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종족이나 국가 또는 종교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승리한 쪽에서는 남자는 모두 다 죽이는 반면 여성들은 살려두어서 자신들의 종족을 퍼트리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리스와 터키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보다 더 안 좋은 이유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가 그리스를 400년 동안 통치한 때문인 것도 맞지만 처음 그리스를 점령했을 때 수많은 그리스 여성들을 겁탈해서 임신시켰기 때문이다. 몇 세대에 걸쳐 종족이 섞이다보면 자연스레 복수의 칼날이 무디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을 통치자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여성에게 임신은 축복이어야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상고천진론편(上古天眞論篇)을 보면 “여성은 2×7=14세에 월경을 시작해서 아이를 가질 수 있고, 7×7=49세에는 폐경이 되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다.”라고 했다. 오래된 한의학서적에서 제시한 주장이지만 오늘날 14세 전후의 여자아이들이 어김없이 초경을 하고, 50세 근처에서 폐경이 되는 것을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이 폐경이 되어 정상적인 달거리가 중지 되었을 때 더 이상 아이를 품을 수 없다는 정신적인 여한(餘恨)이 남게 되는 데 이게 갱년기 증후군의 요체(要諦)다. 이 때는 여러 검사를 해 보지만 아무 이상이 없이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한약을 쓰는 의사들이 편찬하는 ‘한방(漢方)과 진료(診療)’ 2012년 10월 판에 ‘갱년기증후군’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한약을 처방하는지에 대해서 대담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 갱년기증후군을 특징적으로 정의하는 한 단어가 등장하는데 ‘부정수소(不定愁訴)’가 그것이다. 질환인 듯, 질환 아닌, 질환 같은 것이 갱년기 증후군인데 부정수소라는 딱 맞는 말이 있어 차용해서 쓴 것 같다.

물론 한국에는 이런 용어가 없다. 부정수소의 사전적 의미는 ‘명백한 기질적 질환이 보이지 않는데도 여러 자각 증상을 호소하는 상태’다. 달리 말하면 여러 가지 검사를 해도 모두 다 정상인데 여기저기가 다 안 좋다는 뜻이다. 갱년기 증후군을 겪고 있는 일본 여성들은 몸이 나른하고, 권태감이 있고, 어깨가 결리고, 두통이 있고, 초조하고, 아랫배와 손발이 시리고, 불면증이 있고, 불안감이 있고, 미열이 끊이지 않는 증상을 호소한다고 한다. 물론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부터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갱년기증후군도 나라마다 증상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일본과는 달리 열이 위로 올라가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상열(上熱)증상과 그로 인해서 머리에서 땀이 나고, 한숨을 쉬고, 가슴이 답답한 화병과 같은 증상을 많이 겪게 된다. 갱년기증상과 화병의 증상이 종이 한 장 차이인지라 필자는 폐경 후 2년 이상인데도 갱년기 증후군이 있다고 하면 그 환자는 화병(火病)의 범주로 접근한다. 일본에서 여성3대 처방이라고 해서 많이 쓰는 당귀작약산(當歸芍藥散), 가미소요산(加味逍遙散), 계지복령환(桂枝茯笭丸) 모두 갱년기증후군에 사용된다.

통상적으로 ‘당귀작약산’은 체력이 약하고 살갗이 희고 가냘픈 사람이 빈혈 같이 혈허(血虛)한 상태에서 수독(水毒)에 의한 부종(浮腫)이 있을 때 쓴다. ‘가미소요산’은 체력이 약간 약하고, 어혈과 혈허 두 가지가 있는 사람으로 증상이 일정하지 않은 부정수소가 있을 때, 초조하거나 쉽게 화내는 등의 정신 증상이 있을 때 고려한다. ‘계지복령환’은 체력이 어느 정도 되고, 얼굴이 검으면서 잘 상기되고 수족냉증이 있는 사람에게 어혈을 없애는 용도로 자주 쓰인다. 어혈이 있으면 얼굴색이 검다고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간단하게 얼굴색으로 희면 당귀작약산, 검으면 계지복령환을 쓸 수 있고, 히스테리나 정신적요소가 강하면 가미소요산을 쓰면 된다. 일본에는 고방이라고 불리는 상한론(傷寒論) 처방을 많이 쓰는데 생각보다 갱년기증후군에 잘 안 듣거나 장시간 사용해야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한의원에서 갱년기증후군에 쓰는 처방은 이들과는 달리 보혈약(補血藥)을 많이 쓴다. 어떤 경우 한제를 다 먹고 다시 생리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생리가 예전처럼 터지면 당연히 갱년기증후군은 없어질 테니까!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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