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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생각]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죽음 '영면'


(1) 단종이 사약을 받은 관풍헌에서 영면을 기원하는 제사가 올려집니다. 국장 행렬은 만장과 큰

상여, 종친과 문무백관순으로 1km나 이어졌습니다.

(2)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숙부에게 쫓겨나 17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단종. 뒤늦게나마 후손들이 정성으로 마련한 국장을 통해 단종의 넋이 영면히 저 세상에서 고이 잠들게 됐습니다.

(1)에서 ‘영면’을 무슨 의미로 썼는지 궁금하다.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영면(永眠)’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른다. 그런데 이미 550년 전에 숨져 영면에 든 단종을 새삼스럽게 영면을 기원한다고 하니 이해하기 어렵다.

“편안히 잠듦”의 뜻으로 ‘영면(寧眠)’을 만들어 쓴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사전에 없는 말이다.

(2)의 ‘영면히’도 알 수 없는 말이다. ‘영면하다’가 ‘죽다’인데 ‘영면히’를 혹시 “혈통, 역사, 산맥 따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잇닿아서”를 뜻하는 ‘연면히(連綿-)’나 ‘면면히(綿綿-)’와 동일시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지거나 시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아니하게”인 ‘영원히’의 뜻으로 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1), (2)를 그런 뜻으로는 사회적 동의를 얻기는 어렵다. 국어사전에서 뒷받침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소 아쉽더라도 (1)은 “죽은 뒤에 받는 복덕(福德)”을 뜻하는 ‘명복’으로, (2)는 ‘편안히’ 또는 ‘영원히’로 바꿔 써야 무리가 없다.

(3) 스웨덴의 세계적인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30일 타계했다. 베리만 감독은 이날 오전 7시께 발트해의 파로(Faro) 섬에 있는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가족들은 그가 평온한 가운데 임종했다고 전했으나 자세한 사인을 밝히지는 않았다.

(4) 우리나라 제2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면 박사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명륜동 1가의 가옥이 관광 자원으로 활용된다. 25일 서울시와 종로구에 따르면 이 집은 403.3㎡ 크기의 땅에 지상과 지하 각 1층짜리 건물 네 동으로 되어 있다. 장 박사는 이 집을 직접 지어 1937년부터 살았으며 1966년 이곳에서 영면했다.

(5) 일본 나라현 아스카 지방의 분지를 이루는 나지막한 미미나시산 산줄기 구릉지대에 아스카 왜왕실 제29대 긴메이왕의 왕릉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이 왕릉은 백제 성왕의 능이다.

(중략) 성왕은 일본에 건너간 후 17년간을 아스카왕실에서 살다 서거해 지금의 ‘히노쿠마노 사카이노미사사기’에 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나라현에는 백제 성왕이 왜의 긴메이왕을 겸임했다는 발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3)~(5)의 ‘영면하다’는 “숨지다”, “영원히 눈을 감다”의 뜻으로 쓰였다. (3)의 ‘타계하다’, ‘임종하다’, (5)의 ‘서거하다’와도 통하는 말이다.

‘임종하다’의 경우 “죽음을 맞이하다”, “부모가 돌아가실 때 그 곁에 지키다”의 두 뜻 중 앞의 뜻에 해당함은 물론이다.

(3)은 최근의 죽음을, (4)는 40여 년 전의 죽음을, (5)는 1,500년 전의 죽음을 가리키며 그것이 오늘에 이르도록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영면’은 무엇인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죽음’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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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8/14 15:12




김희진 국어생활연구원 원장 gimhujin@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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