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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맞은 YS는 좌파의 숙주인가


우리나라 7번째 대통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1월 11일 8순을 맞았다. 그는 이날 평소 즐겨 하던 ‘절대’, ‘절대로’가 들어가는 웅변투 말을 쓰지 않았다. 어느 대목에서는 감정(感情) 대신 감상이 들어가 있었다.

<<… 제가 살아온 80년은 질풍노도의 시대였습니다. 우리 조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80년이었습니다. … 저로 하여금 정치의 길, 민주투쟁의 길로 들게 한 것은 이승만 독재였습니다. …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1993년 2월 25일 이 땅에 문민민주주의 정부를 세웠습니다. 그것은 한국정치사의 새로운 출발이었습니다. 저는 32년에 걸친 기나긴 군사독재 정권을 제 손으로 저의 책임하에 청산했습니다. 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를 단행했습니다.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내 조국이 안고 있는 장애와 위험을 제거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이가 없고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내 조국, 내 국민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꿈과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무대에서 우뚝서 위대한 한민족 시대를 창조하는 일이 바로 그 것입니다. 그 꿈이 이뤄진 어느 날 조용히 그러나 기쁘게 눈 감을 수 있기를 저는 바랍니다. 이제 불안했던 10년은 가고 잃었던 길을 다시 찾아 나서는 도정이 시작됐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 감히 여러분 앞에서 고백하거니와 저는 한 인간으로서 결코 비겁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번도 저의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몸으로 앞장서서 싸워서 이 나라 문민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습니다. 저 자신, 현실을 헤치고 길을 개척했습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자세로 민주주의 새벽을 열어 나왔습니다.>>

이날 팔순잔치에는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 등 1,000여 명의 하객이 왔다고 조선일보는 보도했다. 다른 신문은 6백 명이라고 전했다.

YS가 만약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위원이 2008년 1월호에 쓴 ‘2007 대선의 의미 – 좌파반역을 선거로 진압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에서 자신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았다면 이날의 인사말 톤은 어떻게 됐을까?

조 위원은 우리나라 아홉 대통령 중 YS가 차지하는 몫을 요약했다.

<<한국의 보수층은 보수를 자처했던 김영삼 대통령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 1992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약 200만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씨는 노태우 5년간의 민주화 실험기를 정리하고 일류국가로 도약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김대중 씨는 은퇴를 선언했고, 국회에서 민자당은 안정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최초의 문민대통령이란 그의 선전에 속아주는 국민도 많았다. 그는 굴러온 복을 차버렸다. 중요한 좌파적 참모들을 통해서 그의 뇌 구조에 좌경적 역사관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좌파의 숙주(宿主)로 변해 보수세력을 분열시켜 김대중의 정계복귀를 허용하고 나라를 외환위기로 몰고 가더니 드디어 좌파 정권등장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좌경적 참모들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 부정적 역사관과 국가관, 그리고 애매한 대북관의 포로가 되었다. 좌파 후원자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좌파들이 박수치는 일만 골라서 한 그였다. 무늬는 보수였으나 한 일은 좌파였다. 좌파 10년이 아니라 김영삼 시대까지 넣어서 좌파 15년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그리고 조 위원은 YS정부 때의 실정 21개를 번호를 붙여 열거했다.

이 글을 쓸 당시 조 위원은 계간 ‘시대정신’ 겨울호(작년 12월1일 발간)에 나온 YS와 김일영<1960년생. 성균관대 박사. 2007 대통령인수위 자문위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의 9시간에 걸친 인터뷰(10월 5, 11, 25일) 내용을 읽지 않은 게 틀림없다.

김 교수는 YS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을 요약했다.

<<이승만은 나라를 건국한 국부이며, 당시 가장 현실적인 지도자였다. 김구는 이루지 못한 일을 상상한 정치감각이 떨어지는 지도자였다. 이승만 정권은 4사5입 개헌 시기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다. 박정희의 역사적 죄인 쿠데타가 없었다면 장면 정부가 나라를 잘 이끌었을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은 민주당정권으로도 가능했던 일이다. 지역감정은 71년부터 DJ가 심화시킨 것이다. 3당 합당은 노태우가 직접제의했던 것이다. 내각제 각서파동은 노태우가 꾸민 음모이다. 3당 합당 뒤 노태우는 안기부를 동원해 재벌과 민정계의원이 나(YS)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했다. 나는 전두환, 노태우를 감옥에 보낼 때 이미 사면을 생각했다. 외환위기 무렵 경제부총리도, 청와대 경제수석도 나에게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온 것에는 DJ도 큰 책임이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와 가까운 정권이다. 차기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

열 번째 대통령이 될 이명박 당선인은 이날 8순 잔치에서 축하했다. “지난 민주화 과정에 (김 전 대통령은) 누구도 할 수 없는 큰 족적을 남겼다. 선배님이 목숨을 던져서 이뤄놓은 역사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이뤄가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발전계기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겠다.”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는 조갑제 편집위원의 심층취재에 대해 반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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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8/01/26 04:12




박용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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