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외국어대학교에서 실시된 2008 논술 모의고사에 응시한 고3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시험을 치르고 있다.
특수한 직업의 경우, 인간적 의미나 사회적 의미의 윤리를 파괴할 때가 있는데, 이는 일반적 직업 윤리와 배치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특수한 직업 윤리는 일반적 직업 윤리와 상이할 수 있다.

특수한 직업 윤리는 일반적 직업 윤리와 상이할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 요건은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중략) 책임 의식과 소명 의식, 직업상의 규제와 제약, 상호 관계(인간 관계)의 유지, 사회적 책무성 등은 직업인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교육인적자원부, 고등학교 시민윤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넌 커서 뭘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많은 학생들이 ‘되고 싶은’ 직업을 말한다. 인문계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공무원이나 교사를 선호하고, 자연계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의사가 압도적이다.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직업 선택의 첫째 이유로 ‘수입’과 ‘안정성’을 거론하는 걸 보면 기분이 상쾌하진 않다.

간혹, 그럴듯한 이유를 대는 학생도 있지만, 따지고 들어가 보면 결국엔 ‘돈’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돈이라는 건 자동으로 터득되나 보다.

시민윤리 교과서에서는 “현대 사회와 같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시대에는 생계유지를 위한 직업은 어느 정도 보장된 듯하다”는 거짓말을 늘어놓기 일쑤고, 직업은 “자아실현에 기여하는 삶의 한 방식”이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말이나 적어놓고 있다.

영악한 요즘 학생들에게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이라는 말을 꺼냈다가는, “선생님, 보기보다 순진하시네요?”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생계유지와 자아실현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영 쉽지 않다. 간혹 “선생님은 자아실현 하셨어요?”라고 묻기라도 할라치면 내 가슴은 ‘쿵’ 내려앉는다.

거기다 “선생님은 왜 학원 강사 하세요?”라고 물을 때면 이미 게임오버.

사실 한국에서 학원 강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곱지 못하다. 그 첫째 원인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로 늘 지적되고 있는 ‘사교육’의 최전선에 학원 강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입시위주의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이 사교육이며, 따라서 한국에서 사교육은 ‘필요악’이다. 정부는 과도한 사교육비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에, 그리고 가계는 자녀 양육비 중,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 때문에 사교육을 ‘공공의 적’으로 본다.

심하게 말하면, 학원 강사는 한국 교육 제도의 병폐에 기생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학원 강사는 윤리적 정당성이 의심되는 직업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직업의 태생이 이러하니 학원 강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논술 강사로서의 존재론적 비애는 이렇게 시작한다.

다른 과목과 달리 논술은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글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나친 사교육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의 양극화 현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토론을 사교육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논술 강사는 사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침을 튀기며 비판하면서, 스스로 학원 강사라는 직업의 정당성을 위기에 빠뜨리고, 학생들은 학원에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부조리를 깨닫게 된다.

이처럼 학원의 존재를 부정하는 내용의 수업이 가능하며, 또 그렇게 해야 하는 과목이 바로 논술이기 때문에 나는 매번 교육 문제를 주제로 강의를 할 때마다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너흰 나중에 뭘 하고 싶니?’라고 물었더니 한 학생이 심각하게 ‘학원 강사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인기 학원 강사는 연봉이 수억 원대라는 기사를 봤다면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사는 것보다는 학원 강사로 돈을 많이 버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는 공교육의 현장에서 학생이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공교육 교사라면 자신의 교육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면서 뿌듯해 할 수도 있겠지만, 학원에서 학원 강사가 되고 싶다는 학생을 만나는 건 절대로 뿌듯해 할 일이 아니다.

사실 내 수업을 제대로 들었다면, 과도한 입시경쟁 속에서 학원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하면 사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런데 학원 강사가 되고 싶다니! 이건 교육 실패의 완벽한 징후가 아니고 무엇인가.

차라리 ‘선생님은 말로만 사교육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정작 사교육 업계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선생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요?’라고 힐난하는 학생이 낫다. 강사의 정신건강을 염려하여, 이러한 비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그런 비판 의식을 갖고 있는 학생이 많기를 바란다.

사실 학원 강사가 사교육을 비판하는 건 제 무덤을 파는 짓일 뿐만 아니라, 진정성도 없다. 이렇게 비판할 거면 학원 강사를 그만둬야 할 것 아닌가. 여기서 논술 강사의 존재론적 비애가 심화된다.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사교육은 거대한 시스템이고 비판 받을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교육에 종사하는 강사 역시 자신의 삶을 영위해야 하는 개인이다.

다른 마땅한 생계 수단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강사직을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런 거다. 이 세상에서 모든 무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폭력주의자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정작 그는 생계를 위해서 총을 만드는 일을 한다. 이럴 경우, 그는 세상 누구에게도 ‘나는 비폭력주의자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다. 딱 지금의 내 처지다.

물론, 사교육을 옹호하지 못할 것도 없다. 명색이 논술 강사니 찬성이든 반대든 논거 따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논증도 가능하다.

“사교육 팽창의 근본적 원인은 공교육에 있다. 지금의 공교육은 형평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전체적인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학생의 수준은 천차만별인데 학교 수업의 내용은 늘 중간 이하에 맞춰진다.

게다가 입시위주의 교육은 학생들 간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학교 이외의 곳에서 보충학습을 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한 학생이 사교육의 이득을 보기 시작하면, 다른 학생들도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교육의 ‘군비경쟁’ 혹은 ‘치킨게임’이 시작되는 거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이윤을 획득하는 것은 정당하다.

사교육 업체들 역시 학생이 요구하는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므로 그들의 경제 행위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사교육은 현재 고착화된 교육 시스템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 하는 교육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취업에 문제가 없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면, 차라리 국민들의 사교육비를 보조하여,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는 자신이 응당 책임져야 할 국민의 건강을 의사들에게 떠넘기는 조건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한다. 그렇다면 쓰레기 같은 교육제도를 만들어 놓고 나머지는 사교육에 떠넘길 바에야 아예 교육보험제도도 실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식의 논증을 좀 더 정교화하면, 나름대로 그럴듯한 자기변명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학원 강사의 정당성과 더 나아가 사교육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구차한 변명을 만들어내기보다는 현재의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기로 했다. 결국 중요한 건, 나에게 배우는 학생들이다. 지금의 교육제도는 분명 정상이 아니지만 비정상적인 교육제도 속에서도 학생들은 무엇인가를 배운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현재의 교육제도가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학생들과 최선을 다해 토론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에게 이렇게 부탁할지도 모른다. “제발, 너희들이 나를 박멸해다오!” 이게 논술 강사 시몽의 직업윤리다.

■ 심원 TOPIA 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약력

- 1977년생

- 서울대 종교학과 졸(2004년)

-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졸업(2006년)

- 현 TOPIA논술아카데미 강사

- TBS 교통방송 <윤은기의 굿모닝서울> 문화 평론 프로그램 ‘이반의 반격’ 진행

- EBS 손석춘의 <월드FM> 문화 평론 프로그램‘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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