된다는 점이다(‘누런 육체, 허연 정신’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서양 내부에 존재하는 사고방식으로 남아 있지 않고, 동양의 내부에서도 재생산된다. 아마도 서양에 대한 열등감 때문일 게다.

이처럼 동양인이 서구의 관점(오리엔탈리즘)에서 스스로에 대한 관념을 획득하는 아이러니를 ‘오리엔탈-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아시아 국가들의 불균등한 경제발전과 근대화는 아시아 내부에서 ‘오리엔탈-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양산해 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다.

19세기 말, 일본은 서구에 비해서 뒤처진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진입(脫亞入歐)하기 위해, 또한 (지리적으로)서구가 아닌 곳에서 서구를 대표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하기 위해, 아시아를 단수로 취급했다. 탈아론의 주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은 아시아의 동부에 위치해 있지만, 국민정신은 이미 아시아의 틀을 벗어나 서구문명으로 지향하고 있다.

비록 순치지교(脣齒之交)라고 하지만 중국과 조선은 이미 일본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우리의 명성을 더럽히고 있다. 우린 더 이상 이웃나라의 개화를 기다릴 수 없다.

차라리 그들과 결별하여 서양과 진퇴를 같이 하여야 한다. 더 이상 중국과 조선에 친절할 필요가 없다. 서양인들의 행동을 모방하여 그들처럼 대하여야 한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의 방식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시각 속에서 동아시아는 저발전, 전근대, 야만적 상태에 놓여 있으며, 한편으로는 일본의 과거를 표상한다.

어떤 의미에서 일본은 아시아와 서양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에 속하지만 아시아를 넘어선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만이 이러한 태도를 갖는다고는 볼 수 없다.

아시아의 불균등한 경제 발전은 상대적으로 근대화된 홍콩, 대만, 싱가폴,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들이 타국에 대해서 가지는 태도 속에 ‘오리엔탈-오리엔탈리즘’적 요소가 묻어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최근 동아시아 국가 간 교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동아시아에 대해서 사유한다고 하면서도, 극동 러시아나 몽골과 같이 엄연히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에 속한 지역은 고려하지 않는다.

반면에 홍콩이나 대만과 같이 지리적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지역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동아시아’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이는, 제사(題詞)에서 인용한 세계지리 교과서에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듯, 다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발전 상태인 국가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우월감이나 멸시는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또한,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시아 여성과의 매매혼을 공공연히 표방하는 광고들 속에서도 우리는 한국의 ‘오리엔탈-오리엔탈리즘’을 읽을 수 있다. 한 일간지에 실렸던 광고 문구를 보라. 베트남 여성의 장점으로 묘사되고 있는 특성들은 철저히 한국 남성들의 취향에 따라 평가되고 있다.

‘베트남 신부의 장점 : 혈통이 우리와 비슷하다(몽고반점이 있음), 일부종사를 철칙으로 하고 헌신적으로 남편을 섬긴다, 중국·필리핀 여성과 다르게 체취가 아주 좋다….’ 한국인들이 호명하려는 단수로서의 ‘아시아’에는 잘나가는 몇 개국만 포함된다.

우리는 ‘중국이 뜨고 있으니 중국어를 배워야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아시아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해졌으니, 베트남, 말레이지아, 태국을 이해해야겠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시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자체가 이미 ‘중심-주변’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1등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당연히 아시아에서 중심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주변을 만들어내야 하고, 주변과의 비교 속에서만 우리는 아슬아슬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도전 지구 탐험대(KBS, 2005년 종영)’와 같은 흥미 위주의 TV 프로그램들에서 재현되는 아시아와 당신이 생각하는 아시아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한국 기업의 아시아 진출이나 한류 열풍에 흐믓해하기 전에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오리엔탈-오리엔탈리즘’의 천박함에 대해서 한번 돌아보자!

TOPIA 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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